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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호모 파베르적 본성은 기술을 통한 사회 변화를 이끌어 왔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정보 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PC 보급과 통신 기술 발달이 디지털 기반의 정보화 사회를 완성시켰다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3D프린터는 디지털 정보를 손에 잡히는 실물의 영역까지 확장시키며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봉인 풀린 3D프린터

 
1980년대 처음 개발된 3D프린터는 초기에는 고가의 산업용 프린터를 중심으로, 항공우주 개발 분야나
포뮬러 원(F-1) 같은 첨단 기술 분야의 연구소나 공장에서 시제품 제작에만 제한적으로 활용돼 왔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아드리안 보이어(Adrian Bowyer) 교수가 개인용 3D프린터 제작을 위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2009년 압출 조형 방식인 FDM(Fused Deposition Modeling) 기술 특허가
만료되면서부터 3D프린터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메이커 봇(Maker Bot)을 필두로 한 개인용 3D프린터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저변이 더욱 확대됐습니다. 선택적 레이저 성형 방식인 SLS(Selective Laser Sintering) 기술 특허까지
2014년 만료됨으로써 3D프린터 시장 경쟁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조만간 완제품 수준의 결과물을 출력할 수 있는
개인용 제품들이 널리 보급돼 창작 활동의 도구로도 손쉽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3D프린터로 출력한 부품이 탑재된 F-1 레이싱 카
 
 

점유에서 공유로

 
대영 박물관의 보안 요원이 시각장애가 있는 관람객에게 비너스 동상을 만지며 관람할 수 있도록 해줬던
일이 최근 알려지며 화제가 됐습니다. 이 일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냐
문화유산 보존이 우선이냐라는 논란을 낳기도 했는데, 만약 3D프린터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예술품의 원본을 훼손할 우려 없이 촉각을 사용해 작품의 디테일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근 박물관이나 포털 사이트 등에서도 3D프린터를 이용해 소수가 점유하고 있는 경험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Museum)은
백여 년 전 라이트 형제가 만든 최초의 비행기나 이십만 년 전 메머드의 뼈와 같은 소장품들을
디지털 3D 모델로 만들어 전시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일반에 공개하는 스미소니언 x 3D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박물관 내 소장품을 눈으로만 감상하는 제한적 경험을, 박물관 외 공간에서 직접 손으로 만져도 보고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도 있는 확장된 경험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3D프린터로 출력해 물리학 수업의 이해를 돕거나 매머드의 뼈를 출력해
역사 수업에 생동감을 더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유물과 작품을 보존하고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을
고수해 오던 박물관이 3D프린터 시대에 발맞춰 스스로의 역할과 소장품의 용도를 바꿔가고 있습니다.
 
 
 


  

▲(위) 박물관의 소장품을 3D 모델로 만들어 공개하는 ‘스미소니언 x 3D 프로젝트’
(아래) 시각장애인을 위한 야후재팬의 ‘만지는 검색’
 
 
야후재팬은 쓰쿠바 대학(University of Tsukuba) 부속 시각장애 학교의 아이들을 위해 만지는 검색(Hands on Search)
선보였습니다. 기린의 생김새가 궁금한 아이가 검색기에 ‘기린’이란 단어를 말하면 3D프린터가 기린 모형을 출력해 주고
아이들은 긴 목을 만져보며 재미있어 합니다. 일반인에게 익숙하지만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제한적일 수 있는 텍스트 방식의
검색 서비스에 3D프린터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준 것입니다.
 
만약 아이들이 만져보고 싶어 하는 형태를 출력할 수 있는 3D 모델 데이터가 없는 경우 아이들을 위해
해당 데이터를 제공해줄 사람을 찾는 광고를 야후 포털에 게재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검색 서비스를 만드는 일에
일반인들도 동참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든 것입니다.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다

 
3D프린터는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공장과 유통 채널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주며
생산과 소비 주체 간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제품에 적용시키는 수준을 넘어
개인의 제품 생산 능력 자체를 핵심 요소로 삼는 공익 캠페인과 신제품 개발 사례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낫임파서블(Not Impossible)은 로봇 개발자, 신경 과학자, 3D프린터 사업가 등이 참여해 기술을 활용한
구호 활동을 펼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다니엘 프로젝트는 남수단 공화국 내전으로 팔을 잃은
다니엘 오마르라는 소년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로, 인텔과 프레시파트 같은 기업들의 후원으로 이뤄졌습니다.
 


  

▲(좌) 남수단 내전 피해자들이 직접 3D프린팅 의수를 만들 수 있도록 한 ‘다니엘 프로젝트’
(우) ‘프로젝트 아라’를 통해 출시될 모듈러 스마트폰
 
 
프로젝터의 결실로 남수단에는 3D프린터 기반의 의수 및 의족 제작소와 교육 시설이 세워졌고
프로젝트 팀은 한 달 후 내전 지역을 떠났지만 생산 능력을 보유하게 된 이곳 사람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필요한 의수와 의족을 만들어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다니엘 프로젝트는 3D프린터를 통해 지속성과 자생력을 가지게 됐으며 궁극적으로 남수단 사람들을
구호 활동의 수혜자인 동시에 생산자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라(Project Ara)는 구글이 개발 중인
조립식 스마트폰 프로젝트로 기본 스마트폰 프레임에 배터리, 카메라, 키패드 같은 부품들을
레고 블록처럼 탈부착해 조립하는 혁신적인 오픈소스 하드웨어 프로젝트입니다.
 
아라 프로젝트의 핵심 요인은 3D프린터로 전자 부품까지 출력해 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3D 시스템즈의
생산 라인 구축과 구글이 주도하는 개발자 생태계의 활성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글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2015년 초 모듈러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장기적으로는 사용자들이 직접 부품을 출력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스마트폰을 직접 제작해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생산의 프로세스가 변하다

 
지난해 실제 발사 가능한 총기를 제작할 수 있는 3D 모델링 도면이 발사 영상과 함께 온라인상에 공개되자
미 국무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당 도면을 즉시 삭제하도록 조치했습니다.
3D 모델 데이터만 있으면 어떤 제품이든 만들어 낼 수 있는 3D프린터의 보급으로 인해 법률 제정을 포함한
제작, 생산과 관련된 시스템 전반에 변화가 촉발되고 있습니다.
 

▲구글 서비스의 3D 데이터 소스들을 활용한 바나도스의 ‘홈 포 크리스마스’

영국의 자선단체 바나도스(BArnados)는 2012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객사 위험에 처한
노숙자들을 위한 기부를 권장하고 집의 소중함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홈 포 크리스마스(Home for Christmas)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기부자가 웹상에서 기부와 함께 자신의 집 주소를 제공하면 바나도스는 등록된 주소지의 건물을
3D프린터로 출력하고 스노우 글로브로 제작해 기부자들에게 선물해줍니다.
 
집을 출력하는 3D 모델링 작업에는 구글 서비스를 통해 공개돼 있는 건물의 3D 소스들이 기초 재료로
활용됩니다. 만약 구글에서 제공하는 오픈소스가 없는 상태에서 3D 모델을 고스란히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캠페인을 위해 기부자의 집 모형을 담은 제품을 만들어 선물로 제공하는 기획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쉐이프웨이즈(Shapeways)는 3D 모델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비로소 제품을 출력해
내보내는 재고 걱정이 없는 새로운 개념의 커머스 플랫폼입니다. 판매자는 제품의 3D 모델만 관리하면 되고
주문과 생산, 배송 등 이외 모든 프로세스는 쉐이프웨이즈가 처리해 줍니다. 제품의 소재는 플라스틱, 세라믹,
금속까지 다양하며 산업용 프린터로 출력되기 때문에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판매자는 이 플랫폼을 통해 3D 모델 설계가 가능한 디자이너를 직접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3D프린터
제품 제작과 판매에 필요한 솔루션과 마켓 플레이스를 제공하며 본격적인 개인 제조 시대의 구현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3D프린터를 통한 프로세스의 변화는 3D프린터 자체의 고도화뿐만 아니라
3D 모델링 기술, 모델링에 필요한 입력 도구, 사용자를 위한 서비스 플랫폼 등의 공조와 함께 이뤄지고 있습니다.
 
 


  

▲3D프린터와 모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커머스 플랫폼 ‘쉐이프웨이즈’
 
 

터닝 포인트를 넘어 티핑 포인트로

 
3D프린터는 점유를 공유로 유도하며 소비자를 생산자로 만들고 생산 프로세스를 변화시켜 롱테일 환경을
한층 두텁게 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편집장이었던 크리스 앤더슨이
‘인터넷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기술’이라 말했듯이 3D프린터는 이미 의료, 식품, 패션,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삶에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3D프린팅으로 구현되는 아이디어와 더불어 이에 따른 사회적 변화까지 주목한다면
4P, 4C 같은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서 살짝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혁신적인 마케팅 솔루션을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에 의한 터닝 포인트를 넘어 이런 변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티핑 포인트까지도 흥미롭게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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