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5. 10:00

누군가 내게 “밥 먹자”라고 말한다면 그 말의 뜻은 ‘date’일까 아니면 그냥 ‘eat’일까? 만약 내가 “나중에”라고 대답한다면 상대방은 그 말을 ‘later’로 이해할까 또는 ‘no’로 받아들일까? 개념 정의(定義)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중요한 문제지만, 많은 사람이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이는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랜드 성공을 좌우하는 정의

서로 엇갈린 개념 정의 때문에 인간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고, 정치나 경영의 협상 테이블에서 대화가 결렬되는 모습도 곧잘 볼 수 있다. 중요한 대화에서 서로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각자 다른 내용을 의미하는 동어이의(同語異意)나 혹은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지만 같은 내용을 의미하는 이어동의(異語同意)라면 대화가 진척되기 어렵다. 그래서 토의와 대화 전 중요한 용어를 서두에서 구체적으로 먼저 정의하고 서로 협의하는 게 필요하다.
정의는 마케팅에서도 브랜드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문제다. 마케팅 실패 사례의 70%가 브랜드 콘셉트를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간결하고 명확히 정의하지 못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마케팅에서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내용은 브랜드 콘셉트를 정확하게 서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콘셉트를 잘 정의하는 방법

정의 문제가 원활한 소통과 대화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다룬 철학자가 있는데,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마케팅에서 “이 브랜드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철학에서 “이것의 실체(substance)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실체는 다른 무엇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마케팅에서 대표적 실체는 ‘이 브랜드’ 혹은 ‘저 브랜드’로 지칭할 수 있는 개별 브랜드이다.


그렇다면 실체[브랜드]는 어떻게 서술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론』에서 이 실체를 서술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는 술어에 해당하는 속성들로 실체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속성이란 사물의 개별적 성질을 나타내는 논리학 용어이다. 마케팅에서도 ‘속성’을 통해 브랜드를 설명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중 키워드로 간결하게 실체[브랜드]를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것이 바로 ‘종차(種差)’와 ‘종류’를 결합한 정의이다. 종차란 쉽게 말해 ‘구별되는 요소’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액츠는 액체 세제이다”에서 액츠라는 브랜드는 ‘액체’와 ‘세제’라는 속성으로 정의되는데, 이때 세제는 이 상품의 종류이다. 액체는 기체, 고체 등과 구별되므로 종차에 해당한다. 만약 이 예시에서 “액츠는 액체이다”라고만 정의된다면 소비자들은 액츠라는 브랜드가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있을까? 반대로 “액츠는 세제이다”라고만 설명한다면 소비자들은 이 제품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브랜드를 정의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침이 유효한 이유다.

마케팅에서는 그 속성 중 상품의 종류를 ‘제품 범주’라 한다. 냉장고, 치약, 소화제, 샴푸 등은 상품의 종류를 나타내는 범주가 된다. 그리고 종차는 그 상품만이 가지고 있는 차별화된 성질을 말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흔히 브랜드를 정의할 때 차별화에만 신경을 쓰곤 하는데, 제품 범주를 생략하고 차별화된 성질만 서술하면 시장에서 실패하는 요인이 된다.

C사는 소비자 조사에서 기존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면 빨래 헹굼물이 탁해 세제 찌꺼기가 남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갖는 소비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C사는 이에 착안해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콘셉트로 색깔이 없는 맑은 섬유유연제를 출시한다. 당시 선도 브랜드였던 경쟁사 제품의 불투명한 색깔과 차별화한 콘셉트였다. 내용물뿐만 아니라 제품 용기도 생수처럼 투명한 페트병으로 만들었다. 큰 기대를 안고 제품을 출시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실패한 이유를 알겠는가? 브랜드 정의에서 섬유유연제라는 제품 범주가 빠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브랜드가 어디에 필요한지를 소비자들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케팅에서 자주 일어나는 실책이다. 브랜드 정의에서 종차(차별화 속성)보다는 종류(제품 범주)가 브랜드의 본질을 더 잘 드러내기 때문에 제품 범주를 빼서는 소비자에게 개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처럼 종차와 종류를 결합한 방법은 학문이나 예술 창작 등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보편적 방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자신의 윤리학에서 “행복한 삶은 탁월성에 따르는 삶”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윤리학 핵심 개념인 탁월성에 대해 종차와 종류를 사용해 간결하게 정의했다.
“탁월성은 중용의(종차) 품성 상태(종류)이다.”
예를 들어 용기는 탁월성의 일종으로 소심함과 만용의 양극단에서 중간인 품성 상태이다. 품성 상태란 정신적 성향 혹은 태도인데, 마음가짐이란 단어로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용기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마음가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한 종차와 종류를 사용한 정의는 후대의 학자들도 널리 사용하고 있다. 마케팅의 브랜드 콘셉트에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김근배는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이다. 콘셉트 개발이 마케팅의 핵심임을 간파, 이에 대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끌리는 컨셉의 법칙』에 이어 최근 『끌리는 컨셉 만들기』를 출간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URL 공유 인쇄 목록

소셜로그인 카카오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