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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까지 일에 푹 파묻혀 사는 여성에 대한 시각은 대개 이렇다.
‘아마 저 사람은 결혼을 안 했을 것이고, 했다 하더라도 아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일을 할 수가 있나.’ 
현실적으로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끝없는 갈등과 질문을 던지는 스무고개다.
그런데 내가 일찍 결혼해 두 아이를 둔 엄마라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20년 동안 어떻게 지치지 않고 광고업계에서 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첫 번째는 멀티태스킹이다. 밤늦게 퇴근해도 아이의 학교 준비물은 챙겨줘야 하고, 
점심시간에 잠깐 자모회에 갔다가 돌아와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게 워킹맘의 일상이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아마 머릿속이 콩나물시루가 될지도 모른다. 이 일도, 저 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낙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호환되는 스위치가 많아서, 스위치를 이쪽저쪽 끄고 켜는 일이 가능하다.
어떤 일에 집중했다가도 그 일이 끝나면 빨리 스위치를 끄고, 다른 스위치를 작동시켜 또 다른 일에 집중한다는 얘기다.
때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런 멀티태스킹 능력이야말로 내가 회사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때로는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오기도 한다. 예컨대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 새벽 늦게 병원 응급실에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아침 일찍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 어쩔 것인가? 열이 내릴 때까지 아이 곁에 있든지
아니면 아이를 맡기고 약속 장소에 가든지 선택해야 한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이럴 때 나는 빨리 하나를 선택하고 그것에 집중하는데, 우선순위는 본능에 따른다.
각각의 상황에서 마음이 이끌리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아직도 일과 사랑의 균형, 일과 가정의 균형을 꿈꾸는 여성이 있는가? 천만의 말씀! 인생에 균형이란 없다.
인생은 끊임없는 시소게임이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 하나를 끝내놓고 가뿐한 마음으로 집에 왔다 치자.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빵점 맞은 아이의 시험지다. 그러면 그때부터 내 주파수는 자동적으로 아이에게 맞춰진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 온다. 그러면 그때는 다른 생각은 잊고 일에 집중한다. 이게 바로 시소게임이다. 
시소가 항상 수평을 유지하면 재미없지 않은가. 인생은 왔다갔다 그렇게 사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후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로, 나는 극단적인 긍정론자다. 훌훌 털어버리는 일을 나처럼 잘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실패할 때도 있는 법이거늘 온갖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으면 다른 일에 지장을 준다.
그래서 나는 빨리 스위치를 끄고 다른 일을 준비하는데, 그런 전환 능력이 일을 하는 데 있어 큰 에너지가 된다.
그걸 어떻게 길렀느냐 묻는다면, 그냥 닥치면 하게 된다고만 말해두자. 만약 아이가 소풍을 간다면 다른 엄마들처럼
예쁜 도시락을 싸주지 못한다고 스트레스 받지 말라. 그럴 때 나는 나 대신 도시락을 잘 싸줄 수 있는 사람을 찾거나
아니면 도시락을 잘 만드는 음식점을 찾는다. 대안을 구하는 거다. 나는 일하는 엄마인데, 도시락을 정성스레 싸줄 수 있는
전업주부 엄마랑 비교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그러니 ‘애 소풍가는데 도시락도 못 싸주고 책상 앞에 앉아서 뭐하고 있는 거야’라고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그런 죄책감은 워킹맘을 옭아매는 덫이다.
 
세 번째로 얘기하고 싶은 건 시간 매니지먼트다. 나는 10분이면 쇼핑을 다한다.
여성들은 대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놓고도 혹시 더 나은 물건이 있을까봐 여기저기 비교하며 보고 다닌다.
이건 시간의 로스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고, 그 시간 동안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면 나는 더 이상 다른 걸 보지 않는다.
그 물건이 그 시간 동안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여대에 가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 주제는 ‘광고’였는데 강연이 끝나자 한 여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결혼했는데 남편이 일을 못하게 하면 어쩌나요? 아기를 낳았는데 봐줄 사람이 없으면 일을 그만둬야 하나요?
시어머니와 고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까요?”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웃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나요?” 없다고 했다. 아니, 남자친구가 없으면 아직 결혼할 일도 없고 따라서 고부갈등이 생길 일도,
아이를 낳을 일도 없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벌써부터 걱정한담? 고민은 닥쳤을 때 해도 늦지 않다.
완성된, 완벽한 예비 답안은 없다. 아직 벽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문을 어디에 만들지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다.
이것도 결국 시간 매니지먼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엄마의 부재를 항상 아쉬워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 어느 시기가 되면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언젠가 우리 아이가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 때 친구가 “너희 엄마는 무슨 일 해?”하고 물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우리 엄마 정말 중요한 일 해.”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라고
세뇌(!)시킨 결과였다. ‘아, 우리 엄마가 지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아이들이 느끼게 해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나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같이 있을 때는
남들보다 애정 표현을 몇 곱절 더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충분히 느낀다.
사람은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터치포인트를 만들어준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럼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다. 
멀티태스커가 되라. 긍정적 시각을 갖고, 시간을 매니징하는 능력을 키워라.
그럼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얘기는 여기까지. 이제 그만 ‘중요한 일’을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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