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5. 10:00

백 세 시대인 오늘날, 적게 잡아 60년간의 끼니만 계산해 봐도 인간은 일생 동안 6만 5700끼를 먹는다. 이렇게 수많은 식사 중 몇 끼 대충 먹는다고 큰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먹는 것’에 열광한다. 평생 먹는 밥 한 끼에 공들이는 현대인에게 ‘음식’은 이 시대 핫 키워드다. 사람들은 어딜 가든 그 곳의 볼거리보다 ‘먹거리’ 찾기에 열을 올린다. 음식을 탐닉하는 행동 그 이면에는 어떤 심리가 있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016년 7월 25일부터 8월 21일까지 4주간 제일기획 패널 2519명의 온라인 행동 데이터와 최근 2년간 소셜 미디어상의 소비자 버즈를 분석했다.

음식에 대한 관심의 증가

최근 포털 검색어를 살펴보면 ‘홍대’, ‘강남’, ‘이태원’ 등 핫플레이스의 첫 번째 연관어로 ‘맛집’이 등장하고, TV를 켜도 손 안의 휴대폰을 들여다봐도 음식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넘쳐난다.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듯 2014년 후반부터 현재까지 음식 관련 소비자 버즈양(量)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음식관련소비자버즈양

이는 현대인의 삶에서 ‘음식’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자 검색어 비율에서도 일상 속 음식에 대한 관심이 영화, TV쇼, 게임 등과 같은 엔터테인먼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쇼핑이나 사회 이슈보다 음식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검색어비율

올 상반기 소비자 버즈를 통해 살펴본 음식 관련 키워드의 카테고리별 증감 변화는 소비자들이 음식을 어떤 식으로 소비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카테고리별소비자버즈양

제일기획 소비자 의견 분석시스템인 SMA를 활용해 소비자 버즈를 살펴본 결과, 음식 관련 키워드 중에서 직접 요리하기 위한 레시피나 프랜차이즈 외식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전년 대비 큰 증가세를 보이지 않은 반면, ‘맛집’과 ‘먹방’에 대한 관심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람들이 맛집과 먹방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키워드를 통해 오늘날 소비자들이 음식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그 현상과 기저에 깔린 내면 심리를 알아봤다.

첫 번째 키워드 ‘맛집’, 소통을 위한 정보가 되다

맛집이라는 키워드는 외식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맛있는 식당’이라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생겨났지만, 소비자들은 점차 맛집을 사회관계적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다. 시간에 따른 키워드 검색량을 보면, 맛집 관련 키워드 검색량은 어느 지점에서 정점을 보이지 않고, 완만한 형태의 뉴스․날씨 관련 키워드 검색량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그에 비해 식사 준비라는 목적성을 가진 ‘레시피’ 관련 검색량은 오후 4시에 정점을 찍는 전혀 다른 패턴을 보인다. 이는 소비자들이 맛집을 한 끼 식사를 위한 목적성을 가진 정보가 아닌 뉴스나 날씨같이 일상적이며 지속적으로 탐색하는 정보로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소비자의시간대별

사람들이 뉴스를 검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위 사람들과 나를 연결해주는 ‘소통의 도구’로서의 사회적 가치 때문이다. 오늘날 맛집 역시 뉴스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요즘 가장 트렌디하고 인기 있는 식당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해 사람들과 소통에 대비하거나 나만 아는 맛집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키워드 ‘먹방’,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다

먹방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 요리를 하는 행위는 대리만족을 통한 심리적 배부름이 아닌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돼 심리적 즐거움을 위해 소비되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내용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특정 장면의 캡처 또는 ‘움짤’을 이용해 “oo지못미” 또는 “귀요미 움짤” 같은 유희성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먹방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나아가 소비자들의 전체 먹방 콘텐츠 소비량 중 소비자들이 생산하는 콘텐츠(47%) 비율이 미디어에서 발신하는 콘텐츠 비율(53%)과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정형화된 먹방 프로그램과 달리, 온라인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하정우 먹방’, ‘혜리 먹방’은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자들이 먹방이라는 오락 관점에서 재생산한 것이다.

먹방콘텐츠_수정

그와 함께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개인 온라인 방송의 BJ 먹방 관련 소비자 버즈를 살펴보면, 연관어 중 ‘여자 친구’, ‘몸매’, ‘얼굴’ 등 BJ의 일상과 관련된 신변잡기적인 내용이 실제 방송에서 나왔던 음식이나 방송 자체의 내용보다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는 먹방에 대한 관심이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예인에 대한 관심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먹방비제이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요리를 하는 일상적인 소재를 다수와 공유하거나 더 나아가 콘텐츠를 직접 생산함으로써 먹는 즐거움을 넘어 오락적 재미를 소비하고 있다. 즉 사람들은 뉴스를 찾듯 맛집을 검색하고 유희를 위해 먹방을 시청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에서 잠재의식이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고, 이러한 잠재의식이 의식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렇다면 맛집 검색과 먹방 시청에 영향을 미치는 기저 심리는 무엇일까?

 

I’m still hungry, 배보다 마음이 고픈 현대인

장기적인 경제 불황, 취업난을 비롯한 각종 사회 문제에서 비롯된 좌절감이 사회 전반에 걸쳐 퍼지고 있다는 기사는 벌써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힐링’, ‘작은 사치’, ‘취향 소비’와 같이 위안이 될 만한 키워드들이 유행처럼 스쳐가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실패가 거듭되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더 작은 선택에 대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결정․선택 장애’라는 말이 보편화됐다.

맛집, 작은 사치? No, 작은 성취!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사람들이 한 끼 메뉴를 선택할 때도 나타난다. 음식과 성취가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소비자들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맛집’에서 한 끼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안도하는 듯하다. 지난 1년 사이 소비자 버즈를 살펴보면, ‘맛집’과 ‘성취’를 함께 언급한 비율이 2015년 상반기 대비 2016년 상반기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맛집에 대한 버즈양 증가를 고려했을 때도 1.6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맛집과성취

포기할 것도 많은 세상,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이라도 성공적으로 해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오늘날 사람들은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보고, 나만의 맛집을 발굴하는 것 보다 모두에게 검증된 맛집을 찾고, 그렇게 선택한 밥 한 끼를 성공해내며 한 번의 작은 성취를 맛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먹방, 은밀하게 즐기다

어쩌면 먹방은 타인을 훔쳐보고자 하는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꿰뚫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먹방 관련 콘텐츠는 PC보다 모바일을 이용해 검색하는 경우가 많으며, 검색량의 32%가 프라이빗한 시간인 새벽(0~6시)에 발생하고 있다. 일반적 검색의 경우 15%만이 새벽 시간대에 이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먹방 소재의 콘텐츠 경우 모두가 자는 새벽 시간에 보는 비율이 두 배 이상 높은 것이다.

카테고리별피시

모바일검색량

밥을 먹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이기에, 타인의 이러한 행동을 관찰하는 것은 ‘훔쳐보기’의 속성을 지니며 일정 부분 관음적 성격을 지닌 은밀한 행위이다. 심리학 교수인 리언 래퍼포드에 따르면 식욕은 성욕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규제의 주요 대상이었다. 이는 날씬함을 선호하는 현재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해당하는 말인 듯하다. 먹방을 즐기는 소비자들의 심리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식욕이라는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함은 물론 타인의 먹는 행위를 혼자 훔쳐봄으로써 그들과의 친밀함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자 하는 자기 위안의 행동이라 짐작해본다.

 

Epilogue

종합해보면, 최근 음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급격한 관심 증가는 삶의 여유로 인해 ‘미식’을 즐기고자 하는 니즈가 아니라 현대인의 심리적 결핍과 억눌린 욕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허기’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포만감은 얼마 지속되지 못한다. “마음이 허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포만감을 불러오는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심리적 포만감을 충족시키지 못했기에 정서적 허기로 이들은 항상 굶주려있는 것이다.

모든 행동의 이면에는 숨어있는 감정이 있듯이, 최근 맛집과 먹방 등 음식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소비자들의 숨겨진 내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언 래퍼포드는 자신의 저서인 <음식의 심리학>에서 인간은 음식을 통해 자아를 개인적으로 구현하거나 공적으로 나타내려 하기 때문에 음식 소비라는 것이 개인적 성격인 동시에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재의 음식이 맛집․먹방으로 소비되는 것은 정보 습득과 유희라는 개인적 욕구 충족인 동시에 사회적 현상에 따른 정서적 허기를 채우기 위한 행동인 것이다. 결국 맛집과 먹방에 탐닉하는 우리의 모습은 마음이 고픈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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