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2. 16:00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다.”

한번쯤 들어보셨을 얘기인데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설마 발음도 어려운 단어를 ‘가장’ 먼저 배우기야 하려고요. 하지만 외국인들이 이 단어를 한국의 문화적 특징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건 분명한 듯합니다.

어떤 분들은 한국인이 느긋하지 못하고 여유가 없다는 증거로 ‘빨리빨리’ 문화를 들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성향이 원래 그렇다는 거지요.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몸과 마음이, 그리고 터전과 산하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여유작작하게 모든 걸 ‘재건’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결국 ‘빨리빨리’는 한국인의 DNA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움켜쥔 생존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제 속도의 문제는 비단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게 됐습니다. 인터넷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친 후 검색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못 견뎌하고, 온라인 쇼핑으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한 후 재깍 배송되지 않으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거는 게 비단 한국인만일까요? 부지하세월을 견디지 못하는 건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디지털 시대는 이렇게 전 세계인들에게 ‘속도에 대한 기대 심리’라는 공통분모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테크’라는 말, 들어보셨겠지요? 아주 오래 전에 등장한 개념이라 요즘 젊은 세대는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과 재테크를 합한 이 단어를 거칠게 정의하면, 시간 관리를 효율적으로 해서 개인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의미입니다. 시테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서점에서 자기 계발이나 경제∙경영 코너가 아니라 여행이나 건강, 취미 코너에 놓여야 할 개념으로 변모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워라밸’ 때문입니다.

워라밸은 누구나 동의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가치일 겁니다. 하지만 팀원들의 워라밸을 위해 업무를 줄여 주는 팀장은 어디에도 없을 테고, 학생들의 워라밸을 위해 과제를 내주지 않는 선생님도 없을 겁니다. 결국 워라밸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주어진 일을 빨리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또 다시 시간을 바라보는 속도와 싸우게 됐습니다.

『Cheil』 매거진은 지난 10월호에서 ‘Con-tented’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기만의 공간을 최적화시켜 만족과 행복을 극대화하는 트렌드를 살펴봤습니다. 11월호의 화두는 ‘Con-venience’입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겐 시간이 충분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지식을 신속하게 얻고 싶어 합니다. 쉽고 편리하며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 진화된 시테크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해지기 위해 더 바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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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동우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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