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소비자를 이해하다 | 제일기획 블로그
2017.10.13. 15:00

시장의 흐름을 읽고, 주변의 반응을 살피고, 자신의 직관을 믿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마케터는 ‘감(感)’ 대신 ‘데이터’의 숭배자가 돼야 할 상황에 놓였다. 데이터가 소비자의 심리를 열 수 있는 치트키(Cheat Key)일 수 있음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맞춤화 단계로 접어든 마케팅

오랜 기간 마케터들은 마치 신화 속 영웅처럼 소비자의 행동 속 숨겨진 동인을 찾아 지난한 여행을 해 왔다. 그간 참으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소비자의 심리는 여전히 안개에 가려진 산봉우리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풀리지 않던 ‘오래된 숙제’의 정답이 드디어 밝혀질 모양이다.

이 놀라운 사건의 단초는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세상에서 확인된다. 이제 세상은 실시간으로 막대한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실시간 통계사이트 ‘Worldometers’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매일 2,100억 통 이상의 이메일이 발송된다. 그러니 현대인 한 명이 하루에 접하는 정보량은 20세기 초 한 명이 평생 접한 정보량에 버금간다는 말이 실감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산돼 축적된 이른바 ‘빅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 알고리즘을 만드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심리라는 오래된 숙제가 풀릴 수 있게 됐다.

일단 인터넷 기반의 빅데이터가 수집되면 고객의 나이와 성별, 거주지는 물론이고 쇼핑 시간대와 평균 소비 금액 등 아주 디테일한 정보 취득이 가능하다. 이를 바탕으로 마치 의사가 핀셋으로 환부를 치료하듯 정교한 마케팅이 가능해졌다. 그뿐인가. 기존에는 마케팅이 다중을 상대로 한 미디어에 주로 의존해야 했지만, 이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의 행동을 분석하는 예측 마케팅은 타깃을 개인 단위로 좁힌 미세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다른 선택

빅데이터로 소비자의 개인적 취향을 저격한 대표 주자는 역시 넷플릭스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컴퓨터 공학자와 빅데이터 전문가를 대거 영입, 고객이 구입한 영화 목록과 시청한 영화에 부여한 평점 등을 분석하는 빅데이터 시스템을 개발했고, 고객별 웹사이트 이용 시 행동 패턴 등을 분류해 개인별 맞춤 페이지를 구축했다. 바로 이런 사용자 맞춤형 추천 시스템(Cine Match)으로 “상품이 아니라 취향을 판다”는 전략을 실천한 넷플릭스는 단순히 고객이 원하는 영화를 추천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2013년 첫 자체 제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선보였다. 한 TV 평론가가 “TV의 역사는 <하우스 오브 카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극찬했을 정도로 큰 성과를 거머쥔 이 드라마는 ‘몰아보기(Binge Watching)’ 현상까지 불러일으킬 만큼 열풍을 일으켰다.

넷플릭스가 온라인상에서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 ‘넷플릭스 오리지널(Netflix Original)’. Ⓒnetflix.com

오리지널 자체 제작 경험이 전무했던 넷플릭스의 첫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것은 ‘천운’ 때문이 아니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들로부터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하고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을 맡은 오리지널 시리즈라면 성공할 것”이란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예측된 흥행’이었다. 결국 빅데이터가 답이었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빅데이터 분석에 능한 아마존이 만든 오리지널 시리즈 <알파 하우스(Alpha House)>는 왜 그러한 열풍을 일으키지 못했을까?

아마존은 본편을 공개하기 전 8개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무료 공개하면서 시장의 반응을 살펴보는 전통적 방식을 취한 반면, 넷플릭스는 13편을 한꺼번에 제작 출시하는 공격적 방식을 취했다. 즉 넷플릭스가 흥행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오리지널 제작에 투자할 것이란 진정성을 알림으로써 화려한 제작진과 출연진을 확보한 반면, 아마존은 이런 인적 인프라를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즉 데이터의 양이나 분석의 정교함이 다가 아니라, 이를 통해 ‘누가’ 최종 결단하고 ‘어떻게’ 진행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아마존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 Ⓒstudios.amazon.com

 

다중의 트렌드에서 개인의 취향으로

그런가 하면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한 기업들도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와비 파커(Warby Parker)와 스티치픽스(Stitch Fix)는 안경과 패션이라는 이종 상품을 판매하지만 유사한 툴을 적용해 성공을 거뒀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패스트컴퍼니』가 ‘2015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한 와비 파커는 안경점을 방문해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을 구입하는 방식이 아닌 ‘홈 트라이온(Home Try on)’이라는 시스템을 개발, 온라인에서 직접 구매하도록 판매 방식을 바꿨다. 소비자가 홈 트라이온에 접속해 자신이 원하는 안경 5개를 신청한 후 시력 확인서를 업로드하면, 와비 파커는 2주 뒤에 5개의 안경을 보내 준다. 착용해 본 뒤 마음에 드는 제품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반송하면 된다. 이때 배송 및 반송 비용은 와비 파크가 전액 부담한다.

스타일리스트의 가이드와 인공지능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티치픽스. ⒸStitch Fix


정교한 데이터 분석과 상상력이 관건

앞에서 언급한 두 기업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보다 정교해진 선택을 유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면, 맞춤형 언더웨어 기업 트루앤코(True & Co)는 창업 5년 만에 패션그룹 PVH에 고가에 매각된 스타트업으로 여성들의 ‘오래된 선택’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언더웨어 중에서 브래지어는 여성들을 평생 불편하게 만든다. 이미 생산된 제품에 자신의 몸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트루앤코는 허를 찌르는 상상력이 발휘된 질문을 던졌다. 여성들의 몸에 브래지어를 맞출 수는 없을까? 트루앤코는 소비자에게 “브래지어의 어깨끈이 자주 흘러내리는가?”, “평소에 후크를 어디에 거는가?” 등의 질문을 던진 후 개별 소비자의 다양한 체형에 맞는 제품을 추천한다. 이를 위해 트루앤코는 1억 3,000만 명에 달하는 여성의 가슴 형태에 대한 정교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즉 빅데이터와 추천 알고리즘의 결합을 통해 생산자가 규격화시킨 일률적 사이즈에 적응해야만 했던 여성들의 오랜 불편함을 덜어준 것이다. 트루앤코의 이런 시도는 다른 스타트업에도 영감을 주고 있다.

빅데이터와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소비자에게 맞춤형 속옷을 제공하는 트루앤코. Ⓒtrueandco.com

1980년대 후반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Spiegel)』은 “정보가 권력인 시대가 온다”고 예견했었다. 비슷한 시기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러니 빅데이터는 정보의 바다에서 정제된 소금을 추출해 내는 일인 셈이다. 다종의 데이터는 시시각각 무한대로 생산되고 축적된다. 이 정제되지 않고 세포분열을 거듭하는 데이터의 패턴을 분석하고 가공 처리해 유용한 정보로 만들 때 비로소 빅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은 오래된 숙제의 정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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