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레시피 ㅣ 나는 너에게 의미 있는 하나의 ‘서체’가 되고 싶다 | 제일기획 블로그
2017.01.04. 10:00

기업들이 서체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기업의 전용 서체 개발은 패션, 금융, 배달 앱, 유통산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확산되는 중. 이제까지 기업을 대표하는 디자인 하면 로고와 심볼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서체까지 가세해 기업의 브랜딩 전략에 불을 붙이고 있다. 전용 서체는 단지 기업의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넘어 마케팅으로 이어진다. “좋은 글씨체 하나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 마음에 다리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라는 말처럼 최근 불고 있는 서체 마케팅은 소비자에게 기업의 이미지를 각인하는 ‘다리’ 역할과 진배없다.

오래된 커뮤니케이션 방식

이메일과 메신저를 사용하는 요즘에는 다른 사람의 필체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메일 대신 편지를 쓰고 메신저 대신 쪽지를 보내던 과거에는 친구들 얼굴을 식별하듯 필체도 구별할 수 있었다. 앙증맞은 글씨, 또박또박 야무진 글씨, 기교 없이 소박한 글씨 등을 보면 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충 흘려쓴 글씨나 힘 없는 글씨를 보면 기분 상태까지 짐작이 가능했다. 이처럼 필체는 그 자체로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였다.

▲ 서체는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다 

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떡을 썰 때 한석봉이 왜 그 옆에서 글씨를 썼겠는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글씨는 선비의 인격이자 학식을 대변했다. 추사 김정희가 추앙받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추사체라는 독특한 글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글씨를 통해 서로의 학문적 기량을 견주며 소통했다.

기업에게는 ‘서체’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 서체는 예전부터 로고, 심볼 등과 함께 기업의 CI를 구축하는 브랜딩 요소로 활용돼 왔다. 서체는 브랜드 잔상으로 남아 소비자의 뇌리에 기억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단순히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일환으로 서체를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이 주체적으로 서체를 직접 개발하고 있다.

이전까지 서체는 전문 디자인 회사에서 개발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주요 타깃 또한 디자이너를 겨냥했다. 그런데 기업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전용 서체를 개발해 배포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 이유를 알기 전에 무료로 배포 중인 서체들을 먼저 감상해 보자.

 

무료니까 걱정 뚝!

가장 눈에 띄는 기업 전용 서체는 배달 앱 서비스 ‘배달의민족’이 선보인 한나체, 주아체, 도현체, 연성체 4종 세트다. 배달의민족은 2012년 한나체를 필두로 서체 무료 배포를 시작, 2016년 한글날에는 연성체를 배포했다. 이 서체들은 총 1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 수치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서체명은 모두 직원들의 자녀 이름을 딴 것으로, 이름뿐 아니라 서체 자체도 소박하며 친근감 있는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서체들은 1960~70년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동네 간판이나 가판대 글씨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래서 키치적인 느낌, 복고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배달의민족은 개발한 서체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배민문방구에서 판매 중이다.

▲ 전용 서체를 다양한 생활용품에 적용한 배달의민족 ⓒstore.baemin.com

티몬(티켓몬스터)은 소셜커머스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전용 서체를 내놓았다. 한글 서체 몬소리체와 영문 서체 티움체가 그것으로, 이들 서체는 티몬이 진행 중인 몬소리 캠페인의 일환이다. 몬소리 캠페인은 고객이 힘들고 지칠 때 무심코 내는 혼잣말을 ‘몬소리’로 정의하고, 이를 동화로 엮어 낸 캠페인. 고객 불만을 티몬의 캐릭터 ‘티모니’가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몬소리체와 티움체는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강한 느낌이 공존하는데, 고객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티몬의 지향점이 서체에도 반영돼 있음을 알 수 있다.

▲ 몬소리체로 만든 티몬의 옥외 광고 ⓒ티몬 크리에이티브센터

식음료 분야에서는 빙그레가 한글날이자 자사 창립일인 지난 2016년 10월 9일 빙그레체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빙그레체는 건강, 행복, 미소 등의 콘셉트가 담긴 서체로, 자사 제품인 바나나맛 우유의 패키지 로고에서 착안해 디자인됐다. 따뜻하며 포근한 이미지가 특징이다. 한편 대상은 2014년 청정원 브랜드를 리뉴얼하면서 청정원 명조체와 청정원 고딕체 2종을 배포했다.

롯데마트도 국내 대형마트 중에서는 처음으로 일찌감치 전용 서체를 선보였다. 헤드라인용 행복체와 본문용 드림체가 포함된 통큰서체 패키지는 고객과의 유대감 및 친근감을 서체로 표현해 냈다.

이 외에도 네이버의 나눔체,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체, 야놀자의 야체 등도 모두 무료 서체이다. 이들 기업 전용 서체에는 비상업적 용도에만 사용이 허가되는 서체가 있는가 하면 상업적 용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서체가 있기 때문에 매뉴얼을 잘 숙지한 뒤 사용해야 한다.

▲ 따뜻하고 포근한 이미지의 빙그레체 ⓒ빙그레체 갤러리

 

전용 서체 개발, 결국 디지털 환경에서 기인

국내에서 전용 서체에 관심을 보인 첫 번째 사례는 현대카드다. 현대카드는 삼성과 LG가 신용카드 업계를 양분하고 있던 시절 뒤늦게 시장에 진입했지만, 누가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는 현대카드만의 ‘유앤아이’ 전용 서체를 만듦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서체를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전략은 점차 진화해 왔으며,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현대카드의 유앤아이 서체와 달리 무료로 배포해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

서체 개발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왜 기업들이 서체 개발에 뛰어들고, 이를 무료로 배포하는 걸까?

❶우선 전용 서체는 일관된 브랜드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데 일조함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전용 서체가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서체를 통해 해당 기업에 친숙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처럼 친밀도가 높아지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는 곧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서체는 기업의 로고나 심볼과 달리 소비자가 직접 사용할 수 있으며, 바이럴을 통해 사용자 체험을 확장할 수 있다. 결국 전용 서체의 무료 배포는 많은 사람이 사용하게 함으로써 유대감을 강화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❷과거에는 일반에 공개된 무료 서체라 할지라도 개인적 이용에 국한되거나 배포 및 전송이 금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전용 서체가 없는 기업들이 이런 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 무료 서체를 사용하다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했다. 최근 배포되는 무료 서체 중에는 상업적 이용은 물론, 수정까지 허락하고 있어 저작권 침해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❸전용 서체 개발 트렌드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디지털 시대의 개막이다. 디지털은 가장 아날로그적이라고 생각됐던 서체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전용 서체 개발의 필요성을 야기했다. 인쇄용 아날로그 서체는 디지털에 그대로 적용했을 때 가독성에 문제가 생긴다. 모바일 환경에서는 글자가 더 작아보인다든지 선명도가 떨어지는 등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얘기.

KT의 경우도 기존에 만들어 놓은 올레체가 있었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올레체를 리뉴얼한 올레 네오체를 만들어 사용 중이다. 이처럼 SNS를 통한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요즘 손바닥만 한 모바일 화면에서 기업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려면 가독성은 물론 기업의 개성이 담긴 서체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체 마케팅, 이것이 관건

기업들이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서체 개발도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그보다는 개발한 서체를 소비자들이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만들었건만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전용 서체는 통합 캠페인을 통해 충분한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전용 서체가 유행이라고 해서 단시간 내에 성과를 보겠다고 덤벼들면 안 된다. 무분별한 전용 서체 개발은 오히려 시각 공해를 일으킬 수 있고, 기업 이미지에도 흠을 입힐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체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인 끝에 결실을 맺었다. 소비자들은 정성이 깃든 서체와 그렇지 않은 서체를 구별할 줄 안다.

▲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들인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체 Ⓒamorepacific.com

서체에 스토리텔링을 담아 내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요즘은 기업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서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충남 아산시는 이순신체와 이순신돋움체를 배포했으며, 경기도 포천시도 오성과한음체, 막걸리체를 선보였다. 이 서체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지역의 스토리텔링이 가미됐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화장품 회사 러쉬는 천연 재료를 사용해 핸드메이드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쉬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영국의 마켓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손글씨를 바탕으로 서체를 만들었다. 이처럼 브랜드의 콘셉트를 서체에도 일관성 있게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서 소개했던 배달의민족 역시 B급, 키치, 유머, 복고 등의 브랜드 콘셉트와 어울리는 서체를 개발했다. 만약 배달의민족이 세련되고 말쑥한 서체를 개발했다면 100만 다운로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체 마케팅은 이처럼 서체를 통해 일관성 있는 브랜드 경험을 소비자에게 전달할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 배달의민족 서체 다운로드
● 티몬 서체 다운로드
빙그레 서체 다운로드
롯데마트 서체 다운로드
아모레퍼시픽 서체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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