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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_도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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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종이신문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PC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할 수 있게 되자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이 줄었다고 한다. 특히 SNS 사용자가 늘면서 각 언론사는 SNS를 통해 뉴스를 서비스하기도 하는데,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신문의 형태와 형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종이신문이 광고대행사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 오늘은 신문의 대중화가 시작됐던 19세기, 광고대행사의 모습과 그 시절 성공캠페인으로 평가받았던 사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신문의 대중화와 광고대행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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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인쇄물도 마찬가지인데 1830년경, 시간당 4,000여 장을 찍어낼 수 있게 되면서 신문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대중신문은 저렴한 가격에 판매돼 ‘페니 프레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대중신문 등장 의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는 광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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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신문은 발행 부수도 상당했지만, 거리판매를 하면서 다양한 독자를 확보하게 됐다. 때문에 광고주들 사이에서 대중신문에 광고를 게재하면 수많은 소비자에게 상품을 알릴 기회라는 인식이 퍼졌고, 광고 수요가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중신문은 구독료보다 광고료에 의존해 운영되게 된다. 광고가 활발해지자 광고주는 광고를 집행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신문사는 더 많은 광고주를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점점 양쪽 모두 이를 전문적으로 처리해 줄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함을 느꼈는데 이것이 바로 광고대행업의 시작이었다. 광고대행사는 처음엔 수수료를 받는 지면 중개인에 불과했지만 점차 시장조사는 물론이고 직접 광고와 캠페인을 기획하게 된다.

 

광고대행사, 백만 달러 규모의 캠페인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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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설립된 광고대행사 ‘에이어 앤드 선(Ayer&Son)’. 이 대행사가 바로 지면 중개인 역할을 넘어 광고 기획, 제작자의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미국의 제과회사로 유명한 나비스코(National Biscuit Company, Nabisco)는 새로운 비스켓을 출시하며 에이어 앤드 선에 제품명과 광고를 의뢰했는데, 에이어 앤드 선은 제품보단 제품 포장(?)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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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가공식품이 발달하지 않았을뿐더러 제품의 포장까지 신경 쓸 단계가 아니었다. 비스킷도 종이로 헐겁게 포장돼 부서지고 눅눅해지기 일쑤였다. 나비스코는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 얇은 유지막을 입힌 박스형 패키지를 개발했는데, 이 새로운 기술이 에이어 앤드 선이 맡게 된 제품 포장에 적용된 것이었다. 종전과는 다른 바삭한 식감을 제공하는 비스킷인 만큼 에이어 앤드 선은 제품의 이름을 ‘당신이 원하는 비스킷’이라는 문구를 발음대로 적은 ‘유니더 비스킷(Uneeda Biscuits)’이라 정했다. 그리고 방수 패키지를 노란 우비 입은 귀여운 소년 이미지로 시각화해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 우비소년은 여러 모습으로 제품 패키지에 프린트됐는데, 그저 제품의 포장 역할만 하던 패키지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광고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었다. 에이어 앤드 선은 제품 네이밍과 패키지 디자인을 넘어 당시 가장 강력한 매체였던 신문은 물론, 잡지 포스터, 전차, 옥외 게시물 등 전방위적으로 광고를 집행해 백만 달러 규모의 대규모 캠페인을 만들어냈다. 이는 지금의 광고대행사가 광고주의 제품 개발 단계부터 협력해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캠페인 덕분에 나비스코는 엄청난 매출을 기록했고, 다른 기업들도 앞다퉈 제품 패키지를 개선하고 광고로도 적극 활용했다. 신문 지면 중개로 시작된 광고대행업은 이렇게 역량을 확장하면서 발전해왔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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