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09. 17:00

시장의 키워드가 ‘체험’에서 ‘감정’으로 분화되고 있다. 수많은 정보와 상황에 따른 감정 과잉 상태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은 이제 ‘감정의 아웃소싱’까지 넘나든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대신 다른 무엇에 의존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할 때다.

가장 진화한 인류인 현대인들은 본능에 가까운 감정 표현에 왜 서툴게 된 걸까? 그건 자극이 너무 많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고 수많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렇게 자극될 때마다 온갖 감정이 양산된다. 이 엄청난 양의 감정이 처리 불능의 포화 상태가 되면서 감정을 아웃소싱하는 방편이 대두되고 있다.
예컨대 연애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대신 연애와 여행을 다룬 관찰형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감정 이입을 하고, 대리 만족한다. 이런 경우 실제 연애와 여행이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감정과 피로감은 피하고 긍정적 감정만 받아들인다. 또한 사람들은 다수의 감정을 일반화시킨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감정을 대체하고, 댓글을 클릭하면서 타인의 감정 표현에 기댄다. 감정 과잉 상태가 두려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대신 ‘이입’하는 방식을 기꺼이 선택한다.
타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발상이 흥미로운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존 말코비치 되기>란 영화는 종교적,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삶은 ‘영원한 감금’이라는 메시지를 발신한다. ‘나’라는 존재 가치와 의미를 되묻는 이 판타지 영화의 대본을 쓴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은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2005년 국내에서 첫 개봉을 한 이후 10년 만에 다시 개봉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지워갈수록 사랑이 더 깊어진다는 설정으로 관객들을 감정 이입하게 만든다. 무의식의 세계로 기억을 몰아내는 방어 수단을 쓰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감정을 외주화하는 요즘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행동을 조절하는 다섯 가지 감정을 의인화해 흥미롭게 제작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이영화는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감정이라는 대상을 우리가 어떻게 개념화하고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해 따뜻하게 조언한다. 주인공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에는 슬픔, 버럭, 소심, 까칠, 기쁨이라는 감정들이 살고 있다.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일하는 이 다섯 감정들은 라일리가 보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감정을 만들어 내고, 그 감정들을 구슬 모양의 기억으로 저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일리는 고향 미네소타를 떠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라일리를 위해 다섯 감정들은 분주하게 감정들을 생산해 낸다. 그 와중에 실수로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게 되고, 본부에 남은 버럭, 까칠, 소심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자 열심히 감정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감정의 균형이 깨진 라일리는 일탈 행동을 하게 되고, 기쁨과 슬픔은 기억 저장소에서 본부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람들은 슬픔을 부정적 감정으로 치부하고 슬픔이 발생하는 상황을 가급적 외면하려 하지만, 이 영화는 슬픔도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라는 단순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각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무엇에 의존하는 아웃소싱 경향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루트번스타인은 저서 『생각의 탄생』에서 “감정 이입은 적극적 관찰의 비법 중 하나”임을 강조한다. 감정 이입은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것이며, 감정 이입이 가능해질 때 우리는그 대상과 자신이 서로 통한다고 느낀다.
언뜻 생각할 때 감정의 직접 표출이 아니라는 점에서 감정 이입을 소극적 표현 방법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사실 감정 이입은 적극성을 기반으로 한다. 감정 이입이란 곧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공감은 타인의 관점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결국 감정 이입, 감정의 아웃소싱은 내가 세상에 관여하는 하나의 방식인 셈이다. 지금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제3의 방법이 새롭게 필요해진 시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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