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3. 14:00

1세대 오빠 부대, 2세대 온라인 커뮤니티가 특징이었던 팬덤 문화가 3세대에 이르러 SNS 계정을 팔로우하며 스타와 소통하더니, 이제 4세대에 진입했다. 팬덤 4.0 시대의 팬들은 단순한 추종자 입장에서 제품을 구매하고 향유하는 양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 창조자가 돼 기업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팬덤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팬덤의 진화는 곧 소비자의 진화

한때 ‘오빠부대’, ‘빠순이’ 등으로 불리며 조롱받았던 하위문화가 ‘팬덤(Fandom)’이란 이름의 문화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일한 관심사를 통해 연대감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나 그들의 문화적 활동을 팬덤이라 부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발아한 이 현상이 기업의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성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스타’와 ‘팬’이란 단어에 ‘기업’과 ‘소비자’란 단어를 대치어로 바꾸면 ‘기업 팬덤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유대 관계가 끈끈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 데는 물론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와 SNS라는 환경의 성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렇게 연대한 소비자들은 단순히 팬심을 소극적으로 표출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강한 로열티를 가진 소비자가 아니라 경영과 정보, 그리고 유통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매개자’이자 ‘콘텐츠 생산자’임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팬덤 또는 팬덤 문화의 확산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의해 탄생된 것이 아니라 ‘자발성’이란 소비자의 동력으로 잉태되고 성장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런 본질적 가치를 이해해야만 기업이 팬덤 문화를 올바르게 수용할 수 있어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는 ‘호모 콘수무스(Homo consumus)’로 변모해 왔다. 팬덤 문화는 스스로 원하는 상품을 직접 만들거나 제작 과정에 관여하는 능동적인 프로슈머를 비롯해 참여, 공유, 개방을 특징으로 하는 ‘라이프 3.0’ 시대의 소비자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바로 이런 소비자의 진화를 기업이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수용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팬덤, 마케팅에 관여하다

그렇다면 기업 팬덤 현상은 어떤 모습과 색깔을 보이고 있을까? 우선 코카콜라와 할리데이비슨 같은 기업의 성공 공통분모가 다름 아닌 오래된 팬덤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기업 팬덤 현상은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례로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공개하면서 일정액의 예약금을 받았다. 차량의 예상 인도 시점이 2017년 말인 점을 감안하면, 아파트의 선분양 후입주와 같은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불과 2주 만에 전 세계에서 약 32만여 명의 예약자를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제품 개발을 위한 자금 모금은 물론 신제품 판매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는 테슬라에 대한 소비자의 팬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 테슬라의 팬들이 만든 광고 영상 Ⓒyoutube.com by everdream 

더욱 놀라운 사실은 테슬라의 극성스런(?) 팬들이 자발적으로 광고 영상을 직접 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기업의 입장에서 팬덤 문화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테슬라의 사례가 팬들이 기업의 마케팅에 참여한 것이라면, 팬심이 기업 활동의 전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케이스가 바로 샤오미다.

 

팬들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중국에서 스마트폰 신화를 써내려간 샤오미는 팬모임 ‘미펀(米粉)’의 집단지성을 경영 전반에 반영하며 오늘의 성공과 입지를 다진 기업이다. 그 과정에서 ‘대륙의 실수’가 양산됐고, ‘중국판 애플’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현재 샤오미는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위력을 잃어가고 있지만, ‘소프트한 사물인터넷 스마트홈’을 지향하며 다양한 스마트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새로운 신화를 추구하고 있다.

샤오미는 자사의 기술을 소비자와 공유하면서, 충성도 높은 팬들의 집단지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해서 대륙 곳곳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미펀들로 하여금 “이 제품은 내가 만들었어!”란 생각을 품게 만들고, 그런 팬심이 다시 충성도로 다져지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 팬들의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에 적극 반영하는 샤오미는 매해 팬들을 위한 페스티벌을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 mi.com

‘전기차’라는 제품의 혁신성과 ‘중저가와 대중적 가성비’라는 신선한 전략이 테슬라와 샤오미에 두터운 팬층이 형성된 원인이라면, ‘재미’라는 요소는 노포였던 레고에 싱싱한 젊음을 불어넣은 결정적 한 방이었다.

레고의 팬모임인 ‘어른들의 판타지’는 레고로 만든 창의적 작품과 제작 방법을 공유함은 물론 제작한 동영상을 생중계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팬클럽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들이 스스로 재미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즉 과거에는 ‘입소문 마케팅’에 머물렀던 팬심이 이제는 자발적 마케팅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 레고의 팬들은 레고를 이용해 만든 작품을 공유한다 Ⓒyoutube.com by akiyuky

 

새롭게, 재미있게, 아름답게

국내에서는 기업 팬덤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을까? 배달 애플리케이션 업체인 배달의민족이 흑자를 기록하자, 팬클럽 ‘배짱이’가 상자에 흙을 담고 자를 꽂은 화분을 배달의민족 사무실로 보내왔다. ‘흙’과 ‘자’로 흑자를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던 것이다. 배달의민족은 그런 팬들의 의견을 경영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동아오츠카 역시 자사 제품 오로나민C와 관련된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올린 소비자들 가운데 SNS 활동량이 많은 팬들에게 유머러스한 미션을 주고 시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 배달의민족 팬클럽인 배짱이의 ‘한삽 프로젝트’ Ⓒ배달의민족

 

자, 지금까지 나열된 기업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요약하자면 그건 바로 ‘신선함’과 ‘재미’, 그리고 ‘디자인’이다. 이 세 가지 요소 모두는 인간의 속성과 직결돼 있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보이기 마련이고, 스스로 재미를 느껴야만 지속성을 유지하며, 플라톤의 지적처럼 아름다움(Kalos)을 추구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따라서 기업은 기술이라는 하드웨어에 철학과 미학, 예술 등의 인문학을 덧입혀야만 한다. 자생적인 팬덤을 유도하기 위해 기업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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