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다 | 제일기획 블로그
2019.04.05. 10:48

온라인으로 고객을 빼앗긴 오프라인 매장은 급박한 생존의 위기 속에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에선 경험할 수 없는 매력을 제공할 때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 변화의 흐름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는 오프라인 공간의 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총체적 체험

침대 브랜드 시몬스가 3년 동안 공들여서 만든 ‘시몬스 테라스’는 침대를 파는 공간이라기 보다는 잠자리와 관련된 모든 경험을 최적화시켜서 제공해 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수면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 주는 일종의 복합 쇼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헤리티지 앨리’라는 공간에서는 전문 큐레이터가 150년간 만들어 온 시몬스 침대의 역사가 담긴 브랜드 뮤지엄에 대한 투어를 진행해 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방문객들은 시몬스 침대의 역사와 제조 과정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호텔’이라고 불리는 공간에서는 침대 매트리스 속 소재까지 방문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흥미로운 공간들을 투어하다 잠시 쉬고 싶다면, 내부에 마련된 커피숍에 들려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로움을 누리면 된다. 건물 외부에 나가면 ‘팜가든’이란 전원 공간이 존재한다. 이곳에는 수면에 도움이 되는 식물들이 의도적으로 심어져 있고, 방문객들이 이런 식물들에서 나는 기분 좋은 향을 자연스럽게 맡을 수 있도록 돼 있다.


Ⓒ 시몬스 테라스(simmons.co.kr)

이런 과정을 통해 시몬스의 침대 철학에 동의하게 된 고객들이 실제 침대를 구매하고 싶다면, 지하에 위치한 ‘테라스’라는 공간에 방문해서 시몬스 침대와 메트리스를 구매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고객의 수면 습관을 체크해 매트리스를 추천해 주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결국 시몬스 테라스에서는 침대만 파는 것이 아니라, ‘수면’과 관련된 모든 라이프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체험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간 변주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

시몬스 테라스처럼 제품 위주가 아니라 경험 위주의 공간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다. 해방촌에 있는 ‘론드리 프로젝트’는 일견 카페처럼 보이지만, 안쪽에 10여 대의 세탁기가 있는 세탁소다. 세탁소가 위치한 용산 이태원, 해방촌은 주로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 단기 거주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은 세탁기 같은 무겁고, 집에 들이기에 사이즈가 큰 가전제품 구매를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 외국 문화에서는 코인 세탁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곳에 코인 세탁소를 열었을 때 큰 수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론드리 프로젝트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코인 세탁소를 이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한 경험을 개선해 주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동네 코인 세탁소에서 이불 빨래를 하기 위해 방문한 경험이 있다면, 막상 세탁을 위해 기다려야 하는 4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막막해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갔다 오기에는 부담스럽고, 근처 카페에 가자니 다시 돌아와서 건조기로 빨래를 옮겨야 하기에 여러 가지로 고민스럽다.


Ⓒ 론드리 프로젝트(laundryproject.co.kr)

그런데 코인 세탁방 안에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카페가 존재한다면? 이 모든 불편한 경험이 한번에 해결될 것이다. 론드리 프로젝트에 가면, 빨래를 돌리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며 이웃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공간에 변주를 줘 색다른 고객 경험을 선사한 좋은 케이스라고 하겠다.

 

제품에서 경험으로 이동하는 무게중심

제품보다는 제공하는 경험에 빙점을 찍는 공간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한국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일본 하라주쿠에 위치한 뉴발란스 매장은 신발이나 운동복이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팔고 있다. 다양한 잡화를 파는 무지(Muji)와 코에(koé) 같은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은 매장이 아니라, 호텔을 지어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렉서스는 자동차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열어 고객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선글라스를 주로 판매하는 젠틀 몬스터처럼 찾기 힘든 비밀스러운 곳에 매장을 열기 시작한 브랜드들도 늘어났다.
과거 기업이 운영하는 공간들은 제품이 중심이 돼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는 공간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공간은 제품을 팔기 위한 하나의 배경에 머물렀다. 디지털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공간은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제 해당 오프라인 공간에서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고, 판매는 온라인으로 만들어 내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코에 호텔(hotelkoe.com)

앞서 이야기한 시몬스가 운영하는 복합 공간에 방문해서 최적의 경험을 하게 된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시몬스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이러한 생각이 반드시 해당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판매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시몬스가 운영하는 온라인숍에 들러 자신들이 살펴본 매트리스 가격들을 확인하고 집으로 배달시키거나, 스마트폰을 통해 집 근처에 위치한 매장을 찾아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시몬스 테라스는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끝없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

제품 위주의 공간을 경험 위주의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디지털만이 아니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들의 ‘소유보다는 경험을 소비하는 경향’ 역시 다양한 오프라인 공간들이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 세대들은 물건을 사는 것보다는 다채로운 경험을 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쓴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TV에 나오는 유명 쉐프가 운영하는 ‘인스타워시(Instaworthy)’한 공간에 놀러가기도 하며, 연남동과 홍대에 새롭게 생긴 디자이너 호텔에 친구들과 호캉스를 즐기러 가기도 한다.
이제 기업은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 때 제품의 기능과 편익만을 설명해 주는 공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소비자들은 이제 필요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지갑을 연다. 서비스나 제품을 통해 재미와 행복을 느끼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만 돈이 아깝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들 세대들에게 공간에 방문했을 때 제품을 넘어서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해 줘야만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한 공간에서 한 가지만 기대하지 않는다. 특히 소비를 주도하는 Z세대는 의외의 조합, 다양한 경험을 누리고 싶어 한다. 디지털 시대, 소비자들이 다시 오프라인 공간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끝내 다채로운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정교한 고객 경험 설계가 중요하게 된 것은 바로 우리 일상 생활에 디지털이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전통적인 소비자들이 아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상관없이 그들에게 최적의 경험을 주는 경로로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끝없이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이 지금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필자 이승윤은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마케팅 분과 교수이다. 비영리 연구·학술 단체인 디지털마케팅연구소의 디렉터로 있으면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러 권의 저서가 있으며, 최근 새로운 고객 경험에 대한 풍부한 인사이트가 담긴 『공간은 경험이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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