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7. 7
글 편집실
사람들은 일상을 ‘평범함’이라는 수식어로 규정하지만, 사실 삶을 추동하는 힘은 일상 속에 있다. 일상이 어떻게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 2017 칸 라이언즈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제일 세미나 <The Power of Boredom: How Ordinary Can Be Extraordinary>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 인터뷰를 꾸며 봤다.
나영석 PD 인터뷰_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
Q. <1박 2일>과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각종 미션을 수행하거나 생애 첫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나는 등 비일상적 소재를 다뤘다. 이에 비해 <삼시세끼>는 그야말로 삼시 세끼를 해 먹는 평범한 내용이다. 비일상적 코드에서 일상적 코드로 관심이 전환된 이유는 무엇인가?
나영석 PD: 나는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15년 넘게 국내외 328곳을 돌아다녔다. 한마디로 여행을 엄청 많이 했다. 그런데 너무 돌아다녔는지 어느 순간 일도, 여행도 지겨워졌다. 그즈음 이우정 작가가 “이도 저도 다 싫고, 작은 시골집에서 비가 오면 빗소리나 들으면서 부침개 먹으며 만화책 보다가 잠이나 자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 순간 이거다 싶었다. 나 또한 한때는 그냥 마음 편히 놀고 먹는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만약 내게 휴가가 주어진다면 뭘 할까? 아마도 사람들은 휴가를 의미 있게 지내기 위해 이런저런 재미 있고 특별한 일을 계획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재미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휴식을 원했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게 바로 <삼시세끼>다.
Q. <삼시세끼>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나영석 PD: 복잡하고 골치 아픈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가서 한가롭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막상 귀농귀촌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평소 그런 갈증을 어떻게 해소할까 의문이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손에 잡힌 잡지 한 권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 잡지에서 보여주는 자연주의적 삶은 리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그럴 듯하게 포장된 연출이었다.
놀라운 건 사람들이 그게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본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연 속에 파묻혀 사는 ‘자연주의 라이프’가 아니라 필요할 때 힐링할 수 있는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였다. <삼시세끼>는 치열하게 뭔가를 얻으려고 애쓰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놀고 먹고 자고 빈둥거리는 콘셉트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게 그런 삶 아닌가. 자연주의 익스피리언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주고 싶었다.
Q. <삼시세끼>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나영석 PD: 첫 번째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년간 TV 예능 프로그램은 대개 경쟁 모드였다. 밖에 나가 일하고 공부하면서 늘 경쟁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데, 집에 와 쉬면서 TV에서조차 또 경쟁 프로그램을 봐야 하나. 이제는 그런 경쟁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즉 사회적 성공이 행복을 담보하는 게 아니라 내 일상에 숨통이 트이면 그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늘고 있다. 사람들이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삼시세끼>는 저 정도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싶은 공감대가 있었다. 무일푼으로 산에서 얼마간 혼자 지내거나 고급 빌라를 임대해 임시로 생활해 보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반면에 <삼시세끼>를 보는 시청자들은 ‘한 발짝만 내딛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다. <삼시세끼>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판타지’로 인식된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귀농이나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을 주려고 했는데, 시청자들에겐 그것이 ‘실현 가능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나는 이걸 ‘Affordable Fantasy’라고 말한다.
배우 이서진 인터뷰 _ 공감의 핵심은 인위적 하모니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불협화음
Q. 처음에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맨 처음 나영석 PD에게 제안이 왔을 때 완강하게 거절했다. 배우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일었다. 게다가 나는 강직하고 무뚝뚝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왔다. 코믹한 역할을 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를 즐겁게 하고 웃길 수 있겠는가.
Q. 그렇다면 ‘예능 대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나는 1999년 데뷔해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TV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로 주인공을 맡아 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예능으로 더 유명해진 것 같다. 나도 그 이유가 뭘지 생각해 봤다. 일반적으로 예능 출연자들은 오버액션하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억지스러운 행동을 싫어한다. 그래서 ‘연기’를 하지 않고,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 줬다. 불만이 있으면 투덜대고, 힘들면 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런 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Q. 개인적으로 <삼시세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삼시세끼>는 언뜻 리얼 다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 치밀하게 짜여졌다. 시골에 가서 산다고 문제가 없을 리 없는데, <삼시세끼>는 그런 일상적 걱정거리를 배제한 채 평온하게 먹고 노는 장면만 편집해 내보냈다. 또한 나영석 PD는 내게 ‘하모니’가 아니라 ‘불협화음’을 원했다. 사람들은 억지로 짜맞춘 하모니보다 솔직한 불협화음에 더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방송의 재미를 위한 나 PD의 철저한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일기획 웨인 초이 전무 인터뷰 _ 평범한 사물에서 특별함을 끄집어 내다
Q. 광고인의 관점에서 지루함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웨인 초이 전무: 광고는 기존에 보여 주지 않았던 걸 보여 주고, 늘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지루하고 평범하고 시시했던 것들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광고인에게는 그 순간을 잘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Q. 그런 순간을 포착한 크리에이티브를 예로 든다면?
웨인 초이 전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하찮아서 사람들 관심 밖에 있는 물건이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버블랩(Bubble Wrap), 즉 ‘뽁뽁이’다. 물건 배송 시 사용되는 뽁뽁이는 역할을 다하고 나면 그냥 버려진다.
그런데 뽁뽁이를 창문에 부착하면 실내 온도가 3~4℃ 올라가고, 난방 에너지가 28% 절감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전부터 겨울에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뽁뽁이를 붙이는 집이 늘었다. 쓸모 없던 물건이 새로운 쓸모를 얻은 것이다. 이처럼 사물이 지닌 가치와 효용성은 그 사물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달려 있다. 그런 순간을 일상에서 건져 올리면 좋은 크리에이티브가 되는 것이다.
Q. 그렇다면 <히트텍 윈도우> 캠페인은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바라본 결과물인가?
웨인 초이 전무: 제일기획은 뽁뽁이에 착안해 난방비 걱정을 덜고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자는 취지의 CSR 캠페인을 구상했다. 그리고 이 뽁뽁이가 매개가 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았다. 최적의 브랜드는 ‘히트텍’이란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는 유니클로였다. 히트텍도 착용 시 평균 3~4℃의 보온 효과가 있다. 뽁뽁이는 집이 입는 히트텍인 셈이다.
우리는 히트텍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히트텍 윈도우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소비자들은 히트텍 윈도우를 각자 자기 집 창문에 붙였는데, 그 자체로 브랜드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히트텍 윈도우> 캠페인은 소비자들에게 무슨 거창하고 대단한 이벤트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저 뽁뽁이를 붙이는 일상적 행동을 유도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은 특별함을 만들어 냈다.
Cheil Magazine 2017. 7
글 원성원 프로(정혜경 CD팀)
로봇이 바둑을 두고 광고까지 만드는 시대. VR 안경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못 가는 곳이 없는 시대. 운전하지 않아도 자동차가 알아서 달리는 시대. 매일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고, 그 기술의 능력에 무릎을 탁! 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그 속에 일상은 있다. 알파고의 첫 우승 소식보다 내 아이의 첫 옹알이가 더 놀라운 일상. VR로 보는 우주의 광활한 모습보다 눈앞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더 기분 좋은 일상. 혼자 달리는 자동차보다 마침내 혼자 달릴 수 있게 된 소년의 자전거가 더 큰 울림을 주는, 기술보다 사람이 중심인 일상. 그 일상이 2017년 칸에도 돌아왔다.
올해 칸 라이언즈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기술에 다들 지친 걸까. 기술로 향하던 트렌드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술에 맞춘 아이디어 대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복잡한 프로세스 대신 쉽고 간결한 크리에이티브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감히 올해 트렌드를 논해 보자면 ‘Human’, ‘Story’, ‘Easy’ 이 세 가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wer of Fearless
어린 소녀 하나가 겁도 없이 나타나 칸을 휩쓸었다. 4개의 그랑프리를 포함, 총 18개의 라이언즈를 거머쥔 캠페인 <Fearless Girl>. 어떻게 하면 남성 위주의 월가를 흔들 수 있을까?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세계 여성의 날 하루 전, 작지만 당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소녀상을 금융 권력의 상징인 ‘Charging Bull’ 앞에 맞서 세운 것이다.
동상 앞에 새겨진 ‘Know the power of woman in leadership, SHE makes a difference’라는 카피는 소녀상을 더 강하게 만들었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간단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메시지,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완벽한 합작품. 소녀는 칸을 휩쓸기에 충분히 강했다.
▲ <Fearless Girl> 캠페인
Power of Curious
왜 과속을 밥 먹듯이 할까? 아무렇지도 않게 무단횡단을 할까? 어쩌자고 운전 중에 휴대폰을 쓸까? 아무리 교통사고를 당해도 죽지 않는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있다. 이렇게 생기면 된다.
2개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호주교통안전위원회의 <Meet Graham> 캠페인에서는 그 어떤 교통사고에도 죽지 않는 ‘Graham’을 소개한다. 심장을 보호하는 여러 개의 젖꼭지와 갈비뼈, 뇌를 보호하는 두꺼운 두개골, 결코 부러지지 않는 크고 단단한 목뼈까지!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나열하며 경각심을 깨우던 기존 방식과 달리, “오직 이렇게 생겨야지만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를 보여 주는 위트 있는 방식이 사람들의 관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같은 메시지도 각도를 틀면 훨씬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 준 Graham에게 박수를!
▲ <Meet Graham> 캠페인
Power of Life
축구 선수가 공을 찬다. 수영 선수가 물속을 가르고, 높이뛰기 선수가 하늘을 난다. 드러머가 드럼을 두드린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고, 댄서들이 탭 댄스를 춘다. ‘장애’라는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들의 일상이 모여 큰 울림으로 퍼진다. 필름 그랑프리를 수상한 4creative의 <We are the Superhumans>.
2016년 리우 패럴림픽을 맞아 제작된 이 영상에는 실제로 140여 명의 장애인이 출연한다. 영상 속 그들은 결코 동정이나 연민의 눈길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Yes I can!”을 외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일상을 유쾌한 스윙 음악과 함께 보여 줄 뿐이다. 영상 말미에 뜨는 ‘We are the superhumans’라는 카피는 장애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우리보다 강하고 놀라운 힘을 가진 ‘Super’ human 임을 깨닫게 한다.
▲ <We are the Superhumans> 캠페인
제일기획의 <The Power of Boredom> 세미나에서도 일상의 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삼시세끼>, <윤식당>, <꽃보다 할배>, 최근엔 <알쓸신잡>까지. 만드는 족족 히트를 치는 나영석 PD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가 내놓은 답은 ‘Bordom’. 경쟁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 역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보여 준 그의 예능에 사람들은 힐링했고, 또 열광했다.
그는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손에 잡히는 판타지를 심어 주었는데, 나PD는 이를 ‘Affordable Fantasy’로 설명했다. 시골에 내려가 무위도식하는 <삼시세끼> 속 일상이나, 발리에 음식점을 오픈한 <윤식당> 속 일상은 ‘나도 당장 마음만 먹으면 저렇게 살 수 있다’는 판타지를 일으켰고, 이것은 곧 그의 성공 포인트로 작용했다.
▲ <The Power of Boredom> 세미나
사람들의 일상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캠페인으로는 <HEATTECH Window>도 빠질 수 없다.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히트텍과 집을 따뜻하게 해 주는 히트텍 윈도우가 만나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겨울 필수품으로 불리는 내복과 뽁뽁이의 이토록 세련된 만남이라니! 취향저격 제대로다. 몸에 착 붙는 히트텍처럼 브랜드와 타깃에 착 붙는 아이디어를 통해 한국 대표로 칸에서 사자까지 몰고 왔으니, 그야말로 히트다 히트!
▲ <HEATTECH Window> 캠페인
Power of Good
아이디어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여기, 좋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다 못해 아예 새로운 세상을 만든 캠페인이 있다. Grandprix for Good을 수상한 <The Refugee Nation> 캠페인이다. 2016년 처음으로 10명의 난민 출신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했다. 소속된 나라도, 흔들 국기도, 부를 국가도 없는 난민을 위해 국제기구 앰네스티와 오길비 뉴욕은 그들을 위한 나라, The Refugee Nation을 만들었다.
구명조끼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국기는 자유를 찾아 떠난 난민을 상징했고, 전 세계 6500만 난민을 하나로 모은 국가는 세계의 평화를 노래했다. 나라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나라를 만든다니, 생각의 크기가 남다르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늘 말하던 ‘빅’ 아이디어가 아닐까.
▲ <The Refugee Nation> 캠페인
저소득층을 위해 선불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스트 모바일(Boost Mobile)에서는 고객들의 일상에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을 발견한다. 소득이 적고 소수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투표소가 멀고 대기도 오래 한다는 것이다. 이에 부스트 모바일은 아예 자신들의 매장을 공식 투표소로 만들어 버리는 <Boost Your Voice> 캠페인을 진행했다.
사람들이 손쉽게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리테일 자산을 활용해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모바일에 최적화된 캠페인 페이지에서는 투표소 안내와 함께 참정권의 가치에 대해 실시간으로 전하며 투표를 독려했다. 이러니 캠페인 이후 투표율이 대폭 상승한 건 당연한 결과! 2개의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 또한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 <Boost Your Voice> 캠페인
다시 Power of Idea
기술의 힘보다 생각의 힘이 상을 받는 시대가 돌아왔다. 덕분에 제일기획 세미나에서 말한 ‘Affordable Fantasy’가 내 안에도 가득 생겼다. 첨단 기술 같은 거? 몰라도 좋다. 스케일 따위 크지 않으면 어떠한가.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다시 한 번 칸에 가는 것쯤이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Cheil Magazine 2017. 7
글 조유리 프로(권세호 ECD팀), 최윤선 프로(양영옥 ECD팀)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꿈이자 최고의 광고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 칸 라이언즈. 다양한 세미나와 수많은 워크숍, 그리고 새로운 만남의 장이 펼쳐지는 이곳에는 영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도 준비돼 있다. 바로 영 라이언즈 컴피티션(Young Lions Competitions). 영 라이언즈 컴피티션은 만 30세 이하 크리에이터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며, 크리에이티브 올림픽처럼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진다.
영감을 불어넣어 준 시간
영 라이언즈 컴페티터의 이름을 달기 위해선 또 다른 수많은 경쟁을 뚫고 국가 대표로 선발돼야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자리에 모인 만큼 영 라이언즈 컴페티터는 각자 자신의 국가에 메달을 안겨 줘야 한다는 포부를 안고 행사에 참여한다. 영 라이언즈 컴피티션은 칸 라이언즈와 동일하게 8개 부문으로 이뤄져 있고, 우리는 그중 필름 부문에 참여하게 됐다.
▲ 조유리, 최윤선 프로가 참여한 영 라이언즈 컴피티션 필름 부문
필름 부문 컴피티션이 행사 기간 중 마지막 3일 동안 치러지기 때문에 다행히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의 앞부분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행사장 곳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이벤트와 흥미로운 주제로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세미나들은 앞으로 나아갈 광고업계에 대한 충분한 영감을 불어넣어 줬고, 영 라이언즈들을 위한 파티도 준비돼 있어 서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었다.
▲ 영 라이언즈 컴페티터들의 연두색 입장표
특히 영 라이언즈 컴페티터들은 목에 연두색 입장표를 걸고 있어 행사장 주변이나 해변을 걸을 때, 그리고 파티에서 같은 색 입장표를 걸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했을 때 참 반가웠다. “너도 영 라이언이야?”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눠 보면 세계 어느 나라든 광고업계의 치열한 근무 환경은 비슷한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위안이 됐다.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유튜브 해변에서 만난 한 네덜란드 친구는 “여섯 시면 모두 집에 가고 없다”며 ‘저녁이 있는 삶’을 뽐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필름 부문 영 컴피티션엔 카메라맨이 참가했다고 자랑했다. 그 순간 다음 날부터 진행될 컴피티션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압박감은 배가됐다.
▲ 영 라이언즈 컴피티션에 한국 대표로 참여한 최윤선 프로(좌측)와 조유리 프로(우측)
48시간 만에 미션을 완수하다
대망의 컴피티션 첫날, 컴피티션의 브리프는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Recording Academy)에서 줬다. 레코딩 아카데미는 넘쳐 나는 불법 다운로드 시대에 퇴색해 가는 음악의 가치를 지키고 교육하며 뮤지션들을 후원하는 일을 주로 하는 단체이다. 과제는 두 명의 관계자가 직접 와서 설명해 줬는데, 그 내용은 이러한 시대에 음악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를 상기시키고 아티스트들에게 그게 맞는 대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1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주제였다. 여러 가지 제약을 뒤로하고 우리는 아이데이션을 시작해 그날 밤을 꼬박 새웠다.
▲ 주최 측에서 제공한 갤럭시 S8과 촬영 도구
아이데이션, 카피 작업, 촬영, 편집까지 모두 단 두 사람만의 힘으로, 그것도 48시간 만에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심플하게 전달할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주최 측에서 우리에게 제공한 갤럭시 S8과 기타 촬영 도구를 들고 촬영에 나섰다. 쉽지 않은 촬영이었지만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고 촬영본을 컴피티션 부스에 가져와 제공된 아이맥으로 편집을 마쳤을 때는 마감 10분 전이었다.
제출을 완료하고 컴퓨터 앞에 덩그러니 앉아 우리는 ‘이틀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라는 표정으로 서로 웃고 있었다. 부스가 있던 지하 컴피티션 공간의 분위기는 열띤 경쟁과는 대조적으로 화기애애했다.
▲ 지하 공간에 마련된 컴피티션 부스
▲ 촬영본을 편집하는 최윤선 프로
골드 이상의 가치
우승작은 페스티벌 마지막 날에 발표됐다. 작업 부스에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무거운 분위기가 시상 공간에 흘렀다. 동시에 ‘어쩌면 우리일지도 몰라’라는 기대감 가득한 눈빛들이 공간에 가득 찼다. 브론즈, 실버, 골드 라이언까지. 모든 수상과 박수가 끝나고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모두가 다시 흩어졌다. 총 43개국에서 단 3팀밖에 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도 골드 이상의 가치를 얻지 않았을까?
▲ 기뻐하는 수상자들과 박수를 보내는 각국의 영 라이언즈 컴페티터들
새로운 환경에서 최고의 영 크리에이터들과의 경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줬다. 2017년, 아니 우리 생애 최고의 경험으로 기억될 칸 라이언즈의 영 라이언즈 컴피티션. 영 라이언즈로 지낸 일주일이 몹시 그리워질 것 같다. 내년에 또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Cheil Magazine 2017. 7
Cheil Magazine 2017. 7
글 편집실
늘 같은 길?
박재삼 시인의 어느 시(詩), 또는 어느 글에선가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매일같이 산책에 나서는 노시인은 늘 가던 그 길 위에서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이 길로 한번 가 볼까?”
시인의 풍모와 여유가 한껏 드러나는 이 말을 우리도 따라해 보자. 가령 아침 출근길에서 “오늘은 725번 버스를 한번 타 볼까?” 또는 “오늘은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가 볼까?” 하는 식으로…. 하지만 쉽지 않다. 정신을 가출시키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니, 말이야 그렇게 내뱉을 수 있다 쳐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곁눈을 주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반복’의 속성 때문이다. 반복은 익숙해지고, 수월해지고, 편안해지게 만든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정형화되고, 상투화되고, 고착화되도록 만든다.
우리는 “항상 똑같아. 지겨워. 뭐 색다른 거 없을까” 하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어쩌면 일상이 똑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바꾸려 들지 않으니까. 물론 지겨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탈과 재미를 좇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파티는 끝나기 마련이고, 또 다른 파티를 찾아나선다 해도 언젠가는 그 ‘파티들’조차 지겨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과잉 자극에 서서히 지쳐갈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일상이 똑같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똑같지 않다. 어제는 봉오리 상태였던 회사 앞 화단의 배롱나무 꽃이 오늘은 활짝 피었을 수도 있고, 오늘은 지하철 옆자리에 라벤더 샴푸로 머리를 감고 나온 아가씨가 앉았지만 내일은 땀냄새 시큼한 청년이 앉을 수도 있다. 그런 게 뭐 대수냐고? 아니다. 일상이 지루하고 재미 없는 건, 일상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소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는 둔감함, 작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옹졸함에 있다. 그래서 일상이 지루해지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마음을 다르게 먹으면 된다.
세련된 눈!
많은 사람이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좋아한다. 소재 면에서 보자면, 그의 그림은 새로울 게 없다. 바위, 장미꽃, 새, 모자, 파이프, 사과…. 일상에서 흔히 보는 사물이다. 그런데 어랍쇼! 무거운 바위가 허공에 떠 있다. 주먹만 해야 할 사과가 산(山)만 하다. 심지어 파이프를 그려 놓고는 이게 파이프가 아니란다. 상식의 반전, 고정관념의 전복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소위 ‘문청(文靑)’이라 불리는 문학 소년과 문학 소녀들의 어떤 글들을 보면 유식해 보이는 온갖 용어가 난무하고, 단어 하나하나마다 직유와 은유가 종횡무진한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문장을 꾸며야 멋지고 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그렇다. 하지만 평범한 가운데 감동과 재미를 주는 글이 정말 좋은 글이다. 가장 어려운 고수의 경지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일상을 다르게 보는 ‘세련된’ 눈밖에 없다.
Cheil Magazine 2017. 7
글 편집실
명문대 입시나 고시에 합격하면 고향마을 어귀나 입시학원 외벽에 걸리는 플래카드. 예전에는 이처럼 특별한 ‘사건’이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희소성이 배제된 평범한 ‘일상’을 자랑삼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소셜미디어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대체 왜 사람들은 먹고 입고 노는 모든 일상을 인증샷으로 찍어 공유하려 하는 것일까?
그때 그 시절에도 인증샷이?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사진은 인화지라는 물성을 가진 ‘물건’이었다. 하지만 사진이 데이터로 존재하고 소장되는 지금, 사진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다. 기념 촬영 또한 졸업식과 결혼기념일, 돌잔치만의 절차도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특정되지 않은 시간과 장소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언제 어디서나. 그래서 점심에 먹은 파스타와 퇴근 뒤 찾은 한강공원의 야경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특히 기성 세대와 달리 자기 표현이 익숙한 소셜미디어 세대에게 SNS를 기반으로 하는 인증샷 트렌드는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셀카와 인증샷 트렌드
이런 현상은 일견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결합해 낳은 시대적 산물로 보인다. 하지만 답이 이렇게 간단해도 될까? 그런 분석 이면에는 과연 어떤 속내가 숨어 있을까? 만약 오늘 점심에 당신이 빌 게이츠와 점심을 먹었다면, 굳이 인증샷을 찍어 ‘자랑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당장 뉴스에 등장할 테니까. 우리가 굳이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타인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다. 관심을 끌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지지를 원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심리학자들은 ‘현대적 나르시시즘의 발현’이라고 해석한다.
인증샷의 원형은 아마도 사진이 없던 시절의 초상화와 정물화일 것이다. 초상화는 권력과 재력을 가진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화가의 자화상 정도. 정물화는 상업이 발달해 황금시대를 구가했던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물질적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발원했다. 보통 정물화를 ‘사물을 배치해 구도를 잡아 그리는 그림’으로 이해하는데, 사실 정물화의 본질은 세속적인 삶이 짧고 덧없다는 인식에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 영원불멸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누리고 있는 이 물질적 풍요와 쾌락을 영원히 ‘정지’시켜 놓고 싶어 그린 그림이 정물화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인증샷이었던 셈이다.
▲ 정물화는 인증샷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셀피제닉’하게 일상을 연출하다
셀카를 비롯한 인증샷의 일상화는 디지털 기기에 힘입었다. 주어가 ‘나’로 시작하는 일상을 기록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인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의 발명은 유레카가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조건과 환경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굳이 무거운 디카를 소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의 스펙은 거듭 진화했고, 게다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연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한 가정 한 자녀 시대’를 넘어 저출산이 사회 문제가 된 지금, 이대로 가다간 이모와 조카, 사촌지간이란 촌수가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타인에게 받아야 할 사랑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자기애’가 인증샷을 통한 자랑질로 충족되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렇게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무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등장한 것이 다양한 셀카 앱들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2017년에 떠오를 10대 혁신 기술 중 하나로 360° 셀카의 부상을 지목할 정도로 셀카 앱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 다양한 기능이 제공되는 셀카 앱 Ⓒapkpure.com(이미지를 클릭하면 다운로드 사이트로 이동합니다)
그중에는 생체 인증에 주로 사용되는 안면 인식 기술을 적용한 셀카 앱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작한 앱 ‘셀피(Selfie)’는 셀카를 찍으면, 인공 지능을 활용해 사진을 자동으로 보정해 준다. 이제까지 셀카 앱의 트렌드는 대체로 피부를 보정해 주거나 필터를 이용해 ‘분위기’를 덧칠해 주는 방향으로 진척돼 왔다. 그런데 최근엔 보다 유희적 요소가 강해지고 있다. 사진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특수 효과를 넣을 수도 있고, 배경에 동영상을 입힐 수도 있다. ‘셀피제닉(Selfie-genic)’이 일상을 예능으로 만들고 있는 지금, 단지 사진만 잘 받는 ‘포토제닉(Photogenic)’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시장의 동반 성장을 견인하는 인증샷 문화
셀카 앱은 미디어와 콘텐츠, 하드웨어 부문으로 점차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IT업계의 유니콘으로 부상할 정도까지 됐다. 셀카와 인증샷 트렌드가 시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셀카와 인증샷 문화의 확산이 비단 IT업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홈퍼니싱(Home Furnishing) 시장과 홈드레싱 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SNS에 공유되는 인증샷은 대충 아무렇게나 찍은 것처럼 보여도, 사실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 연출한 사진이 대부분이다. 흐트러진 침구, 얼룩이 묻은 테이블보, 변색된 머그컵을 그대로 찍는 사람은 없다. 중심이 되는 피사체 주변에 자연스럽게 놓인 소품들도 알고 보면 신경 써서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인증샷을 감상하는 ‘관객’들은 그것이 연출된 걸 뻔히 다 알면서도 멋진 모습에 감탄하고 부러워한다. ‘연출력’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 자라홈의 데코 아이템. 인증샷 문화는 홈퍼니싱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zarahome.com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연출력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득템’에 눈을 돌린다. 재미나고 아기자기한 일상용품, 세련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 소품을 사 모으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홈퍼니싱 제품의 매출이 올라가고 있으며, 저성장 속에서도 지속적 호황을 예측하고 있다. 이케아, 무인양품, 자라홈, H&M홈 등 해외 홈퍼니싱 시장이 선전하는 가운데 국내 가구업체도 홈퍼니싱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며, 패션 업체도 영역을 확장해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하나 더. 집에서 셀카를 찍는다고 해서 무릎 나온 추리닝 따위를 입고 대충 찍을 수는 없다.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홈웨어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평범한 일상의 자랑이 다반사가 된 인증샷 문화는 향후에도 다양한 변주로 지속될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인류에게 내재된 유전인자이기 때문이다.
Cheil Magazine 2017. 7
글 이준영(상명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교수, 『트렌드코리아 2017』 공저자)
저성장 시대에는 가성비가 중요하다. 그러나 싸다고 해서 무조건 환영받는 건 아니다. 그저 평범하기만 해서는 소비자의 눈길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게 프리미엄 전략이다. 특히 ‘B+ 프리미엄’은 고급스러운 A등급이 아닌 대중적이고 평범한 B등급에 새롭고 특별한 가치를 더하는 전략으로, 소비자의 니즈에 적확히 대응하는 한편 소비자를 충분히 납득시키는 게 핵심이다.
가성비 시대, ‘가격’보다 더 중요한 건 ‘가치’
저성장기가 깊어지면서 가성비가 핵심 소비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가성비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성능/가격’이다. 가성비를 높이는 방법으로 분모인 가격을 낮추는 방법도 있지만, 분자인 성능을 높이는 방안도 있다. 소비자들은 무조건 저가격이 아닌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을 선택한다. 따라서 가성비의 시대가 가속화될수록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프리미엄의 확보가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진다.
프리미엄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현상은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고관여 제품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대중 제품이나 식품 등 저관여 제품군에도 프리미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일반 대중 제품의 카테고리에서도 프리미엄의 가치가 핵심으로 자리 잡는 현상을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는 ‘B+ 프리미엄’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작은 사치, 스몰 럭셔리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적확하게 대응하는 것이 바로 B+ 프리미엄이다.
▲ 모나미 153 플라워 Ⓒmonami.co.kr
평범한 대중품에 프리미엄의 가치를 입힌 B+ 프리미엄은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모나미의 국민 볼펜으로 불리는 ‘153 볼펜’이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2만 원짜리 프리미엄 한정판 ‘153 플라워 볼펜’을 내놓자 바로 품절 사태가 벌어지며 중고 가격이 몇 십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거리에서 저렴하게 사 먹던 군것질 음식인 어묵도 삼진어묵, 고래사어묵 등 프리미엄 제품들로 변신하며 백화점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냉동식품에서도 비비고 왕교자 같은 프리미엄 라인, 대중 브랜드 롯데리아에서 프리미엄 재료를 넣어 출시한 ‘AZ버거’ 등이 B+ 프리미엄 제품 사례들이다.
▲ 프리미엄 대중 커피 시장을 창출한 콜드브루 Ⓒ동서식품
딥디크나 조말론 등의 향수 회사들은 섬유향수라는 새로운 프리미엄 제품 카테고리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콜드브루 커피도 원재료가 가진 신선함의 가치를 내세우며 프리미엄 대중 커피 시장을 창출했다. 이런 사례들이 모두 대중 제품 영역에서 프리미엄을 창출하는 B+ 프리미엄 전략이다. 치열한 공급 과잉의 경쟁 시대에는 합리적인 저가격을 넘어서 고객들의 작은 사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제품들만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소비 양극화가 만들어 내는 프리미엄 선호 현상
불황기에 이렇게 프리미엄 라인이 역설적으로 급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저성장기에 나타나는 소비의 양극화 현상 때문이다. 예전에는 개인의 소비 함수 내에서 [그래프1]처럼 중간 가격대의 제품을 많이 선택했다. 그러나 저성장기에 소비의 양극화가 두드러지면서 [그래프2]처럼 완전히 저가격 제품을 추구하거나 고가격의 프리미엄 제품군에 대한 수요가 역설적으로 늘어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100g당 1원이라도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찾는 반면, 자신이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작은 사치, 스몰 럭셔리 경향이 동시에 나타난다. 가격이 저렴한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와 고가격의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B+ 프리미엄 트렌드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불황기에 프리미엄 제품 수요가 역설적으로 늘어난다. 이탈리아 프리미엄 디자인 가전 브랜드인 스메그(SMEG)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주력 제품인 냉장고와 오븐 판매 실적을 전년보다 약 40% 끌어올릴 정도로 매출 상승세가 매우 높다. 비싼 가격 탓에 ‘가전업계의 에르메스’로 불리는 독일 프리미엄 가전 밀레도 지난해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저성장 시대의 소비 양극화 현상이 만들어 내는 프리미엄 선호 현상이 역설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프리미엄 선호 현상을 보여 주는 이태리 가전 브랜드 스메그 Ⓒsmeg.co.za
비쌀 만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시켜라
B+ 프리미엄은 럭셔리의 개념과 구별해야 한다. 럭셔리는 유럽적 접근으로서 전통과 해리티지를 강조하며 타인에게 과시하려는 지위 표지로서의 기능이 강한 제품을 가리키는 반면, B+ 프리미엄은 미국이나 일본적 접근으로서 철저히 탁월한 기능과 품질을 강조하며 사용상의 즐거움과 자기 만족 경향이 강한 제품을 가리킨다.
B+ 프리미엄 제품은 고객들에게 실용적 가치를 눈으로 확인하게 하며, 감각적이되 합리적인 디자인으로 승부한다. 여기에 차별화된 경험과 소재의 신선함을 살린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프리미엄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왜 비싼가?”라는 질문에 대해 소비자들에게 납득 가능한 품질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실체 있는 프리미엄이 B+ 프리미엄이다. 즉 B+ 프리미엄의 기본은 “소비자가 지불한 비용에 대비해서 납득 가능한 대가를 되돌려 주는가?”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B+ 프리미엄은 그동안 견고했던 ‘고급제품 vs 대중제품’ 사이의 경계를 허물면서 저성장기 소비의 양극화 시대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내고 있다. 장기 저성장기에 소비 구조의 질적 변화가 예고되는 미래에 B+ 프리미엄 트렌드는 불황의 벽에 막히고, 소비 절벽의 늪에 빠진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Cheil Magazine 2017. 7
글 편집실
이달의 주제 ‘Normal × Unique’와 관련된 신조어 및 관련 개념에 대한 소개.
북스테이(Book Stay)
놈코어(Normcore)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
Cheil Magazine 2017. 7
글 권기범 프로(비즈니스 4팀)
지난 1월 2일, 드디어 연간 판매량 성적이 나왔다. 더 넥스트 스파크 2016년 경차 판매 1위! 스파크를 타고 전국을 누볐던 <스파크 더 로드> 캠페인을 비롯, 작년 한 해 동안의 고민과 노력을 보상받는 듯 뿌듯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야속하게도 바로 다음 날 경쟁사 풀체인지 모델의 프리론칭 영상이 중계되자 다시 고민의 여정이 시작됐다.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
6년 만에 풀체인지 모델이 출시된 경쟁사는 개선된 상품성을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 역시 스파크 대비 경쟁 우위를 소재로 전방위적 물량 공세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게다가 보통 신차 출시 초기에는 잘 하지 않는 가격 할인 프로모션까지 진행하며 신차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형국이었다.
우리는 분석을 통해 제품적으로 보나 소비자 인식으로 보나 안전성 면에서는 스파크가 확실히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아직 전문 기관으로부터, 또 소비자들로부터 안전성을 비롯해서 검증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는 게 신차가 가진 약점이었다. 스파크의 ‘검증된 안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커뮤니케이션 방향을 정했다.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
단순히 팩트를 나열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더 공감을 얻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래서 쉐보레 광고에는 늘 스토리가 있다. 국내 경차 유일 자동차 안전도 평가 1등급, 동급 최다 8개 에어백과 프리미엄 안전 시스템 등 안전성과 관련된 여러 팩트를 어떤 스토리를 통해 전달할지 고민했다.
스파크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경차 구매 목적을 조사해 보니, 자신이 탈 목적 외에도 ‘아내에게 선물’, ‘어머니에게 선물’, ‘아이와 함께 탈 차량 구매’, ‘자녀 대학 입학 선물’ 등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이 탈 목적일 때는 스스로의 운전 실력을 믿고 안전성을 후순위로 두는 반면, 아내나 자녀가 탈 차라면 안전성을 우선 순위로 둔다는 점이었다.
차를 선택하는 많은 기준 가운데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꼼꼼하게 챙겨 볼 사람. 상대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사람, 그리고 그 관계. 우리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스토리를 담기로 했다.
▲ THE NEXT SPARK TV 광고 ‘깐깐한 선택’ 편 영상 풀버전
신의 한 수, 신구
스토리를 개발하고 보니, 자칫하면 할아버지 캐릭터가 너무 까다로운 고객으로 비칠 수 있었다. 그래서 깐깐한 행동을 하더라도 밉지 않고,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을 낼 수 있는 모델이 필요했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통해 ‘구요미’, ‘구야형’ 등의 별명을 얻으며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잘 보여 준 신구 선생님이 딱이었다. 때마침 <윤식당> 방영이 시작돼서 이슈성까지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광고에서 신구 선생님의 역할 비중이 큰데, 대사가 많지 않아 표정과 행동으로 캐릭터를 잘 표현해야 했다. 쉬울 것 같지만 쉽지 않은 연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촬영이 시작되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연기를 주문하면 정확하게 해석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현장에서 모두 감탄했다. 덕분에 매일 촬영이 일찍 끝났는데, 누구 하나 아쉬워하는 사람 없이 퇴근할 수 있었다.
▲ 신구의 친화적 이미지가 돋보이는 움짤 영상 ‘KNCAP 1등급’ 편
▲ 움짤 영상 ‘엑티브 세이프티’ 편
소중한 사람이 타니까
광고에서 신구 선생님은 혼잣말을 하며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꼼꼼하게 메모한다. 직접 전시장에 몇 번씩이나 찾아가 차를 살펴본다. “논문을 쓰신다”는 아내의 핀잔에도, 차의 장점들에 대해 설명하는 영업사원들의 말에도 시종일관 흔들리지 않는다. 별다른 말 없이 계속 듣기만 하고, 깐깐하게 살피는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쯤 사실 손녀에게 선물할 차를 고르는 중이었다는 반전이 드러난다. 무표정이 환한 미소로 바뀌는 순간, 답답했던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래 그렇지, 소중한 사람이 타니까! 머리로 이해하는 순간, 가슴으로 공감하게 된다.
좋은 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힘
모바일 환경에서는 짧은 시간에 시선을 사로잡고 메시지를 남겨야 하기 때문에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유리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이번 광고는 2분짜리 긴 영상임에도 조회, 공유, 댓글 등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끝까지 보는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사실 숫자로 측정 가능한 퍼포먼스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은 댓글 내용이다. 반응을 모니터링하면서 우리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감정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결과는 좋은 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힘 덕분일 것이다. 풍성한 스토리를 통해 감성적으로 접근한 영상 외에도, 스파크의 강점들을 소비자들이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온라인 움짤 콘텐츠와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제작했고, 이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 움짤 영상 ‘10가지 컬러’ 편
계속되는 고민의 여정
이 뜨거운 반응들을 보며 우리는 계속해서 고민을 이어간다. 다른 광고들과 무엇이 달랐던 걸까? 좋은 스토리란 대체 어떤 것일까?
자동차 광고들은 대개 차량 구매 이후의 모습을 보여 준다. 타깃을 대표하는 멋진 모델이 차를 타고 시원하게 달리며 어딘가로 향한다. 하지만 이번 광고는 누가, 누구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선택했는지 구매의 과정을 보여 줬다는 점이 다르다. 그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간 관계가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살아간다. 좋은 스토리란 그 관계와 이야깃거리를 잘 관찰해서 ‘아, 이거 내 얘기 같아’ 하고 공감할 수 있게 이어 주는 게 아닐까?
Cheil Magazine 201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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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il Magazine 2017. 7
글 배가브리엘 프로(비즈니스네트워크팀 Cheil Innovation Center)
디지털 플랫폼의 기반이 강화되고 그 범위도 넓어지면서 점차 핀테크(Fintech), 마테크(Martech), 푸드테크(Foodtech), 애그리테크(Agritech) 등 기존 사업 영역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의미하는 신조어들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패션테크(Fashiontech) 역시 하나의 산업군으로 인정받아, ‘패션캐피탈파트너스’나 ’뉴욕패션테크랩’을 비롯해 패션테크 스타트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펀드나 액셀러레이터가 등장하고 패션테크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도 다수 개최되는 중이다.
맞춤화와 개인화에 직면한 패션테크 스타트업
패션테크를 지향하는 회사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한다. 기술의 힘을 빌려 과거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도제 방식을 따르는 생산 라인을 개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품의 특성상 시장 최전방에 서서 소비자와 마주하며 작금의 유행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메지(Mezi), 오퍼레이터(Operator)를 비롯한 쇼핑 챗봇 스타트업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현상과 아마존이나 넷플릭스가 대변하는 맞춤형 커머스의 인기를 볼 때 지금 소비자가 어떤 쇼핑 경험을 누리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다.
소비자는 다수 대중을 상대로 한 상품보다 특정 그룹을 타깃팅하는 상품을 선호하며, 개인에게 가장 알맞은 물건을 골라 소비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누리고자 한다. 따라서 패션테크 스타트업들도 소비자에게 보다 맞춤화 및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재편하고 있다.
만족스러운 쇼핑 경험을 위한 인공지능
소비자가 좋아하지 않는 옷, 구매하지 않을 듯한 스타일의 옷을 구경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나쁜 쇼핑 경험’을 얻게 내버려두는 대신, 패션테크 회사들은 그에게 제일 잘 어울릴 법한 옷을 간편하고도 만족스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소비자 개인의 브랜드에 대한 선호, 좋아하는 스타일, 체형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하고 최적의 상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시간과 불편을 절감하는 동시에 판매 수익도 제고하기를 기대하는데, 일례로 2012년 설립된 남성복 커머스 스타트업 스레드(Thread)를 들 수 있다.
▲ ‘무료 온라인 스타일리스트’를 지향하는 스타트업 스레드 Ⓒthread.com
스레드는 ‘온라인 스타일링 서비스’를 지향하며, 여태껏 시간 및 비용의 제약 때문에 특정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었던 오프라인 스타일링 서비스의 한계를 뛰어넘어 누구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릴 법한 옷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객의 선호를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한 후(“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는?”, “주말에 입고 싶은 스타일은?”, “슬림핏과 부츠컷 중 어느 스타일을 선호하는가?” 등) 고객과 스타일리스트를 매칭해 준다.
고객은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에게 조언을 구하고 상품을 추천받는데, 약 25만 명 이상의 회원이 스레드 서비스를 이용 중임에도 스타일리스트는 고작 10명 남짓이다. 그러나 스레드는 AI를 활용, 스타일리스트의 공수를 줄이고 추천에 대한 정확도도 제고한다. 즉 스타일리스트가 최초로 고객에게 전달하는 상품 목록에 대해 돌아오는 피드백을 지렛대로 삼아, 고객의 기호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보다 고도화된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클라크룸(the Cloakroom)도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에서 자리 잡은 스타트업으로, 두 회사 모두 온라인 쇼핑에 어려움을 느끼는 남성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 이런 서비스를 활용해 소비자는 쇼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면서 자신에게 잘 맞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AR 기술로 가상 피팅 경험 제공
한편 온라인에서 의류를 구매할 때 겪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소비자가 직접 착용해 본 후 자신의 몸에 맞는지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인데,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나아가 자신의 체형에 가장 잘 맞는 옷을 살 수 있도록 많은 스타트업이 인공지능과 AR 기술을 활용 중이다. 라쿠텐이 핏미(Fits.me) 사(社)를 인수한 후 가상 피팅 분야가 크게 주목받아 왔는데, 영국의 패션테크 스타트업 미테일(Metail)도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해 가상 피팅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 미테일의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한 가상 피팅 솔루션 ©metail.com
미테일은 의류를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한 후, 소비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옷을 가상으로 착용해 볼 수 있게 한다. 미테일에 의하면 고객들이 만족하고 납득할 만한 피팅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이 필요하다. 단지 실제의 옷을 촬영해 디지털로 옮겨 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고객의 체형을 파악하고 옷이 어떤 식으로 흘러내릴지, 어디에 주름이 잡힐지 등 옷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테일은 이러한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처리 기술을 인정받아 현재까지 약 2백만 유로의 투자를 받았다.
▲ 미테일의 가상 피팅 애플리케이션 ⒸMetail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직판형 플랫폼
나에게 보다 잘 어울리는, 나를 위해 맞춤형으로 제공된 상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이 자신의 선호를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패션테크 스타트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에 그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한’ 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소비자와 공급자의 거리를 좁히는 온디맨드형 구조는 패션 산업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에 의해 2014년 최고의 신진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여온 19th 어멘드먼트(19th Amendment)는 대형 브랜드에 소속되지 않은 디자이너들과 소비자 개개인을 연결시키며, 디자이너에게는 판로를 열어 주고 소비자에게는 개인화된 상품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 준다. 소비자가 특정한 상품에 대해 구매 의사 및 수정 의견을 제시하는데, 주문 가능한 기간은 19일로 한정돼 있다. 디자이너는 해당 수량만큼만 제품을 생산하면 되기 때문에 재고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이처럼 디자이너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 스타트업으로 신진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블링크도 있다.
▲ 개인 소비자와 디자이너를 연결시키는 19th 어멘드먼트 ©nineteenthamendment.com
3D 프린팅, 패션테크의 도전이자 가능성
직판형 플랫폼이 생산자와 소비자 간 불투명성을 걷어냈다면, 3D 프린팅을 활용한 패션 비즈니스는 온디맨드 서비스의 극단으로서 소비자가 자신의 수요를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나아가 생산 과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 즉 말 그대로 ‘나만을 위한 상품’을 제작해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3D 프린팅 기술은 IT 전문기관 가트너나 MIT 등에 의해 미래 산업 구조를 바꿀 혁신 기술로 여러 번 꼽힌 바 있다.
3D 프린터 기기와 원료가 저렴해지고 사용 방법도 쉬워지면서, 여러 분야에서 3D 프린팅을 접목하며 이른바 ‘메이커’가 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응답하는 중이다. 특히 패션 산업에서 인공지능과 3D 프린팅을 결합할 경우, 디자이너들이 수개월에 걸쳐 작업하는 오트쿠튀르(Haute-couture) 수준의 정교하고 복잡한 산출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패션 산업은 3D 프린팅 기술을 새로운 도전 과제로 바라보고 있다.
▲ 니탄의 의류 제작 과정 ⒸDezeen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니탄(Knyttan)은 이미 네타포르테와 파페치 등 대형 패션 리테일러들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이목을 끌었다. 기존의 니트 의류 생산 과정을 단순화하기 위해 3D 프린팅 기술을 차용했다. 결과적으로 평균 90일의 기존 제작 기간을 90시간 남짓으로 줄이는 동시에, 50장 수준의 최소 생산 단위 역시 줄여 단지 한 장이라도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의 의류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서스데이파이니스트(Thursday Finest) 역시 온디맨드 또는 D.I.Y 형태의 서비스를 지향한다. 개인이 필요로 하는 니트 제품을 ‘몇 분 안에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는’ 3D 니트 프린팅 솔루션을 제공 중인데, 오프라인 현장에서 고객이 직접 개인화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메이시즈 백화점과 제휴하고 뉴욕 소호에 팝업스토어를 론칭하기도 했다.
▲ 원하는 형태로 니트 제품을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서스데이파이니스트 ©thursdayfinest.com
고객은 서스데이파이니스트의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소재와 컬러, 모양을 선택해 ‘오직 자신만의’ 양말, 넥타이, 모자, 스카프 등을 주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의 디자이너 대닛 펠렉(Danit Peleg)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누구나 집에서 당장 제작해 입을 수 있는 옷(Ready-to-wear Collection)’을 선보였다. 유연한 재질을 선택해 마치 레이스처럼 보이는 옷을 만들었는데, 그가 런웨이용 작품을 인쇄하는 데는 각각 약 400시간 정도가 걸렸지만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은 훨씬 더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아무 가방 없이 여행을 떠나 호텔 룸에서 자신의 옷을 인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닛 펠렉의 목표인데, 이는 모든 3D 프린팅 패션테크 회사들의 목표이기도 할 것이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으로 ‘나만을 위한’ 상품 제공
이처럼 인공지능과 데이터 분석, AR, 3D 프린팅 기술 등을 활용해 많은 스타트업이 고객 개개인의 만족을 제고하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노력 중이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불리는 한정 생산 제품의 인기라든지, 많은 온라인 커머스 쇼핑몰에서 이전 구매 기록 및 타 사용자의 선호 등을 변수로 활용해 제품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현상은 사람들이 보다 더 자기 취향과 기호를 반영한 소비 경험을 누리고 싶어함을 뚜렷이 보여 준다.
패션과 디지털 테크놀로지, 즉 예술과 기술이라는 ‘양극단에 위치한 두 산업’은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상관 관계를 맺어 가며, 고객이 맞춤화되고 개인화된 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3D 프린팅 주얼리 시장이 2020년까지 약 1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앞으로도 패션테크 스타트업의 약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지 개인의 소비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트렌드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정체돼 있던 패션 산업이 새로운 동력을 찾는 데에도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형태의 패션테크 스타트업이 등장해 개개인의 취향에 힘을 실을지 두고 볼 만하다.
Cheil Magazine 2017. 7
제일기획의 뉴스를 소개합니다.
인도법인, 광고주로 남성 향수 및 화장품 브랜드 영입
제일기획 인도법인이 인도 프리미엄 화장품 기업 제이케이 헬렌 커티스(J.K. Helene Curtis)의 남성용 향수 및 샴푸 브랜드의 디지털 에이전시로 선정됐다. 인도법인은 다양한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운영과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및 미디어 바잉을 담당한다.
영국법인, 크리에이티브 테크 광고제 최고상 수상
제일기획 영국법인이 삼성전자와 진행한 기어 S3 캠페인이 영국의 유력 마케팅 업계지 「 캠페인(Campaign) 」 에서 주관하는 크리에이티브 테크 어워드(Creative Tech Awards)에서 최고상인 플래티늄을 수상했다. <기어 S3 세계 합창(Gear S3 World Choir)> 캠페인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전 세계 24개 합창단을 초청해 런던 피카딜리 광장에서 공연을 진행, 합창 단원들이 착용한 기어 S3를 통해 생체 데이터를 수집해 비주얼 디스플레이로 표현한 캠페인이다.
Cheil Magazine 2017. 7
글 신혜림 프로(미디어플래닝 1팀)
‘광고를 해야 효과 있다’라는 말은 동네 치킨집 사장님도 안다. 그런데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 걸까. 이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다각도로 많은 고민이 있어 왔다. 제일기획에서는 정확한 답을 구하기 위해 2009년부터 카테고리 구매 주기별로 TV 중심 광고비 투입에 따른 브랜드 지표 변화를 트래킹해 왔다. 이로써 투입 광고비에 따른 브랜드 지표 영향력을 조사해 ‘Smart Decision’을 통해 마케팅 효과를 정확하게 측정,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주별 트래킹 통한 효과 측정
최근 디지털 광고비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디지털 집행에 따른 정확한 효과 측정에 대한 니즈 또한 증폭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부문은 단기간에 집행되고 곧바로 반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광고비 투입에 따른 즉각적 ROI 측정에 더욱 관심이 집중된다.
이에 제일기획에서는 조사 주기를 주별로 전환해, 캠페인 온에어부터 종료 시점까지 주별 트래킹을 통해 캠페인 퍼포먼스 효과를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인지 조사의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단순한 성/연령 타깃팅이 아닌 구매자 베이스로 응답자를 선정해 카테고리 고(高)관여자에 대한 트래킹을 강화했다.
주별 트래킹의 세 가지 장점
❶ 이를 통해 먼저 주별 미디어 운영 최적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기존에는 캠페인 종료 후 지표 변화를 바탕으로 다음 캠페인에 반영했다면 이제는 집행 중 광고비 투입량에 따른 지표 변화, 특히 경쟁사의 집행량에 따른 변화도 같이 파악해 미디어 믹스 및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다.
❷ 캠페인 인지자와 비(非)인지자를 구분해 트래킹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태도, 선호, 구매 의향 등에서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분석 가능하다.
❸ 또한 캠페인의 정확한 ROI 측정이 가능하다. 기존에는 캠페인 종료 후 노출 위주의 효과 및 효율 지표를 중심으로 데이터를 생산했다면 앞으로는 캠페인 정인지자를 대상으로 주별 광고비 투입에 따른 브랜드 지표 변화를 확인해 각 미디어 접점별 ROI 지표를 산출하고 이를 다음 집행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이다.
이를 위해 조사 회사인 Ipsos와 협업해 종합적 ROI 지표인 SOI(Share of Impact) 지표를 개발했다. SOI 지표는 소비자 구매 의사결정 과정에 근거해 캠페인 인지-탐색-구매 각 단계별 접점 영향력을 조사하는 한 편 카테고리별 각 Journey 가중치를 차별화해 종합적인 SOI 지표를 산출한다.
즉 SOI 지표를 통해 어떤 미디어가 캠페인에 가장 큰 영향을 줬는지 파악할 수 있으며, 향후 인지도 형성, 선호도 강화, 구매 촉진 등 캠페인의 목표에 따라 미디어 믹스를 최적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에 기획 실시하는 Weekly ROI 소비자 트래킹 조사의 경우 주별 조사의 특성상 리소스가 많이 투여돼 한꺼번에 모든 업종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양한 업종의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해 추후 데이터가 누적되면 카테고리 상황 및 브랜드 특성에 적합한 광고비 산출 및 최적의 미디어 믹스 제안이 가능해져 기존보다 더욱 고도화된 캠페인 분석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Cheil Magazine 2017. 7
카피 이승용 프로(신태호CD팀), 사진 김혜경 프로(비즈니스 11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