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5. 10:00

최근 떠오르고 있는 학문인 신경건축학을 비롯해 그린테리어 등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집 안을 극장으로 만드는 사운드바, 게이밍 제품, 호텔식 고급 침구나 리클라이너 같은 휴식 가구 등 집에서 휴식과 여가, 재충전을 꾀하는 홈루덴스족을 위한 관련 제품도 다양하다. 홈루덴스족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 사례를 살펴본다.

2018년 주목받는 리빙 트렌드

‘홈루덴스’족은 집을 뜻하는 홈(Home)과 유희, 놀이를 뜻하는 루덴스(Ludens)가 합쳐진 신조어로 주거 공간인 집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한 장소로 호텔보다 집을 선택한 답변이 58%일 정도로 2018년 주목받는 리빙 트렌드 중 하나가 홈루덴스족이다.

어원을 살펴보면, 인간은 놀이를 통해 역사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유희적 본성’을 주목한 네덜란드 역사문화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언급한 호모 루덴스에서 찾을 수 있다. 잘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더 재미있고 집중하며 더 창의적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일례로 구글이나 아마존처럼 IT 분야의 세계적 기업일수록 사무실을 마치 놀이터처럼 꾸몄다.

결국 홈루덴스족에게 집은 더 이상 부의 개념이 아닌 나만의 아지트이고 휴식 공간이자 내 취향을 오롯이 실현하는 공간이란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실제로 20~30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국내 결혼정보회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4명(44.9%)이 집에서 쉬거나 특별한 계획 없이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집, 물리적 공간에서 심미적 공간으로

홈루덴스족의 등장이 가져온 대표적인 변화로는 집을 물리적 공간에서 심미적 공간으로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87년 스타벅스를 인수한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를 단순히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닌 여가의 공간이자 자유의 공간인 ‘제3의 공간’으로 인식시켜 성공했다. 스타벅스에 대한 하워드 슐츠의 전략처럼 홈루덴스족에겐 집이란 소비를 담당하는 제1의 공간이 아닌 제3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를 반영하듯 유명 학군, 교통 접근성처럼 부의 가치로 추산할 수 없는 심리적 가치를 중시하는 신경건축학에서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1984년 태동된 신경건축학은 공간의 어떤 요소가 구체적으로 인간 뇌의 어느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지향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떤 공간을 접할 때 행복을 느끼는 순간 분비되는 세로토닌과 반대로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분비되는 엔도르핀의 측정을 통해 뇌와 신경계가 행복하다고 반응하는 공간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 분리된 주방보다는 아일랜드 키친에서 조리할 때 애착 형성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분비가 늘어나 만족감이 높아진다고 한다. 또 가구나 벽의 모서리가 둥글 때 긴장감이 줄어들고, 따뜻한 색깔의 인테리어를 사용할 경우 행복감을 높여주는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난다고 한다. 자녀들에게서 창의적인 결과를 얻고 싶다면 공부방을 빨간색보다 파랑색 공간으로 만들고, 낮은 천장보다는 3m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햇빛이 잘 드는 열린 공간에 책상을 배치하는 게 좋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실제 집을 꾸미는 인테리어 시장도 커지는 추세이다. 단순히 북유럽풍 소품이나 가구를 이용한 DIY 차원에서 탈피해 스트레스가 풀리는 나만의 공간을 뜻하는 ‘케렌시아’ 개념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투우장에서 소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자기만의 공간(케렌시아)처럼 현대인들에게도 여유와 힐링을 위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게다.

▲ 전국 누적 판매 1위를 기록한 핸슨의 1인용 리클라이너. 휴식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가운데 1인용 리클라이너 시장이 커지고 있다. Ⓒhansonsofa.com

 

프리미엄 가전제품을 들여놓거나 프랑스풍 보라색 천연가죽을 사용한 고급 소파에서부터 각도 조절이 자유로운 전동 리클라이너를 통해 주거 공간을 자신만의 질 높은 휴식 공간으로 만든다. 더 나아가 내 방을 쾌적하고 편리한 호텔 룸처럼 바꾸는 홈 드레싱을 위해 침구, 디퓨저, 수건 등을 구미에 맞게 바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 덩달아 호텔식 침구 서비스 전문 업체까지 등장할 정도다. 신라호텔의 뷰티레스트 더원, 롯데호텔의 해온 등 럭셔리한 호텔 침구가 대표적이며, 특히 30~40대와 신혼부부들의 구매 비중이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할 정도로 인기다.

▲ 롯데호텔은 자사 베딩 시스템 ‘해온(he:on)’을 상품화해 고객들이 구매할 수 있게 했다. Ⓒ롯데호텔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사람들

한편으론 소확행을 실현시켜 주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녹색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이용하는 플랜테리어도 인기다. 비좁은 베란다에서 벗어나 거실과 안방, 서재까지 녹색 식물을 들여놓고 마치 반려동물처럼 반려식물을 키우고 있다. 특히 미세먼지와 같은 실내 환경 걱정으로 인해 다양한 환경 식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내 집 인테리어에 열성인 또 다른 이유로 취향에 맞게 나만의 공간을 꾸며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에 올리는, 온라인상에서 집을 공개하는 ‘랜선 집들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인스타그램에 ‘#셀프인테리어’를 검색하기만 해도 60여 만 개가 넘는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셀프 인테리어 욕구를 해소하는데 전문 지식이 무엇보다 필요하기에 셀프 인테리어 박람회에 참석하거나 인테리어 강좌에 등록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인테리어 컨설팅 업체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 삼화페인트 홈앤톤즈에서는 페인팅 아카데미 등 고객들에게 다양한 셀프 인테리어 정보를 제공한다. Ⓒ홈앤톤즈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홈루덴스족의 관심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추세다. 그동안 1인 가구의 젊은 여성이나 30~40대 주부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최근엔 남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자기에게 만족을 주기만 한다면 비용과 시간을 감수하는 경향을 보이는 남성들이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을 보이는 현상을 지칭하는 ‘맨즈테리어(Men + Interior)’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서양에선 이미 10여 년 전 맨케이브(Mamcave, 남자의 동굴)라 불리며 주목받아 온 현상으로 미국의 사회학자 폴라 에이머는 ‘남성성의 마지막 보루’라 해석하기도 했다. 창고나 집 안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푸른색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총각 시절부터 수집한 레고와 피규어, 술병, 엔틱풍 시계, 무선자동차, 책 등을 가득 진열해 놓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대형 모니터로 게임에 열중하거나 학창 시절 꿈꾸던 전자기타와 드럼세트를 갖춰 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G마켓에 따르면 올 초 4개월 동안 인테리어 관련 상품의 남성 구매율이 전년 대비 75% 증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맨즈테리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집 밖으로 나돌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과거와는 달리 나만의 아지트에서 오롯이 나만을 위해 투자할 수 있어 오히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는 반응들이 주류를 이룬다.

 

피로도와 비례하는 삶의 질

홈루덴스족은 먹고 마시는 메뉴를 선택할 때도 간편하지만 근사하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한다. 집에서 휴가를 보낼 때는 전문 셰프들과 손잡은 가정간편식(HMR)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푸드는 강레오 셰프와 협업해 쉐푸드를 리뉴얼했으며, 현대홈쇼핑은 최현석, 오세득 셰프와 H 플레이트 스테이크를 론칭했다. 이마트도 고급 중화요리인 피콕반점을 HMR로 출시했다.

▲ 고급 중화요리를 집에서 간편히 먹을 수 있게 한 이마트 피콕반점

 

뿐만 아니라 홈술도 맛있는 안주를 곁들여 근사하게 만끽할 수 있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는 독일식 정통햄으로 SPC삼립의 비어슁겐, 훈연 방식의 비엔나 소시지인 동원 F&B의 더퀴진에 이어서 대상 청정원은 안주 가정간편식 브랜드인 안주夜를 론칭했다. 나아가 휴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커피와 디저트인데 전문 카페나 베이커리에 직접 가지 않고도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메뉴가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최초 액상 에스프레소인 조지아 고티카 에스프레소 스틱, 전문점 수준의 디저트인 아워홈 디저트 살롱 크림쉬폰, 세븐일레븐의 세븐카페 프리미엄 디저트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 일본에서 젊은 남녀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콕 박혀 지내며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하는 부류인 코쿤족으로 인해 골칫거리인 적이 있었다. 때문에 방콕족, 호캉스족, 홈루덴스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복잡한 사회 관계에서 오는 피로도는 갈수록 강해지지만 마땅한 스트레스 해소책은 없다. 소확행이니 욜로니 하는 삶의 방식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결국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간, 그것도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절실하다. 멀리서 찾기보다 편안한 장소로 이미 검증된 집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홈루덴스족의 열풍이다. IT 산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어쩌면 더 외로운 사회가 될 수 있기에 나만의 공간에서 여가를 만끽할 때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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