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7. 10:00

사람들은 일상을 ‘평범함’이라는 수식어로 규정하지만, 사실 삶을 추동하는 힘은 일상 속에 있다. 일상이 어떻게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 2017 칸 라이언즈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제일 세미나 <The Power of Boredom: How Ordinary Can Be Extraordinary>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 인터뷰를 꾸며 봤다. 

나영석 PD 인터뷰_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  

Q. <1박 2일>과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각종 미션을 수행하거나 생애 첫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나는 등 비일상적 소재를 다뤘다. 이에 비해 <삼시세끼>는 그야말로 삼시 세끼를 해 먹는 평범한 내용이다. 비일상적 코드에서 일상적 코드로 관심이 전환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영석 PD: 나는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15년 넘게 국내외 328곳을 돌아다녔다. 한마디로 여행을 엄청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돌아다녔는지 어느 순간 일도, 여행도 지겨워졌다. 그즈음 이우정 작가가 “이도 저도 다 싫고, 작은 시골집에서 비가 오면 빗소리나 들으면서 부침개 먹으며 만화책 보다가 잠이나 자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다. 나 또한 한때는 그냥 마음 편히 놀고 먹는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만약 내게 휴가가 주어진다면 뭘 할까? 아마도 사람들은 휴가를 의미 있게 지내기 위해 이런저런 재미 있고 특별한 일을 계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재미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휴식을 원했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게 바로 <삼시세끼>다.

 

Q. <삼시세끼>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나영석 PD: 복잡하고 골치 아픈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가서 한가롭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막상 귀농귀촌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평소 그런 갈증을 어떻게 해소할까 의문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손에 잡힌 잡지 한 권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 잡지에서 보여주는 자연주의적 삶은 리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그럴 듯하게 포장된 연출이었다.

놀라운 건 사람들이 그게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본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자연주의 라이프’가 아니라 필요할 때 힐링할 수 있는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였다. <삼시세끼>는 치열하게 뭔가를 얻으려고 애쓰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놀고 먹고 자고 빈둥거리는 콘셉트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게 그런 삶 아닌가.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주고 싶었다.

 

Q. <삼시세끼>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나영석 PD: 첫 번째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간 TV 예능 프로그램은 대개 경쟁 모드였다. 밖에 나가 일하고 공부하면서 늘 경쟁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데, 집에 와 쉬면서 TV에서조차 또 경쟁 프로그램을 봐야 하나. 이제는 그런 경쟁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즉 사회적 성공이 행복을 담보하는 게 아니라 내 일상에 숨통이 트이면 그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늘고 있다. 사람들이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삼시세끼>는 저 정도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싶은 공감대가 있었다. 무일푼으로 산에서 얼마간 혼자 지내거나 고급 빌라를 임대해 임시로 생활해 보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반면에 <삼시세끼>를 보는 시청자들은 ‘한 발짝만 내딛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다. <삼시세끼>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판타지’로 인식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귀농이나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을 주려고 했는데, 시청자들에겐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나는 이걸 ‘Affordable Fantasy’라고 말한다.

 

배우 이서진 인터뷰 _ 공감의 핵심은 인위적 하모니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불협화음

Q. 처음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맨 처음 나영석 PD에게 제안이 왔을 때 완강하게 거절했다.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일었다. 게다가 나는 강직하고 무뚝뚝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왔다. 코믹한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를 즐겁게 하고 웃길 수 있겠는가.

 

Q. 그렇다면 ‘예능 대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는 1999년 데뷔해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로 주인공을 맡아 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예능으로 더 유명해진 것 같다. 나도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해 봤다. 일반적으로 예능 출연자들은 오버액션하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억지스러운 행동을 싫어한다. 그래서 ‘연기’를 하지 않고,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 줬다. 불만이 있으면 투덜대고, 힘들면 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런 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Q. 개인적으로 <삼시세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삼시세끼>는 언뜻 리얼 다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 치밀하게 짜여졌다. 시골에 가서 산다고 문제가 없을 리 없는데, <삼시세끼>는 그런 일상적 걱정거리를 배제한 채 평온하게 먹고 노는 장면만 편집해 내보냈다. 또한 나영석 PD는 내게 ‘하모니’가 아니라 ‘불협화음’을 원했다. 사람들은 억지로 짜맞춘 하모니보다 솔직한 불협화음에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방송의 재미를 위한 나 PD의 철저한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일기획 웨인 초이 전무 인터뷰 _ 평범한 사물에서 특별함을 끄집어 내다

Q. 광고인의 관점에서 지루함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웨인 초이 전무: 광고는 기존에 보여 주지 않았던 걸 보여 주고, 늘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지루하고 평범하고 시시했던 것들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광고인에게는 그 순간을 잘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Q. 그런 순간을 포착한 크리에이티브를 예로 든다면?

웨인 초이 전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하찮아서 사람들 관심 밖에 있는 물건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버블랩(Bubble Wrap), 즉 ‘뽁뽁이’다. 물건 배송 시 사용되는 뽁뽁이는 역할을 다하고 나면 그냥 버려진다.

그런데 뽁뽁이를 창문에 부착하면 실내 온도가 3~4℃ 올라가고, 난방 에너지가 28% 절감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전부터 겨울에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뽁뽁이를 붙이는 집이 늘었다. 쓸모 없던 물건이 새로운 쓸모를 얻은 것이다. 이처럼 사물이 지닌 가치와 효용성은 그 사물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달려 있다. 그런 순간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면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히트텍 윈도우> 캠페인은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바라본 결과물인가?

웨인 초이 전무: 제일기획은 뽁뽁이에 착안해 난방비 걱정을 덜고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자는 취지의 CSR 캠페인을 구상했다. 그리고 이 뽁뽁이가 매개가 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았다. 최적의 브랜드는 ‘히트텍’이란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는 유니클로였다. 히트텍도 착용 시 평균 3~4℃의 보온 효과가 있다. 뽁뽁이는 집이 입는 히트텍인 셈이다.

우리는 히트텍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히트텍 윈도우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소비자들은 히트텍 윈도우를 각자 자기 집 창문에 붙였는데, 그 자체로 브랜드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히트텍 윈도우> 캠페인은 소비자들에게 무슨 거창하고 대단한 이벤트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저 뽁뽁이를 붙이는 일상적 행동을 유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은 특별함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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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eativeAds says:

    웨인 초이님의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쳐갔던 것들이 다시 새롭게 다가올 때, 가치는새로워진다. 마치 좋은 책같은 느낌입니다.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장 끝편에 꽂히고, 다시 스테디셀러가 되는 문학작품 같은…ㅎ. 이런 흐름을 볼 줄 알면서, 흐름을 불러일으킬 줄도 아는 것이 광고인의 크리에이티브 능력이 아닌가싶습니다.

    1. 제일기획 says:

      좋은 생각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