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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여유’라고 합니다.  
제 이름은 사전적으로는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라는 긴 뜻이 있습니다.
보통 광고 크리에이터들에게는 ‘릴렉스’ 혹은 ‘충전’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죠.
 
늘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저는 늘 부족하고 아쉬운 존재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우리 일의 핑계는 늘 저 ‘여유’에게 떨어집니다.
사람들은 제가 없어서 늘 피곤하고, 제가 없어서 가족, 주위 사람들과 소원해지고, 제가 없어서 이 일을 그만두고 싶고, 
제가 없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고 하니까요. 특히, 곧 있을 여름 휴가철이 되면 많은 분들이 저의 존재가
정말 미치도록 그리워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 ‘여유’는 정말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넉넉한 사람들만 만나는 걸까요?
여기서 잠깐!
제가 만난 분 중 언뜻 보기에 저 ‘여유’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한 분을 소개해 드릴게요.
 
바로 칼 마르크스(Karl Marx)입니다.
투쟁의 상징, 사회주의의 사상적 근간을 제공한 그가 을 쓸 수 있었던 건 러시아의 공장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대영박물관의 도서 열람실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구상했던 혁명이 실패한 후 영국으로 떠밀려 온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도서관에서 수많은 자본주의 서적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돌아보고 사상적 기틀을 닦아 을 쓰게 됩니다.
만약 그때 그에게 그런 여유가 없었다면 현대의 사상과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을 겁니다.
 
칼 마르크스 할아버지가 다시 태어나 요즘 광고회사 제작 부문에서 일했더라면 자본론을 고쳐 썼을 만큼 
(아마 바빠서 집필을 못했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늘 24시간을 투쟁하듯 살아가는 크리에이터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두 주먹 불끈 쥐는 용기보다 때론 ‘멍’해 질 줄 아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멍’이란 저 ‘여유’가 조금 놀 때 불렸던 닉네임인데요.
최근에 어느 정신과 전문의가 스마트폰에 혹사당하는 뇌를 구하자는 의미에서 ‘멍 때리자’는 개념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죠.
보통은 ‘멍’을 정신이 나간 것처럼 아무 반응 없거나 넋을 잃은 상태라고들 하는데, 전 이런 정의보다
옛날 모 리조트 광고에 나왔던 카피가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한번 물어볼게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최근 1주일 동안 수면을 취하는 걸 제외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요?
그렇습니다. 처절한 투쟁의 산물로 뛰어난 크리에이티브가 나올 수도 있지만 그 투쟁을 계속하려면 저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를 만나려면 때론 ‘멍’해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것도 구체적으로요.
 
자, 그럼 이 글을 읽고 난 후 그냥 자리에서 한 10분만 컴퓨터 화면이나 휴대폰, 섬네일을 보지 않고 그냥 멍 때리기입니다.
한번 해볼까요?
 
sanghun.ahn@samsung.com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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