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5. 10:00

기업이 소비자와 만나는 채널이 많아지고 있다. 이 얘기는 그만큼 소비자의 시선이 분산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흩어져 있는 소비자의 관심을 어떻게 집중시킬 것인가가 관건. 요즘 소비자들은 강렬한 시청각 자극을 선호한다. 그런 점에서 VR은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매력적 수단이다.  

VR, 브랜드의 새로운 도구

많은 전문가가 2016년을 ‘시장의 원년’으로 평가하며 VR 시장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그 예상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VR 멀미나 어지럼증 등에 대한 문제는 계속되고 있고, 기어 VR이나 오큘러스 같은 전용 하드웨어(HMD)의 판매 속도도 생각보다 느리다. 눈길을 사로잡는 ‘킬러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 및 유통하는 플랫폼도 부족하다. 그러나 MIT, KPMG, 가트너 등 전문 기관과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등 IT 거인들은 VR을 여전히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VR이 소비자에게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 디지털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며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될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 따라서 독자적 시장을 형성하지 못했던 3D 기술과 차별점이 있다는 점에는 분명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진 듯하다.

시장 조사 기관인 포레스터는 다소 느린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HMD 시장이 나름대로 성장을 거듭, 2020년까지 약 5,200만 대 이상의 기기가 출하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언급한 페이스북을 포함해 텐센트, 구글, 알리바바 등 『 MIT 테크놀로지 리뷰 』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기업’으로 꼽은 곳들 대부분은 조만간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VR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페이스북이 올해 F8에서 공개한 소셜 VR 서비스 ‘페이스북 스페이스’. Ⓒfacebook.com/spaces 

무엇보다 산업군을 막론하고 모든 마케터들은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집중하고 있다. SNS가 발달하고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기업이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채널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시선과 주목도 역시 분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의 눈을 묶어 놓을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지상 과제로 떠올랐다. 강렬한 시청각 자극을 동반하는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는 경향이 대세로 자리 잡은 가운데, VR은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수단으로 조망받고 있다.

 

젊고 새로운 기업 이미지

기업이 직접 콘텐츠 생산자가 돼 스토리를 전달하는 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소비 행태와 미디어 환경이 변화한 만큼 보다 흥미로운 형식으로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는지가 마케터들에게 관건이 됐다. VR은 콘텐츠의 몰입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해당 브랜드에게 ‘혁신적’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라는 점에서 마케터들에게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수단으로 다가온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감상자의 경험을 증폭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는 각각 설립된 지 120년과 60년 이상 된 기업이지만, 젊은 세대의 입맛에 어울릴 만한 브랜드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지속적으로 VR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진행 중이다. 코카콜라는 이미 2012년 ‘코카콜라 저니(Coca-Cola Journey)’ 플랫폼을 론칭하며 영상, 음악 및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실험한 이력이 있다. 2015년 말에는 크리스마스 기념 캠페인의 일환으로 썰매 타기 VR 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고, 구글 카드보드 헤드셋을 만드는 방식과 유사하게 코카콜라 상자를 재활용해 만들 수 있는 DIY 헤드셋을 내놓기도 했다.

코카콜라의 DIY 헤드셋.  ⒸThe Coca-Cola Co

‘젊고 새로운’ 기업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코카콜라와 마찬가지로 맥도널드 역시 VR을 활용,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을 만한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한다.

HMD로 재활용할 수 있는 해피밀 박스를 출시하면서 VR 게임 ‘슬로프 스타스’를 함께 론칭, 시너지를 높였다. 구글의 틸트브러시를 이용, 소비자가 해피밀 박스 안에 들어가 내부를 색칠하는 듯한 경험을 누릴 수 있게 한 캠페인은 매우 흥미로운 VR 스토리텔링 사례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VR 기술의 독보성이란 그 감상자로 하여금 콘텐츠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데 있는 만큼, 모션 트래킹 하드웨어와 VR을 활용해 소비자가 브랜드 콘텐츠를 스스로 창작하고 즐거움을 누리게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를 얻어 낸 것이다.

맥도널드의 DIY 헤드셋. Ⓒhappygoggles.se 

 

고객층은 확대, 운영 비용은 절감

한편 자동차 산업은 보다 현실적인 이유에서 VR 스토리를 구상하고 제공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BMW, 아우디, 폭스바겐, 렉서스, 포르셰, 혼다 등이 이미 VR 광고를 집행하거나 VR을 활용한 소셜 마케팅을 진행한 바 있다.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이 연이어 등장하고 구글, 테슬라, 우버 등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장이 격변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자사의 혁신성에 대해 끊임없이 호소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태껏 소비자들이 자동차에 기대할 만한 경험들, 예컨대 고급차 시승, 랠리 일주 등이 일부 고객에게만 한정적으로 제공되었으나 VR은 이 두 가지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신차의 특징을 살펴보게 하고,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를 주행해 보게 하고,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게 하는 등 다양한 VR 콘텐츠를 활용하고 있다.

일례로 포르셰는 ‘포르셰 360 익스피리언스’ 등 스포츠카 시승 체험을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볼보는 ‘볼보 리얼리티 앱’을 통해 소비자들이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카드보드 등을 활용해 볼보의 SUV를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포드VR’ 앱을 내놓은 포드는 고유의 터프함과 혁신성을 강조한 VR 콘텐츠를 배포 중이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도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서 VR 콘텐츠를 활용하고 있는데,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가 차종, 색깔, 타이어 등 옵션을 선택한 후 그 자동차를 가상으로 운전해 보는 식이다. 쇼룸에 모든 종류의 자동차를 실제로 구비하지 않아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간 운영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동일한 목적에서 GM 역시 미국의 캐딜락 대리점 중 일부를 VR로 설계 및 운영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대다수의 자동차 브랜드에게 VR은 소비자와의 터치포인트를 확대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올해 MWC 삼성전자 부스에서 선보인 VR 4D 체험존. 가상현실을 체험해 보려는 방문객들의 줄이 끊이지 않았다. Ⓒ삼성전자 

 

경험을 확장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궁극의 공감 기계

음식료 및 자동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패션 산업 역시 전통적 오프라인 매장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더군다나 제품에 대한 시각적 경험이 중요하다. 그래서 도제식의 보수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VR 기술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듯하다. 많은 브랜드가 VR을 활용해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제고하고 최적의 형태로 제품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2013년에 프라다, 2014년에 탑샵, 2015년에 토미 힐피거와 디올 등이 VR로 패션쇼를 진행했다.

2017 파리 패션위크 런웨이를 VR로 생중계한 H&M. ⒸH&M

VR은 S/S나 F/W 패션위크 등 특정한 시공간에서 한정적으로 소비되는 런웨이라는 시각적 콘텐츠를 다수 소비자에게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브랜드가 원하는 최적의 형태로 제품을 제시하며 시공간 자체를 브랜디드 콘텐츠의 일부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VR을 통해 쇼핑을 즐기게 하는 ‘가상 매장(Virtual Showroom)’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푸드 커머스 기업 쿨호보(Cool Hobo, 胡羅舶)가 VR 커머스를 위한 플랫폼을 론칭한 것도, 물건을 구매하고 구경하는 여정(Customer Journey)에 풍부한 스토리를 더해 소비자가 누릴 수 있는 경험의 폭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HMD를 착용한 후 세계 곳곳으로 음식 여행을 떠나는데, 이탈리아산 와인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에게 이탈리아의 농장에서 포도가 재배되는 과정을 보여 주며 와인에 잘 어울리는 음식을 함께 소개하는 식이다.

치즈 회사 부르생(Boursin)이 ‘먹거리 여행’ VR 콘텐츠를 제작해 리테일 매장에 공급한 것이나 주류 회사 패트론(Patron)이 농장에서 공장을 거쳐 파티에 이르기까지 ‘데킬라의 여정’을 VR로 제작한 것 또한 동일한 목적에서 이뤄진 시도라 할 수 있다. 소비자는 단지 와인과 치즈, 데킬라를 구매한 데 그치지 않고 상하좌우로 뻗어나가는 스토리를 향유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인상을 받으며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VR은 SXSW에서 얻은 ‘궁극의 공감 기계(The Ultimate Empathy Machine)’라는 별명에 걸맞게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에 의미를 부여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며 고급 식재료와 관련된 스토리를 제공하는 쿨호보. Ⓒcoolhobo.com

 

변화하는 소비자를 위한 VR 스토리텔링

너무 많은 콘텐츠가 너무 많은 채널을 통해 소비되며, 콘텐츠와 채널에 있어 모든 것이 과잉된 양상을 보이는 지금 브랜드의 이름만으로 소비자에게 호소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정한 브랜드를 필요로 하며 그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과정에 있어 소비자가 보다 특별하고 독보적인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스토리를 설계, 제공하는 것이 나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경제지 『포브스』는 앞으로 어떤 사업을 전개함에 있어 디지털 환경에 부응하는 스토리텔링을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사업의 경쟁력을 판가름할 것임을 강조한 바 있으며, 마케터들이 브랜드 스토리텔링을 위한 도구로서 VR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콘텐츠가 빠르게 희석되는 상황에서 브랜드는 어떻게 자신의 스토리를 기억할 만한 것으로 각인시킬 것인가? VR은 스토리텔링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감상자를 콘텐츠 안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360°를 아우르는 입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며 마치 현실과 같은, 그러나 더 흥미롭고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태껏 VR 콘텐츠의 한계 중 하나로 지적돼 온 ‘거짓된 인터랙션’, 즉 마치 콘텐츠 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콘텐츠의 인물이나 사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에 느껴지는 실망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게임 엔진 등을 차용해 사용자가 콘텐츠와 진정한 인터랙션을 진행할 수 있게 콘텐츠를 만드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단선적인 스토리텔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광고성 콘텐츠는 쉽게 차단해 버리는 사용자들이 증가하는 지금, 마케터들은 AR의 선례를 참조해 VR 스토리텔링을 고민해 볼 수도 있다. 지금처럼 많은 소비자가 AR 기술에 친근감을 느끼며 스노우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고, 페이스북과 구글 등이 AR 카메라 서비스를 발표하는 배경에는 ‘포켓몬GO’라는 킬러 콘텐츠가 있었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모바일 게임 앱은 그때껏 사용자들이 누릴 수 없었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시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다. 경험의 독특함과 즐거움이란 VR 콘텐츠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만한 기준일 것이다. 앞으로 VR이 소비자에게 어떤 식의 재미를 제공하면서 브랜드와의 관계를 공고히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궁극의 이야기’를 향한 흥미로운 실험을 기대해 본다.

페이스북 트위터 URL 공유 인쇄 목록

소셜로그인 카카오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