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9. 6
이승윤(건국대학교 마케팅 교수, 디지털 문화심리학자)
컬래버레이션은 이전에도 브랜드가 자주 활용하던 전략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공간성’이 추가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개성 있는 공간과 결합했을 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인상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메시지가 되는 시대에 브랜드가 공간과 융합하는 사례들을 살펴본다.
얼마 전 CGV는 어린이 교육 콘텐츠로 유명한 대교와 전략적인 컬래버레이션을 하기로 발표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CGV와 대교의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이 갸우뚱할 수 있지만, 한 겹만 더 들어가 보면 무척이나 영리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CGV는 젊었을 때 영화관에 끊임없이 찾아오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영화관에 오지 않는 문제를 돌파하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이들 어린 자녀를 가진 젊은 부부가 영화관에 왔을 때 자녀가 소비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면, 그들의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다시 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부부들이 자녀들에게 유튜브를 통해 교육 프로그램들을 보여 주는 시대다. 이러한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 속으로 쏟아지는 어린이 교육 콘텐츠들이 확산되면서, 향후에는 집으로 직접 방문하는 교사를 통한 교육 콘텐츠가 줄어들 여지가 높다. 따라서 대교가 가진 어린이 교육 콘텐츠들을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풀어내 디지털 시대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싶을 것이다.
이처럼 최근 공간을 매개로 한 컬래버레이션이 여러 브랜드들 간에 일어나고 있다. 색다른 경험을 끊임없이 추구해 가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많은 브랜드가 공간에 특별한 경험을 입히는 다양한 형태의 융합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70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자랑하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가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자신들의 DNA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파트너 역시 CGV였다. 곰표는 뉴트로(New + Retro, 과거에 유행했던 콘텐츠를 디지털 네이티브에 맞게 현대적으로 해석해 전달하는 방식) 열풍에 발맞춰서, 브랜드의 북극곰 캐릭터를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현대적인 레트로 풍으로 제품 패키지에 다시 담아냈다.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20kg 곰표 밀가루 포대에 팝콘을 담아서 CGV 왕십리점에 한정 기간으로 판매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의외의 공간에서 의외의 브랜드들이 펼치는 이 협업 이벤트는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극장에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한정판 밀가루 포대 팝콘을 구매하고, 너도 나도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에 인증샷을 올렸다.
▲ CGV 왕십리점에서 진행된 곰표밀가루 팝콘 이벤트 Ⓒ cgv.co.kr
▲ 천연 화장품 브랜드 스와니코코와 곰표밀가루가 선보인 뷰티템들 Ⓒ swanicoco.co.kr
지금 일본에서 가장 핫한 공간을 들자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긴자 소니 파크 (Ginza Sony Park)를 꼽을 것이다. 도쿄에서 가장 땅값이 높기로 유명한 긴자 노른자 땅에 있던 소니 타워를 없애고 만든 공원이 바로 소니 파크이다. 비싼 땅에서 수익이 거의 없는 이런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 낭비로 보일 수도 있지만, 소니는 이런 공간을 통해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소비자 경험을 만들고, 이를 통해 소니의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이 매력적인 공간에서 수많은 브랜드들이 소니와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와의 컬래버레이션이다
▲ 소니 파크에서 진행된 <Hermès Jingle Games!> Ⓒ instagram.com(인스타그램 검색 화면 캡처)
2018년 크리스마스 즈음, 에르메스는 소니와 함께 이 긴자 파크에서 <Hermès Jingle Games!>라는 캠페인을 열었다.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히트 상품인 켈리 백(Kelly Bag)이 소니의 게임 캐릭터로 재탄생해서, 긴자 파크를 방문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이벤트를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과거의 시각으로 보자면, 에르메스 입장에서는 자신의 브랜드 정체성과 그다지 연관성이 없는 소니와 굳이 협업을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니가 대중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 브랜드 간 컬래버레이션은 의외의 브랜드들이 공간을 통해 얼마든지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과거의 전통적인 마케팅은 직접적인 브랜드 DNA를 담은 메시지를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보통 광고 형태로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고 드러내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들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자신들이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브랜드 DNA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일방향적으로 전달하는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브랜드의 핵심 DNA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에 따라 최근 많은 브랜드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좋은 공간을 활용해 그 안에서 소비자와 다양한 접점을 만들고, 방문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해당 브랜드 DNA를 느끼도록 정교하게 설계하는 방식을 마케팅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들에게 방문할 가치를 전해 주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브랜딩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브랜딩하기 좋은 공간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들은 큰 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좋은 공간을 가진 브랜드들과 협업하려는 많은 브랜드들이 생기고 있다.
‘팔지 말고 경험하게 하라’라는 경험 마케팅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다. 앞으로 우리는 다양한 공간에서 의외의 두 브랜드들이 흥미로운 형태의 컬래버레이션을 만들어 내는 광경들을 끊임없이 보게 될 것이다.
▲ 2018년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시계 브랜드 론진의 기념 행사.
리플렉션3D가 환상적인 프로젝션 맵핑을 선보였다.
Ⓒ 리플렉션3D 홈페이지 갤러리(reflexion3d.com)
▲ 2017년 영등포 대선제분 문래공장에서 열렸던 쉐보레 올 뉴크루즈 미디어 쇼케이스.
Ⓒ 쉐보레 공식 블로그(blog.gm-korea.co.kr)
* 필자 이승윤은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마케팅 분과 교수이다. 비영리 연구·학술 단체인 디지털마케팅연구소의 디렉터로 있으면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러 권의 저서가 있으며, 최근 새로운 고객 경험에 대한 풍부한 인사이트가 담긴 『공간은 경험이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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