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8. 5
편집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밥상머리에서 책을 읽다가 야단맞은 적이 있으신가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고무줄놀이에 빠진 적이 있으신가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이 있으신가요?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에 꽂혀 주말 내내 몰아 보기를 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느닷없이 마주친 가게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물건들을 한아름 사들고 나온 적이 있으신가요?
읽는 재미, 노는 재미, 보는 재미, 구경하는 재미….
재미란 것이 상대적이라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일이 다른 이에게는 심드렁할 수도 있지만, 세상의 수많은 재밋거리는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몰입하게 만들고, 기억나게 하고, 등 떠밀려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하게 만드는 것. 그게 재미의 힘이겠지요.
짜면 장미꽃 모양으로 거품이 나오는 폼클렌저, 포장재까지 물에 녹아 버리는 비누, 컵까지 먹을 수 있는 음료, 책상에 엎드리면 쿠션처럼 부풀어올라 베개로 쓸 수 있는 넥타이, 종이에 닿으면 입력된 단어를 자동으로 써 주는 볼펜…. 이런 제품들이 있다면(실제로 출시된 제품도 있습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들에는 눈길도 가지 않겠죠? “이 제품 정~말 좋아요”라고 강변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사게 만드는 것. 그게 재미의 힘이겠지요.
‘소유’ 대신 ‘경험’을 우선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 말인즉 단순히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소비의 ‘본질’이 달라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 불고 있는 이러한 경험 지향적 소비 트렌드 중 가장 눈여겨볼 대목은 재미있는 경험, 재미를 유발하는 경험을 중시한다는 점입니다. 하긴 재미를 애써 외면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재미는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톡톡 뿌려 주는 맛있는 양념이니까요.
『Cheil』 매거진이 지난 호에서 다룬 키워드는 ‘Conclude’였습니다. 뉴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단어가 생겼을 정도로 소비자가 전문가가 된 시대에 소비자의 구매 의사 결정과 자기 표현에 대해 짚어 봤습니다. 이번 호의 키워드는 ‘Converge’입니다. 지금 시대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동인은 무엇일까요? 『Cheil』 매거진은 그 답으로 ‘재미’에 주목했습니다. ‘가성비’도 중요하긴 하지만, 물건을 저렴하게 샀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죠. 하지만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재미를 느낀다면 그 소소한 재미들이 행복의 무늬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생긴 말 ‘가잼비’.
Conclude와 Converge 사이에는 소비 권력의 이동이라는 공통항이 있습니다. 이제 기업과 브랜드가 ‘어찌할 수 있는’ 소비자는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어찌하고’ 있으니까요. 그 ‘어찌함’이 무엇인지 간파할 수 있다면 소비자의 마음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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