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권’, 집을 고르는 새로운 기준 | 제일기획 블로그
2018.10.05. 10:00

집을 고르는 기준이 더 스마트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집을 고를 때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수단이 얼마나 가까운가를 따졌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학군’을 중심으로 따졌다. 이 두 가지 요인은 계층과 연령을 떠나 주거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최근 집 고르는 기준에 변화가 생겼다. 이른바 ‘다세권’이 대세로 자리 잡는 분위기이다.

소확행을 위한 주거 환경

이제는 집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어야 하고, 편의점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끼니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햄버거 체인도 있어야 하고, 가성비 좋은 헬스·뷰티 스토어도 있어야 한다. 내 건강을 지켜 줄 약국과 병원도 있으면 좋겠고, 대형 쇼핑몰이 근처에 있다면 금상첨화다. 최근 2030세대가 빠르게 유통시키고 있는 신조어들이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를 압축하고 있다. ‘스세권(스타벅스)’, ‘편세권(편의점)’, ‘맥세권(맥도날드)’, ‘올세권(올리브영)’, ‘약세권(약국)’…. 입에도 착 달라붙고 새로운 문화적 기호도 잘 녹여내고 있다.

집이 몇 평인지, 남향인지, 얼마나 조용한지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 집의 개념이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동네와 커뮤니티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변화이다. 여기에는 가성비를 금과옥조로 삼는 2030세대의 철학이 배경에 깔려 있다. 조금 좁은 집,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쯤은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주거 환경은 양보할 수 없다. 혼밥을 즐기고, 이직을 위해 영어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피부 관리를 위해 편리한 소비가 가능한, 그런 스마트한 주거 환경이 필요해진 것이다.

 

새롭게 정립된 공간 개념

40대의 시선으로도 2030세대의 이런 주거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합리적이다. 40대 주부들은 맘카페 회원들이 자유롭게 모여 육아를 공유하고 필요한 소비를 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이 절실하다. 쇼핑·여가·교육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올인빌(All in Vill)’이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한 영화 감상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는 주거 여건이 필요하다.

대세가 된 1인 가구의 당사자들은 홀로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홈 인테리어가 필수적이다. 혼술을 즐기거나 지인을 초대해 소소한 파티를 열 수 있는 ‘홈바’ 콘셉트이면 더할 나위 없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주인공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가끔씩 엄습하는 고립감은 철처히 차단해야 한다. 이럴 때는 새롭게 정립된 공간 개념을 소환해 동네 마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힐링 카페에서 새로 장만한 에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맛집을 찾아 찍은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야 한다. 고립감을 막아줄 ‘절친’이자 ‘자식’인 애완견을 산책시키고, 가끔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눈인사쯤은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산책하는 길에 스타벅스나 맥도날드가 있으면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어쩐지 마음이 편해진다. ‘나도 안전하고 쾌적한 동네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 유목민의 시대

‘다세권’이 집을 고르는 새로운 기준이 되면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 부동산 시장이다. 올인빌이 새로운 주거 공간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생활 인프라를 갖춘 곳이 입지로 선정되고, 또 기존의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스타벅스가 들어서면서 죽은 건물도 살리고 있다. 스타벅스가 입점한 건물 인근의 임대인과 중개인은 기대 심리를 한껏 올린다. 입점 건물뿐 아니라 주변 건물도 동반 가치 상승을 경험한다. 동네 마실의 거점이어서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거 공간과 환경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은 ‘스마트 유목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집 안과 집 밖의 경계를 과감히 허물고, 새로운 생활 양식을 창출해 가는 신인류가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스마트한 소비자이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계획과 관리에 능숙한 합리적 주체이다. 때로는 욜로와 소확행에 빠진 영락없는 ‘호모 루덴스’이지만, 새로움을 창출하고 이를 나누고 공감하는 새로운 인간형이다.

그러니 이제는 집 주위에 어떤 세권을 만들 것인지도 도시 계획이나 주거 환경 개선의 고려요소가 돼야 한다. 집 밖에서도 삶의 의미와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주거 공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기업은 스마트 유목민들의 소비에 숨어 있는 가치와 의미를 적극 찾아내야 한다.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이 신인류의 인생 탐사를 도울 수 있는 방안과 아이템을 책임 있게 발굴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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