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7. 5
글 이향은(성신여자대학교 서비스디자인공학과 교수)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영화 <나홀로 집에>를 기억하는가. 가족이 모두 도시를 떠나고 혼자 남겨지게 된 걸 알게 된 일곱 살 꼬마 주인공 케빈은 혼자만의 시간에 적응하며 당차게 3일을 버텨 낸다. 심지어 빈집털이 도둑을 상대하면서까지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에 혼자 집을 지키는 솔로들이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1990년대 추억의 크리스마스 영화로 자리 잡았던 영화 <나홀로 집에>는 2017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요한 트렌드 중 하나가 됐다.
혼족 대세론
각종 통계 자료가 우리나라 1인 가구의 증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가족의 해체를 의미한다. 1인 가구가 확산되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분산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개체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이유로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유대감과 존재감의 결핍을 겪게 된다. 가장 최소한의 공동체인 가족이 해체되고 분산되면서 이들은 자유롭지만 외롭다. ‘독거노인’처럼 ‘독거청년’, ‘독거처자’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려하는 것만큼 우울하지만은 않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싱글에 대한 시각과 만족에 대한 기준이 바뀌어가고 있다. 증가하는 1인 가구의 양상은 개체화된 파편으로서의 고달픈 싱글이 아닌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혼족’이 늘고 있는 추세다. 홀로 외롭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더 편하고 즐겁게 온전히 누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한 ‘즐거운 왕따’들을 주목해야 한다.
혼족 문화의 확산
요리 프로그램 일색이던 방송가에 셰프 전성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어느샌가 1인 가구 엿보기 프로그램들이 속속 들어찼다. <나 혼자 산다>를 필두로 ‘미운 우리 새끼’, ‘혼술남녀’, ‘내 귀의 캔디’ 등 TV를 통해 보여지는 각계각층 혼족들의 모습은 혼족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많은 프로그램에서 증명하듯 독립성에 대한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혼족들은 스스로 안식처를 찾아 나섰다. 외로움을 잊기 위한 집중과 몰입은 심취의 매력을 넘어 오타쿠 문화로 발전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너무도 각박한 현대 사회를 버텨 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해맑던 어린 시절은 또 다른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오타쿠까지 가지 않더라도 주변에 속속 생기는 만화까페는 혼족들을 흡수하기에 안성맞춤 공간이다. 좁은 집에서 나와 쾌적하고 편안한 공간에 적은 돈으로 오래 머물 수 있는 가성비까지 갖춰 혼족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 최근 떠오르는 핫플레이스 만화카페 ‘청춘문화싸롱’. 요즘 만화카페는 복합 문화 공간 역할을 한다. Ⓒ https://ccmhsalon.modoo.at
혼족을 겨냥한 시장 확대
혼족의 증가는 변해 가는 대한민국 사회의 종속적 결과이다. 취업난과 고령화, 비혼 등 혼족이 된 배경이야 어쩔 수 없었을지라도 사색의 즐거움을 깨달은 혼족들은 혼자라서 더 좋은 삶을 개척하기에 나섰다. 그 누구보다 효율성이 중요한 이들은 편의점을 애용하고 렌탈을 적극 활용한다.
혼밥 혼술은 기본,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혼자서도 떡볶이와 순대와 수제튀김을 모두 먹을 수 있는 1인 메뉴가 구성되었는가 하면 1리터 단위로 판매하는 막걸리를 ‘잔’ 단위로 판매하는 술집도 생겼다.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족’을 위한 1인 좌석, 혼자 여행을 가는 ‘혼행’, 심지어 혼자 캠핑을 하는 ‘혼캠족’을 위한 1인 여행 상품도 쏟아져 나온다.
혼족들을 위해 모든 것이 소분되고, 간편해지고, 개인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은품으로 반찬 배달 서비스 쿠폰이 제공되고, 편의점 도시락을 무료로 제공하는가 하면 명절 음식도 간편식으로 판매되고, 금융계에는 오피스텔·원룸 주택 마련 비용 지원 상품이 생겨나는 등 천대받던 혼족을 겨냥한 맞춤 상품들이 혼족 대세론을 실감케 한다.
▲ 켄싱턴호텔 여의도가 출시한 ‘싱글 모어 댄 투게더(Single more than Together)’ 패키지처럼 최근 혼족을 위한 맞춤형 패키지를 출시하는 호텔이 늘고 있다. Ⓒkensingtonyoido.co.kr
혼족 중에서도 구매력이 있는 골드 싱글 세그먼트를 위한 프리미엄 마케팅도 생겨났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베이커리 숍에는 1인을 위한 제품 코너가 별도로 구성돼 있는데, 기존 제품을 커팅해 소포장하던 소극적 방식이 아닌 미니어처 사이즈로 완제품을 제작해 완벽한 혼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도록 했다. 많은 호텔이 1인 객실 패키지를 앞다퉈 내놓고 있고, 금융계에서는 1인 가족 맞춤형 적금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다양한 콘텐츠
진정한 혼족의 반열에 오르고 나면 완벽한 혼자가 아닌,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여지와 편이성(便易性)을 남겨 둔다. 페이스북의 친구는 나날이 늘고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는 남부럽지 않다 보니 SNS상에서의 풍부한 콘텐츠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득 채워 준다. 현실에서 인맥은 부실하기 짝이 없어도 원하면 언제든 함께 즐길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 혼자인 사람들을 모으는 다양한 앱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심하고 무료한 시간, 취미생활이나 각종 액티비티에 참여할 수 있게 장을 열어 주는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서비스를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사람들과 부대끼며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혼자 사는 이들에게 하루 만에 세탁을 해다 주는 세탁 수거 배달 앱, 근처 혼밥 혼술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안내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룸메이트를 매칭시켜 주는 앱 등 스마트폰만 있으면 나날이 등장하는 신규 콘텐츠를 다 이용하기에도 벅차다.
▲ 프립(Frip)에서 제공했던 홍천 스탠드업 패들보드 투어 서프오션. 요즘은 각종 액티비티를 제공하는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 서비스가 부상 중이다. Ⓒfrip.co.kr
독거 세대의 진화
이미 오랜 기간 지속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체적 의식은 붕괴된 지 오래다. 시쳇말로 ‘멘붕’이 아니라 ‘공붕(公崩)’의 사회다. 팽배해진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구성원들은 개체화되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1인 가구의 확산 속에서 혼족 문화의 진화 양상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인간적 유대의 결핍은 우울증을 초래한다. 1인 가구에 대한 시장이 커짐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은 활발하지만, 무엇보다 사회문화적인 변화를 초래할 혼족들의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측면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혼족 마케팅은 봇물이지만 그들의 정서와 심리를 어루만져 줄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 기업들이 개별화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1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1인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 최대한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선을 지키는 것은 센스다.
혼족, 이들은 현재 구매력이 탄탄하거나 여유 자금이 풍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미래를 준비해 가는 이들이 지금부터 장기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인구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 가며 4인 가족이 아닌 1인 가족이 대표적인 가구가 되는 근미래에 시장 점유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 점유율일지 모른다. 자존감을 잃어 가는 이 사회에서 스스로 자존감 회복을 위해 자신이 자기를 대접하는 혼족. 이왕이면 멋지고 우아하게, 그리고 진짜 대접해 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혼족 마케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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