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5. 15:00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구축되면서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가 때론 의견의 차원을 넘어 현실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사회적 가치를 나누는 소셜 펀딩은 그래서 비즈니스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공익이 되는 새로운 경제의 영역을 만들어 내고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에는 제목에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펀딩을 ‘같이 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발음 나는 대로 ‘가치’에 펀딩한다는 의미다. 이를 한마디로 풀어내면 ‘가치 있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펀딩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네이버 해피빈과 함께 배우 유준상이 주도하는 태극기함 만들기 프로젝트를 첫 아이템으로 시도해 4차 펀딩까지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10월 24일 기준 이 태극기함 프로젝트에 모인 펀딩 총액은 15억 7,700여 만 원으로 애초 목표보다 19000% 이상 달성했다. 또한 태풍 피해를 입은 농가를 돕겠다는 취지로 지난 10월 20일부터 시작한 ‘같이 사과 프로젝트’ 역시 24일 기준 9,900만 원을 넘겨 애초 목표의 1900%를 넘겼다.

<같이 펀딩> 같은 공익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해 호평받고 있는 건, 우리에게도 소셜 펀딩이라는 개념이 이제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방증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 같이 가치’ 같은 사이트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소셜 펀딩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례로 ‘어뻐는 열 살’은 2014년부터 시작해 벌써 시즌 10을 맞이한 펀딩으로 ‘어뻐’란 ‘어떤 버스’의 준말이다. 즉 이 펀딩은 어디로, 누구와, 어떤 봉사를 하게 될지 모르고 떠나는 ‘미스테리 봉사 여행’이란 콘셉트를 통해 유기견, 아동, 장애인, 다문화가정, 벽화, 환경 등등 다양한 봉사를 이어 왔다.


Ⓒ ‘어떤버스’ 홈페이지 캡처(https://어떤버스.org)

 

요즘 소셜 펀딩에는 돋보이는 아이디어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폐지 수거 어르신들의 안전한 발걸음을 돕겠습니다’라는 소셜 펀딩은 그분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취지와 함께 어르신들이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리어커에 광고를 붙인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 ‘끌림’ 홈페이지 캡처(cclim.or.kr)

겨울이 다가오면 늘 기부의 한 형태로 등장하던 저소득층을 위한 연탄 기부도 이제는 소셜 펀딩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고려대학교 사회봉사단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추진하고 있는 ‘연탄 나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처럼 소셜 펀딩은 인터넷이나 SNS를 활용해 대중들의 소액 기부로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개개인들이 부담 없이 소소하게 참여할 수 있으며,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동시다발적이고 광범위한 참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결과가 생각보다 크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어떤 가치를 제시하느냐 하는 점이다. 모두가 공감하고 나아가 그 공감대를 실천으로까지 옮길 만한 가치여야 비로소 펀딩까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 펀딩은 『걸리버 여행기』를 쓴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가 1700년대에 사비 500파운드를 들여 지역의 가난한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던 아이리시 론 펀드(Irish Loan Fund)를 그 시작으로 지목한다.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는 소셜 펀딩은 인터넷 환경과 SNS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는 같지만 방식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소셜 펀딩에 대한 서구와 우리의 관점이 약간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소셜 펀딩에도 기부, 보상, 대출, 투자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기부에 가까운 ‘사회적 가치’ 실현에 응당 그 목적이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서구의 경우는 수익이나 투자의 의미를 가진 소셜 펀딩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즉 뛰어난 아이디어나 기술이 있지만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에 대한 투자로 소셜 펀딩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셜 펀딩을 사회적 가치의 목적으로 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의 성격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지영 감독의 <카트>는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로 소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조달했다. 이는 소재적인 이유로 자본 투자가 여의치 않은 영화가 주제 의식에 공감하는 대중들의 참여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소셜 펀딩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의외로 반향이 크고, 그래서 실질적인 투자의 성공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이나 실제 사건을 다룬 <재심> 같은 작품의 성공이 그것이다. <귀향>은 350만 관객을 동원했고, <재심>도 240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바 있다.


Ⓒ 와디즈 홈페이지 캡처(wadiz.kr)

 

소셜 펀딩이 가능해진 건 두 가지 조건 때문이다. 하나는 각각이 흩어져 있던 대중들이 손쉽게 하나의 목표나 목적을 갖고 모일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가 마련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자들이 만들어 낸 제품들을 그저 수동적으로 소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능동적인 소비를 하려는 경향이 생겼다는 것이다. 능동적인 소비는 이제 나아가 생산에도 직접 참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우리가 지금껏 생각해 온 자본과는 또 다른 자본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소수 부유한 자본가의 자본이 아니라, 십시일반으로 모은 일반 대중의 자본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이윤이 아닌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생산과 소비에 투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소셜 펀딩이 모두 긍정적 가치로만 활용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국제 해커 조직인 어나니머스가 소셜 펀딩으로 애초 목표액을 한참 웃도는 자금을 조달한 사례가 그렇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소셜 펀딩은 하나의 방법일 뿐, 더 중요한 건 어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 나갈 것인가이다.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가치의 공유가 전제돼야 소셜 펀딩이라는 방법적 도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대중문화를 통해 시대성을 모색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숨은 마흔 찾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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