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5. 10:00

생활 수준이 높아진 데다가 한 자녀 가정이 많은 요즘엔 내 방이 없는 아이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내 방은커녕 내 책상조차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상 위 책꽂이에 언니의 참고서와 동생의 그림책이 뒤죽박죽 꽂혀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지요. 때로는 서랍 깊숙이 숨겨둔 일기장이 형제자매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시절 아이들에겐 ‘내 방’ 마련이 부모들의 ‘내 집’ 마련만큼이나 절실한 꿈이었습니다. 내 방이 없는 설움…. 내 방만 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훨씬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지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버지니아 울프는 평론을 쓰는 한편 실험적인 소설도 여러 편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시대가 변하면 진실을 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이나 『세월』도 유명하지만, 버지니아 울프 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란 에세이입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교과서로 일컬어지지만, 그녀가 했던 말을 상기하면 페미니즘을 넘어 휴머니즘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한 대학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토대로 저술한 작품인데요, 그때 울프는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는 얘기는 리얼리티에 직면해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는 뜻이다.”

이 책이 발표된 1929년에도 자기만의 방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 요건이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왜 아니겠습니까. 자기만의 방은 또 다른 페르소나이며, 자아가 발현되는 궁극적 공간일 테니까요.

『Cheil』 매거진은 지난 9월호에서 ‘Con-centrate’라는 키워드를 통해 ‘1인칭 시점’의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는 방법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번 10월호에서는 ‘Con-tented’라는 프리즘으로, 자기만의 공간을 최적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만족과 행복을 얻는 소비자들을 조명합니다. 이 두 개의 키워드 사이에는 ‘자기 경험의 확장’이라는 공통분모가 자리합니다. 이때 ‘확장’은 물리적 영역뿐 아니라 심층적 깊이 또한 포함합니다.

최근에는 단순히 자기만의 방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을 얼마나 더 ‘자기답게’ 구성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듯합니다. 더불어 자기만의 공간이 내 방, 내 집을 넘어 동네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얘기를 다시 한 번 빌리면,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리얼리티’의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페이스북 트위터 URL 공유 인쇄 목록

소셜로그인 카카오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