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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조성흠 

스낵을 가볍게 집어먹듯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 소비 트렌드를 일컫는 스낵컬처(Snack Culture)는 
2007년 미국의 IT매거진 에서 처음 언급됐던 말이다.

당시 패션계에서 SPA 브랜드와 패스트패션이 한창 
세력을 넓혀가던 시대에 나온 말인데,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대중문화 전반은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키워드가 됐다.

스낵컬처의 전성기와 모바일

스낵컬처는 스마트폰 덕분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데, 언제 어디서나 
잠시 짬이 날 때면 우린 모바일로 뭔가를 보며 즐길 수 있게 됐다. 
우린 몇 분, 아니 몇 십 초만 틈이 생겨도 반사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온라인 뉴스나 웹툰을 보든지, 모바일 게임을 하든지, 그도 아니면 트위터를 하거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친구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그 순간에도 보고,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선 
당연히 보고, 화장실에 앉아 있는 그 시간에도 본다. 
쉬지 않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인데, 덕분에 우린 굉장히 얕고 넓은 지식을 갖게 됐다.


 
▲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 아티스트 조해너 배스포드가 펴낸 컬러링 북
컬러링북의 인기도 스낵컬처와 무관하지 않다. ⓒinstiz.net

출판계에서도 이란 책이 최근 종합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지식마저도 스낵컬처 형태로 소비되는 셈이다. 
같은 컬러링북도 베스트셀러 선두를 다퉜다. 
글자가 아닌 밑그림만 있고, 그걸 색칠하는 게 전부인 책이 요즘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책이 된 것도 스낵컬처와 무관하지 않다.
잠시 짬이 날 때 색칠하다가 언제든 중단하고 다른 것을 해도 상관이 없다. 
그 순간순간에만 집중하기에 좋은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낵컬처에 익숙해지다 보니 책 읽는 건 더 기피하게 되고,
깊이 있는 지식엔 관심을 덜 두기도 한다. 
실제로 대학 도서관에서 도서 대출량은 수년째 계속 감소세다. 
지식은 필요할 때 검색해서 찾아보면 된다는 식이고, 
작은 즐거움을 찾아 틈틈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덕분에 웹툰이나 웹드라마, 웹소설도 인기를 누리며 큰 콘텐츠 산업이 됐다. 
소설도 문학적 가치는 없어도,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으면 그만이란 소비자가 많아졌다. 
웹소설은 점점 인기이고, 심지어 유명 소설가들도 웹소설 연재를 하기도 한다.
독자가 옮겨가면, 작가도 그 흐름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이렇듯 스낵컬처는 이미 대중문화의 주류가 돼 버렸다. 
이는 대중문화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요즘 소비자들에 대한 얘기다. 
요즘 사람들의 콘텐츠소비 태도가 바뀐 것이다.

바쁜 현대인에겐 짧은 것이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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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늘 바쁘다. 뭔가 하는 일이 없어도 바쁘다. 
늘 스마트폰을 끼고 있고, 늘 뭔가를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강박증마저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스마트폰 중독이자 
모바일 콘텐츠 중독이기도 한데, 이 또한 지금 시대의 문화다. 

특히 10대와 20대들, 좀 더 확장하면 30대들에게도 지극히 편하고 즐거운 주류문화가 됐다. 
이제는 TV 방송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보지도 않고, 러닝타임을 다 채워가며 
긴 콘텐츠를 보는 일도 드물다. 필요한 것만 찾아보고, 짧게 요약되거나 핵심적인 
장면만 골라 본다. 미드나 영드 같은 인기 TV 드라마를 모바일에서 다시보기 하는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는 15분 분량으로 쪼개서 보여주기도 하며, TV 예능 프로그램은 
재미있는 특정 장면을 몇 분 단위로 쪼개 보여주기도 한다. 
텀블러는 5분 이내의 동영상만 게시할 수 있고, 트위터는 140자까지만 쓸 수 있다. 
이런 제약들이 오히려 스낵컬처에 익숙한 소비자에겐 편리하다.


 
▲ (좌)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제안한 금융전문가 산구 델(Sangu Delle)의 TED 강연.
5분 57초의 짧은 강연으로, 이틀 만에 조회수 300만 회가 넘었다. ⓒTED
(우) 트위터가 만든 동영상 서비스 바인. 6초짜리 영상을 만들어 공유한다. ⓒ

20분 정도였던 TED 강의가 인기를 끌면서 짧은 강연이 유행이 됐는데,
요즘엔 5분으로 편집된 TED 강의도 많아졌다. 몇 분 안에 뭔 얘길 다 전하겠느냐 
반문하겠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파괴력 있는 콘텐츠는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심지어 트위터가 만든 동영상 서비스인 바인(Vine)은 6초짜리 영상이다. 
겨우 6초로 영상을 만들어서 공유하는 건데, 6초도 꽤 담아낼 게 많다. 
짧으면 더 쉽게 보고, 더 쉽게 공유될 수도 있다. 
몇 분도 아까운 사람들, 보자마자 바로 반응이 나올 만큼 
우린 더 이상 기승전결 따위는 필요 없고, 그냥 바로 결론만 원하는 셈이다.

문화콘텐츠뿐 아니라, 패션과 음식 소비에서도 우린 빠르고 간편한 걸 찾는다. 
편의점이 간편 푸드의 새로운 거점이 되고, 패스트패션으로 누구나 저렴하게 멋진 스타일을 꾸민다. 
이케아를 비롯한 패스트퍼니처도 우리가 일상을 좀 더 멋지게 꾸미도록 도와준다.

스낵컬처는 이렇듯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일상의 풍요를 만들어 내는 데 유용하다. 
누리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과 돈이 제한된 이들이 그들만의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패스트푸드 앞에서 자연식 건강밥상보다 건강에는 부족하다고 굳이 지적할 필요 없다.
패스트패션 앞에서 명품 패션보다 소재가 싸구려라고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빠르고 편리한 대신 포기하는 것도 있다. 
스낵컬처를 통해서도 소비자들은 깊이나 사색 따위는 굳이 지적하려 들지 않는다. 
그냥 그 순간 즐겁고 유쾌하게 몰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비 태도이자 커뮤니케이션 태도일 수도 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전할 수 있는 시대


 
▲ 삼성이 만든 웹드라마 는 공개 한 달 만에 누적 조회수가 1000만 회를 넘어섰다. ⓒ삼성그룹

스낵컬처는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웹드라마 는 공개 한 달 만에 누적 조회수가 1000만 회를 넘어섰는데, 
이 드라마를 만든 건 삼성이다. 삼성그룹 블로그를 비롯, 네이버 TV캐스트, 다음 TV팟, 
유튜브를 통해 제공했는데, 스낵컬처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기업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의 경로로 웹드라마가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미디어 홍수 속에 소비자들이 접하는 콘텐츠는 너무나 많아졌다.
기업은 다양한 미디어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웹툰을 통해서도 많은 시도를 했었다. 많은 기업이 웹툰에 자사의 브랜드나 상품을 
간접 광고하기도 하고, 특정 상품을 전면에 내세운 광고성 웹툰을 
유명 웹툰 작가를 통해서 만들어 내는 일도 이미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웹툰의 최고 미덕은 한 편 보는 데 몇 분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짧지만 계속 보면서 웹툰 소비가 늘고 웹툰 시장도 급성장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의 근간이 웹툰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 또한 스낵컬처가 가진 위력이다. 
쉽게 다가가면서 그만큼 대중적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다. 
심심풀이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게 웹툰과 동영상인데, 유튜브에서도 5분 이내의 동영상이 유독 많다. 
유튜브에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올려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다. 
대개 인기 있는 것들은 짧으면서 웃기는 것들이다. 전형적인 스낵컬처에 해당되는
동영상들이 많이 소비되고, 그런 동영상이 광고 수익도 더 많이 거둔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이들이 스낵컬처가 될 짧고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들어 내는 데 혈안이다.

기업들의 유튜브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다. 짧고 재미있어야 바이럴이 된다. 
소비자가 오래 보면서 의미를 파악할 만큼의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고, 
이제 뭐든 짧고 함축적이면서 강렬해야 통한다. 
가령 KDB증권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광고는 유튜브를 통해 풀 버전이 공개되고, 
축약본이 지상파 광고로 나왔다. 풀버전이라고 해도 몇 분 분량이다. 
이런 식의 광고 접근은 이미 흔한 일이 됐다. 뮤직비디오 형식이든 웹드라마든 
다큐 형태이든 다양한 스낵컬처 콘텐츠를 기업이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미디어를 통해서만 하고 싶은 말을 하던 시대에서, 
이젠 기업이 소비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미 대부분의 소비자가 손마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고, 
우린 모바일을 통해 그들에게 바로 다가갈 수 있게 된 셈이다. 

결국 스낵컬처는 문화예술 소비의 화두이기 이전에,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자 화두로서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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