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9. 7
최지혜(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언택트(untact) 기술이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 음식점에서 점원이 주문을 받지 않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패스트푸드점 및 소규모 식당들이 키오스크 주문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무인 매장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유통업계 중 편의점은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무인 점포 확장에 적극적인 편이다. 세븐일레븐은 2018년 5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4개 매장을 무인 점포로 바꿨으며, GS25와 이마트24도 무인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점원이 없거나 있더라도 구매 과정에 별달리 관여하지 않는 무인 점포는 이동이 가능한 소형 매장으로 운용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무인 편의점 ‘빙고박스’가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17년 시작한 빙고박스는 현재까지 500개 이상의 매장을 출점하며 해외 진출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빙고박스는 15㎡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도시의 틈새 공간이나 1인 가구가 많이 사는 소규모 주거단지에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중국의 무인 편의점 빙고박스 Ⓒ bingobox.com(홈페이지 캡처)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로봇이 서비스하는 식당인 허마셴성 등 다양한 무인 점포를 통해 실험을 벌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무인 점포가 어느 정도 보편화된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미국에서는 아마존고의 확장세를 주목할 만하다. 컴퓨터 비전과 딥러닝 기술을 바탕으로 셀프 체크아웃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아마존고는 2021년까지 무인 매장을 최대 3000개로 늘릴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아마존고의 공세에 맞서 기존 유통기업들의 무인 점포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 크로거는 소비자들이 직접 스캐너를 들고 계산하고 나가는 ‘스캔, 백, 고(Scan, Bag, Go)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다.
▲ Caper의 스마트 카트
또한 스마트 카트를 개발한 미국의 스타트업 케이퍼는 매장 전체를 비추는 카메라 대신 카트에 카메라 및 무게 센서와 디스플레이를 장착해서 제품과 관련된 정보를 제안한다. 계산대를 통과하지 않아도 카트 내에서 바로 결제가 가능해 대형 유통매장에서는 카트가 소비자의 네비게이션 역할을 할 수 있다.
언택트 기술은 유통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추세다. 달콤커피는 로봇 바리스타 ‘비트’를 개발해 주문에서 제조까지 사람이 필요 없는 무인 카페를 선보였다. 패션업계에서도 무인 매장 바람이 거세다. 랩101은 국내 최초 무인으로 24시간 운영되는 패션 매장을 오픈했다. 매장 내에서 원하는 옷을 입어 보고 매장에 비치된 태블릿 PC를 통해 결제할 수 있다.
생활서비스 업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Laundrygo)는 스마트 빨래수거함 ‘런드넷’을 통해 무인 세탁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마트키로 런드렛을 열고 세탁물을 넣어 두면 24시간 내 빨래를 완료해 수거함으로 가져다 준다.
▲ 홍대 앞에 무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패션 브랜드 랩101
Ⓒ lab-101.com
언택트 기술은 무인 항공기의 ‘무인(unmanned)’과 자율 주행 자동차의 ‘셀프(self)’, 그리고 사람 대신 로봇이 작동하는 공장의 ‘자동화(automation)’ 등의 복잡한 개념을 포괄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핵심은 ‘무인(無人)’이다. 인간 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자발적 무접촉을 선택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어렸을 때부터 PC 및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전화보다 카카오톡이 더 편하고, 대면커뮤니케이션보다 SNS로 하는 소통이 더 익숙한 소비자다. 점원이 다가와서 베푸는 친절이 나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불편한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비단 밀레니얼 세대뿐 아니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타인과의 대면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의 태도 변화를 낳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언택트 기술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에게 무인(無人)은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자 대면 관계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전략인 셈이다.
비용 측면에서는 인건비 절감이 무인 매장의 큰 장점으로 꼽힌다. 많은 업무가 기기로 대체되면서 매장 내 인원을 줄이거나 기술로 완전히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의 무인 호텔 ‘페이주부커 호텔’의 책임자 왕춴은 “인공지능 기반으로 고객의 시간을 절약하고 호텔 직원들은 단순 반복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기술로 대체 불가능한 영역에서 더 정교한 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알리바바가 만든 무인 호텔 ‘페이주부커 호텔(flyzoo hotel)’
지난 3월, 동대문 DDP에 이니스프리 매장이 문을 열었다. 많은 손님이 매장을 오고 가지만 직원은 서 있기만 할 뿐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매장 직원의 도움 없이 혼자 쇼핑할 수 있는 무인 매장이기 때문이다. 피부 타입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 주는 뷰티톡미러, 화면에 뜨는 질문에 답을 하면 내 피부에 맞는 최적의 마스크팩을 찾아주는 시트팩 키오스크 등 일반 매장에서 직원들이 담당했던 서비스가 기계로 대체되면서 매장 직원과 한마디 하지 않아도 쇼핑부터 결제까지 혼자 해결할 수 있다.
이니스프리는 매장 직원의 수를 줄이되, 완전한 무인 매장을 운영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직원이 필요 없는 매장이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요구에 제대로 응대할 수 있는 전문가는 기기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언택트 시대에는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곳은 기술로 대체하고, 대면 접촉이 필요한 곳에는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법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가 불편하지 않되 필요할 때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무언(無言)의 친절함이 필요한 시대다.
* 최지혜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트렌드 코리아』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신제품 수용에 관한 행태 및 제품과 사용자 간 관계, 소비자 처분 행동에 관한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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