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알파벳 A와 B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 그저 A는 모음이고 B는 자음일 뿐…. 그런데 언젠가부터 A와 B 사이에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생겼다. A는 고상하고 상식적인 ‘주류’를 대변했고, B는 저급하고 통속적인 ‘비주류’로 치부됐다. 오랫동안 B는 수준 이하(Below)라는 오명을 들으며 변방(Border)에서 절치부심해야 했다. 그러다가 세상이 달라졌다. B가 껑충껑충 도약(Bound)하더니 급기야 최상(Best)의 대안으로 등극했다. ‘Below’와 ‘Best’, 그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일까?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취’라는 글자를 입력하면 바로 ‘취향 저격’이라는 단어가
자동 완성된다. ‘취’로 시작하는 수많은 단어를 물리치고, ‘취향 저격’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장 큰 관심사라는 얘기다. 바야흐로 취향 저격 시대….
‘타인의 취향’은 그저 존중해야 할 수준을 넘어, 이제 공략해야 할 대상이 됐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계단 끝은 낭떠러지이다. 그러나 가상현실이라면 계단 너머에는 무한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은 실재(實在)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렇다고 그 속에서 경험했던 감정을 ‘가짜’로 치부할 수는 없다. 명사 ‘Virtuality’는 ‘본질’이란 뜻도 갖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무엇, 그 본질을 꿰뚫을 수 있을 때
가상현실은 ‘현실’의 또 다른 버전이 될 수 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란 말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유비쿼터스를 넘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현실과 가상이, 사람과 사물이, 사물과 사물이 연결된다.
연결이 세포 분열할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