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모바일·IT 전문 크리에이터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만큼 오랫동안 휴대폰, TV, 컴퓨터 관련 광고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제품들이 10년 아니 5년 만에 바꾸어 놓은 이 놀라운 세상에 감탄하기도 하고, 또 그 변화에 일조하기도 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굳이 분류하자면 저는 아날로그형 인간입니다. 카피 한 줄도 펜을 들고 종이에 써야 술술 써지고, 모니터나 휴대폰 액정을 통해 읽은 내용은 금방 까먹곤 합니다. 최소한 프린트아웃을 해서 손에 들고 있어야 안심이 되고, 손으로 느껴지는 연필의 감촉, 종이의 질감, 사각사각 심이 닳는 소리, 딸깍딸깍 볼펜 누르는 소리, 코를 비집고 들어오는 잉크 냄새, 크레파스 냄새에 유난히 집착하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손안에 종이가 없으면 불안해지는 이 증세는 비단 저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봅니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이 광고 속에는 아날로그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남편에게 끊임없이 지적받는 엠마가 등장합니다. 도화지와 크레파스 대신 태블릿PC에 그림을 그려라, 냉장고에 더덕더덕 붙이는 포스트잇 대신 액정 속 버추얼 포스트잇을 사용해라, 프린트아웃 하지 말고 액정 위에 사인하라는 등 잔소리는 끝이 없습니다. 심지어 종이로 된 책을 읽는 대신 전자책을 보며 뿌듯해하는 엠마의 남편 얼굴에는 ‘디지털 테키족’의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상황은 남편이 화장실에 앉아 떨어진 휴지를 얻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