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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기로 본격 진입을 앞두고 있는 한국 시장에 이렇다 할 새바람이 불지 않는다. 인기가 있다 싶으면 무한복제처럼 미투 제품들이 줄지어 나올 뿐이다. 경제 불황으로 시장은 작아지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자연스레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존에 검증받았던 제품을 리뉴얼함으로써 신제품 시장에 활기를 주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관성의 법칙을 깨야 하는 이유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의 인지도와 인기가 업계에 퍼진 지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업사이클링은 유행처럼 번졌고, 비슷한 콘셉트의 제품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마크 제이콥스, 빈스, 존 바바토스 등의 브랜드 의류를 제작하고 남은 고급 가죽을 업사이클링하는 브랜드 A-ZERO는 그 자투리 가죽으로 다른 제품을 만들어 파는, 너도나도 다 하는 업사이클링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자투리 원단을 A4, A3 사이즈로 재단해 간단한 툴킷과 함께 제공할 뿐이다. 무엇이든 구매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A-ZERO는 자투리 원단을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판매하는 대신 툴킷을 제공해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이미지: 필자 제공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소비자들에게는 웹사이트에 샘플 사진과 함께 간단한 제작 가이드를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하긴 했으나, 완제품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A-ZERO는 스토리가 있는 고급 원단을 저렴하게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창작욕을 북돋워주고, 소비자에 의해 업사이클링이 완성되도록 그 과정을 상품화했다. 마치 마크 제이콥스의 가죽옷을 직접 만드는 것과 같은 묘한 만족감을 주는 이 쿨한 스토리텔링은 런던과 파리의 소비자들이 먼저 가치를 알아챘다.

메종 오브제(Maison & Objet)에서 바이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해외 주문을 시작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아무리 우후죽순 비슷한 제품들 천지라고 해도 미투 제품 생산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업사이클링이라고 꼭 제품을 개발하고 만들어 팔아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 조금만 빗겨서 생각하면 업사이클링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콘셉트의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이처럼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리뉴얼을 위한 중요한 자세다. 성공적인 리뉴얼을 위해서는 ‘원래 그랬듯’한 관성의 법칙을 깨야 하기 때문이다.

1. 소비자의 뒤통수를 쳐라

천편일률적인 것에 싫증을 느끼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신제품, 리뉴얼의 첫 번째 전략은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사람들은 반전이 주는 환기를 기대한다. 감자칩은 무조건 짜지 않아도 되고, 소주는 무조건 쓰지 않아도 된다. 생각지도 않던 단맛을 가미함으로써 당연한 감각에 신선함을 주자, 소비자들은 반응했다. 이는 그냥 맛에 대한 얘기를 넘어 기존 시장의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 서서 먹는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Ore no french(나의 프렌치)’. 일본의 경제지 는 원조격인 ‘나의 이탈리안’과 ‘나의 프렌치’를 2012년 일본 히트 상품 베스트 30에 포함시켰다. ⓒflickr.com Photo by Hideya HAMANO

극심한 저성장기의 일본 시장에서 저렴한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는 콘셉트로 소위 대박을 낸 ‘나의 프렌치 레스토랑’ 역시 맛이나 메뉴 등 식품업의 요소를 넘어서 ‘프렌치는 코스 요리이고 오랫동안 즐기는 식사’라는 당연한 관념을 저돌적으로 깬 것이 성공 비결이었듯이 말이다.


▲ SUV는 남성들의 차라는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르노삼성이 출시한 소형 SUV 차량 QM3 2016은 30대 이상 여성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renaultsamsungm.com

SUV는 남성용 차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듯 실제로 국내에서 SUV 차량을 구매하는 여성 비율은 이미 20%를 훌쩍 넘은 데다 일부 차종의 경우 여성 소비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구매력을 갖춘 20~30대 여성들이 SUV의 새로운 고객으로 각광받으면서1 SUV는 이제 디자인이 주요한 셀링 포인트로 작용하는 이브올루 (EVEolution)2의 영역이 됐다.

2. 오타쿠를 겨냥하라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의 기준이 와해되면서 대상을 쪼개고 또 쪼개는 극세분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비슷한 계층의 대다수가 만족하면 그에 속한 소수도 만족할 것이라는 기존의 세그멘테이션 전략은 완전히 뒤집혔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십 명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몇 만 명을 만족시킬 수 있냐는 논리다.

리뉴얼 전략의 두 번째 답은 오타쿠에 있다. 시장을 특화하는 틈새시장을 말하는 것이다. 대세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에게 취향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 ‘덕후’를 콘셉트로 론칭한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피키캐스트. ⓒpikicast.com

대표적인 스타트업 피키캐스트는 애초부터 ‘덕후’가 콘셉트였다. 편중된 취향이 확실하게 다른 콘텐츠를 생산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분명하게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했다. ‘편중된 취향’이야말로 피키캐스트의 경쟁력인 셈이다.

비슷비슷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장에서 나의 취향이 담긴 제품이 진정한 명품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돈이 없는 것보다 취향이 없는 것이 더 부끄럽다고 말한다. 같은 취향으로 똘똘 뭉쳐 자기들만의 취향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출현은 기존의 성별, 나이, 직업, 학력의 인구통계학적 기준에 입각한 시장 세분화가 점점 무력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남과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데 열심인 소비자들이 몰고 온 취향의 반란이 한층 더 명확한 콘셉트와 특화된 전략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시장의 지도를 다시 그려나가고 있다.3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라는 고마운 기술을 등에 업고, 유의미한 맞춤형 정보를 가려내어 대상에 맞게 재가공한 후 핀스킨(Pinskin) 마케팅까지 연결돼야 한다. 핀스킨 마케팅이란 핀셋으로 집듯 상품의 특성에 맞는 고객들을 골라 강력한 스킨십으로 접근하는 마케팅을 말한다. 미니 JCW는 신차 출시에 맞춰 이틀간 전국의 딜러들이 추천한 가망 고객 100명을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로 초청해, 고난도의 교육 프로그램인 ‘MINI 드라이빙 아카데미’를 경험케 했다. 가망 고객이 신차와 함께 하는 시간, 즉 스킨십을 늘림으로써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치밀하게 기획한 것이다. 취향 저격이 전략이라면, 강력한 핀스킨 마케팅은 시장점유율이 아닌 고객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술이다.

3. 남과 손잡아라

리뉴얼을 위한 세 번째 전략은 ‘남’과 손잡는 것이다. 소주와 귀요미 캐릭터가 어울릴 줄 누가 알았을까?


▲ 의외의 신선함을 선사해 인기를 모은 ‘처음처럼 × 스티키몬스터랩’ 소주. ⓒ처음처럼 페이스북

쳇바퀴 돌듯 똑같은 일상,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나타난 소소한 재미가 소비자들을 움직이게 할 것이라는 마케팅은 적중했다. ‘처음처럼 × 스티키몬스터랩’ 소주는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어색한 조합이 의외의 신선함을 줬을 뿐 아니라, 이 의외성이  각종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바이럴 마케팅이 이뤄지는 동력이 됐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단순히 차용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아예 캐릭터 디자인을 페트병으로 새롭게 제작하는 과감한 콜라보레이션의 사례를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소장 욕구까지 불러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키덜트스러운 소비 문화에 힘입어 최근에는 라인과 카카오톡 캐릭터들 역시 온갖 소품에 등장한다. 특히 화장품 분야에 진출한 캐릭터들은 손 안의 작은 재미를 주며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네이버 라인과 콜라보레이션으로 태어난 미샤의 ‘라인 프렌즈’ 에디션. ⓒmissha.beautynet.co.kr

가성비 좋은 화장품 브랜드 미샤의 제품에 입혀진 라인 프렌즈는 오전이면 매장에서 동나는 제품이 됐다. 제품의 일부 라벨에 등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패키지 전체를 캐릭터가 감싸는 적극적인 디자인을 할수록 소비자 반응은 좋다. 늘 이용하는 일상적인 제품에 캐릭터가 들어옴으로써 소소한 소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발명과 발견의 차이

메이저폰을 살 수 없어 대안으로 저가폰을 마련하던 과거와 달리 저가폰이 개념 있고 합리적인 소비로 보이고, 거액이 드는 매스미디어보다 1인 미디어를 활용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은 마케팅’이 화두가 되고 있는 세상이다. 무조건 새로운 것에만 열광하던 시기는 지났다. 익숙하던 것을 낯설게 하고, 당연하던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전 하버드대 교수인 테오도르 레빗은 늘 하던 대로 하는 마케팅의 관성의 법칙을 ‘마케팅의 근시안적 사고’라고 하며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지 않던 길을 찾고, 쓰지 않던 방법을 고르고, 주시하지 않던 대상을 바라보고, 쓰지 않던 감각을 활용하며 소비자들을 환기시켜야 한다. 장기화되는 불황 속에 몸은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난다. 이럴 때 만드는 가치가 더 빛나는 법이다.

전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누적 관객수를 자랑하는 영화 007은 잊을 만하면 돌아온다. 1962년에 첫 선을 보인 이후 2015년까지 24번째 시리즈를 개봉했다. 속편은 망한다는 속설을 뒤엎으며 장수하는 비결에는 리뉴얼의 전략이 숨어 있다. 관객을 향해 총을 쏘는 오프닝 시퀀스와 귀에 익은 테마음악 같은 노하우는 이어가되, 시의적절한 당대 특유의 요소로 대중의 니즈를 반영하는 것이다. 시대상에 따라 본드가 맞서야 할 적이 달라지고, 본드의 능력과 본드걸의 캐릭터 역시 다르게 부각되는 끊임없는 변신이야말로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때에 따라 그에 맞는 신선한 자극 요소를 발견해내는 리뉴얼의 핵심이 아닐까.


1. ‘여심 잡는 자동차’, , 이미영 기자, 2016년 1월 15일
2. 세계적인 마케팅 컨설턴트인 페이스 팝콘이 라는 책을 통해 소개한 개념. 여성을 상징하는 Eve와 진화를 뜻하는 Evolution의 합성어다. 여성이 독자적인 구매 세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3. <트렌드코리아 2016>, 김난도 외,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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