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16. 09:30

칸 라이언즈 참관 기간 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러시아 월드컵 예선 1차전 패배요, 두 번째는 팀의 출품작이 본상 수상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었다. 경기에서 지고 나면 으레 지난 경기를 복기해 보는 작업이 뒤따르기 마련. 나 역시 비디오 분석관이 된 기분으로 매일 저녁 어워드 쇼에서 수상작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이미 잘 알려진 큰 상을 받은 작품들보다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위주로,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Brand Experience 분야의 캠페인들을 중심으로 작성해 본 복기록을 이 지면을 빌려 공유한다.

“운동은 끝나고 먹는 것까지가 운동”

운동 마니아로 알려진 가수 김종국 씨는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다. 수상작 중에서 특히나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고 집행하는 과정이 지난했을 법한 작품들을 볼 때면 ‘크리에이티브도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과정까지가 크리에이티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담한 아이디어를 집행하기 위해 더 빛나는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해야 했을 작품들을 소개한다.

■ 디젤의 <Go with Fake>캠페인

‘짝퉁’은 기업들의 영원한 골칫거리 중 하나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패션 브랜드 디젤(Diesel)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짝퉁을 단속의 대상이 아니라 유쾌한 이벤트의 소재로 승화시켰다. 오리지널 디젤 제품에 스펠링을 ‘Deisel’로 바꾼 가짜 로고를 달아 짝퉁 가격에 판매하는 스트리트 스토어를 뉴욕에 오픈한 것이다.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행인들에게 말한다.

“이거 오리지널 디젤이에요! 로고만 가짜예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손님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 필름을 뉴욕패션위크 오픈 전에 대중들에게 공개하자, 짝퉁 로고를 단 오리지널 디젤 제품은 원래 가격으로 돌아왔음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과는 패션위크가 열리는 뉴욕 5번가가 아닌, 커널 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 사이 허름한 교차로에 패셔니스타들과 미디어들의 기나긴 줄을 세웠다는 점이다. 이런 형태의 이벤트를 통해 브랜드 밸류를 유쾌하게 빌드업할 수 있다는 점을 클라이언트에게 어떻게 설득했을까? 크리에이터들에게 아낌없는 물개박수를 보낸다.

■ 라코스테의 <Save our Species>캠페인

라코스테(Lacoste)는 파리패션위크에서 1775벌의 새로운 폴로셔츠를 론칭했다. 그것은 바로 라코스테의 상징인 악어 로고 대신 10종의 멸종위기동물 로고를 단 스페셜 에디션! 1775벌이라는 숫자는 각 동물들의 현재 개체 수에서 따왔다. 최고 위험도의 멸종위기종인 바키타 돌고래 에디션은 단 30벌만 제작돼 더 희소성 있는 아이템이 되는 구조. 뿐만 아니라 수익금은 기부돼 구매자들에게 더 큰 만족감과 자부심을 선사했다. 아이디어 자체도 멋지지만, 85년 동안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로고를 바꿀 것을 제안하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한 용기가 더 크게 빛난 캠페인이 아닐까? 단 24시간 만에 모든 제품이 팔리며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스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메시나 호날두처럼 묵직한 한 방을 가지고 있는 스타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강력한 인플루언서를 선정하는 것은 우리가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빈번히 마주치는 과제 중 하나다. 혹시 나처럼 ‘근데 우리는 메시도, 호날두도 없잖아. 우린 안될 거야’라며 울상을 지어 본 경험이 있다면, 스키틀즈의 캠페인을 눈여겨보시기 바란다.

■ 스키틀즈의 <Exclusive the Rainbow> 캠페인

스키틀즈(Skittles)는 슈퍼볼 캠페인을 발표하며 대중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슈퍼볼 광고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공개될 것이며, 그 한 사람은 평범한 10대 소년인 마르코스 멘데즈”라는 사실을 공표한 것. 이 사실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전파됐고, 멘데즈는 깜짝 스타가 됐다. 덩달아 그에게만 공개된다는 슈퍼볼 광고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그리고 슈퍼볼 당일, 궁금증을 참지 못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스키틀즈 슈퍼볼 광고를 보는 멘데즈의 모습을 지켜본다. 이를 통해 스키틀즈는 TV 매체비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무려 20분 동안 슈퍼볼 캠페인을 집행했으며, 빅모델을 쓰지 않고 오히려 빅모델을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스타는 크리에이티브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묵직한 한 방이다.

 

우리 동네 대하드라마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같은 무게의 무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어쩌면 고정관념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일상의 공간을 낯설게 만들어 놀라운 메시지를 전달한 이채로운 캠페인들에 특히나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화두가 되기 시작한 제노포비아와 여성 인권 문제를 가볍고 또 무겁게 다룬 두 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 에데카의 <The Most German Supermarket>캠페인

제노포비아 이슈는 전 세계적인 담론이다. 유럽은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이민자들에 대한 강경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독일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인 에데카(EDEKA)는 이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화끈하고 쇼킹하게 전달하는 캠페인을 집행했다. ‘The Most German Supermarket’이라는 슬로건 아래 자사의 마트에서 모든 수입산 제품들을 빼버린 것이다. 넓은 매대가 텅텅 빈 모습을 보며 아연실색하는 쇼핑객들의 표정이 압권이다. ‘이 매대는 이방인 없이 채워지지 않는다’, ‘다양성이 없는 독일은 빈곤해질 것이다’ 등 빈 선반에 올려진 짧은 카피들이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전한다. “이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라는 한 할머니의 반응은 동네 마트에서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의 최대치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 맥도날드의 <The Flip>캠페인

세계여성인권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맥도날드는 대담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맥도날드 (McDonald’s)의 ‘M’자 로고를 위아래로 뒤집어 여성을 상징하는 ‘W’로 만든 것. 포장지와 유니폼의 로고도 모두 W로 바꿨지만, 어찌 보면 바뀐 것은 단지 그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평범한 햄버거 가게가 여심을 뜨겁게 울리는 인스타그래머블 포토존으로 재탄생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쏟아진 인증샷 덕분에 수많은 버즈를 일으킨 것은 물론 소비자의 가슴에 맥도날드를 향한 러브마크를 쾅쾅 찍는 효자 캠페인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2018 칸 라이언즈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세션 중 하나는 Droga5의 창립자 데이비드 드로가가 진행한 세션이었다. 드로가는 “사람들이 왜 광고를 좋아하지 않을까? 그것은 광고가 멋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네가 시험을 못 본 이유는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기적의 논리였지만, 뒤이어 틀어준 영상에 뭉클함을 느꼈다. Droga5가 제작한 크리스티의 <The last de Vinci>를 마지막으로 주절주절 써 본 이 복기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영상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상을 받기 위해서도 아닌, 그저 내가 만든 무언가를 누군가가 저런 표정으로 봐 주길 바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캠페인을 꿈꾸며, 오늘도 묵묵히 치열한 전선 위에 서 있는 모든 제일러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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