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9. 3
편집실
차별과 편견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그런 자신들을 힙하고 트렌디하게 여기는 이들은 자신들이 소비하는 브랜드들도 사회적 담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길 원한다. ‘최애’ 브랜드가 자신들의 생각에 공감하고 지지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은 ‘다양성의 포용’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비자가 가난한 이웃,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브랜드의 생각과 태도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뭘까? 기업이나 브랜드가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 훼손된다고 믿어서다.
얼마 전 유시민 작가는 <알쓸신잡> 시즌3에서 다양성 포용에 대한 흥미로운 견해를 밝혔다. 그의 말인즉슨, “우리나라는 참 개인을 무시한다. 모두가 관계망 속에 존재해야 하고, 관계망을 벗어나면 인정을 못 받기 때문에 삶이 괴롭다고 생각한다”는 것. 유럽의 공동체가 개인주의의 기반 위에서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과 상반된다는 얘기다.
그렇다. 우리는 그동안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며 꺼려 왔다.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은 저서 『생각의 지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확연히 다른 시선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리스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했다면, 중국에서는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중요했다”고.
그의 분석처럼 우리가 관계 지향적 특성을 가졌다면, 일찌감치 단단한 공동체적 가치관이 구축됐어야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획일화, 서열화, 다양성 부족, 주류적 가치를 향한 맹목적 경쟁 같은 부정적 특징을 가진 사회로 진화해 왔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하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던 우리 사회에 ‘똘레랑스(Tolerance)’란 키워드가 본격적으로 제시된 것은 1995년 발간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의해서였다.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에 거주하다 귀국했던 저자 홍세화는 이 책을 통해 ‘차이’를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삼지 말라는 똘레랑스의 메시지를 당시의 담론으로 던졌다.
물경 25년 전 똘레랑스가 언젠가 사라질 이데올로기가 아닌 영원히 요구되는 최소한의 배려임이 역설됐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당시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다양한 목소리가 사회적 건강성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마크로빌엠브레인이 2018년에 실시한 <사회적 다양성 관련 인식 및 태도 조사>에 의하면, “내 가족 중 누군가가 동성애 성향을 보였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이해는 하겠지만 주변에 일부러 알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으며, 얼마 전 이슈가 됐던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응답자 중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정부가 엄격하게 심사해서 난민 수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기 시작했지만, 사회적 약자와 다양한 소수자를 향한 차가운시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누가 ‘정상’이고 ‘주류’이며 무엇이 ‘상식’인가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마치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처럼 우리는 다양한 시선으로 사람과 사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소설 속 주인공 바틀비는 사회 부적응자로 인식될 수도 있고, 자본주의에 의해 내몰린 힘없는 노동자로도, 월가의 욕망과는 반대로 허기진 삶을 선택한 흔치 않은 사람으로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극소수에 속하는 그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그의 판단과 결정도 존중돼야 건강한 사회이다.
다양성의 포용이 우리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밝힌 흥미로운 책이 있다. 미국의 도시를 사례로 들면서 도시 발전의 요소를 3T(Technology, Talent, Tolerance) 이론으로 설명한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의 책 『Who’s Your City?』가 그것이다. ‘세계의 경제 엘리트들은 어디서 사는가’란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저자는 흥미롭게도 “도시의 번성 정도는 ‘게이 지수(Gay index)’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도시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재능’, ‘포용성’이란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도시 구성원들의 포용성이 높아야 재능 있는 사람이 모여들고 기술 혁신이 이뤄진다는 것. 특히 어느 사회에서나 제일 마지막까지 차별당하는 소수 집단이자 전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들이 살만한 곳에 대한 정보 교환을 하는 게이들이 선택한 도시가 번성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어느 도시에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기회가 더 열려 있거나 혹은 닫힐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공간을 포용성 지수가 높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업을 외면하거나 조직적으로 불매 운동을 벌이는 현상은 포용성 높은 사회를 만들어 발전하고픈 집단적 무의식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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