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6. 1
글 김찬 프로 비즈니스 9팀
기존의 툴을 답습한다고 해서 새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력적인 모델과 참신한 기법을 활용해 바이럴 영상의 진화를 보여준 ‘에버랜드 2015 로맨틱 일루미네이션’ 캠페인을 소개한다.
26m 초대형 트리의 탄생
▲ 초대형 트리를 선보인 2015 에버랜드 로맨틱 일루미네이션
로맨틱 일루미네이션은 2013년부터 에버랜드가 선보인 대표적인 빛 축제. 에버랜드 로맨틱 일루미네이션에 빅뉴스가 생겼다. 바로 26m 초대형 트리가 들어서게 된 것. 제일기획 본사 8층 높이이니 그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화려한 빛이 펼쳐진 포시즌스 가든 위에 우뚝 서 있을 초대형 트리를 상상하니, 이 겨울 축제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알리느냐였고, 특히 사람들을 어떻게 ‘용인시 처인구 전대리’까지 오게 만드느냐가 큰 숙제였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몰리고 인증샷을 남기는 서울광장 트리나 뉴욕 록펠러센터의 대형 트리와는 다른 문제였다. 거기에다가 더 큰 미션을 받게 된다. 이것 또한 요즘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지만, 한정된 예산 대비 효율적인 캠페인이 돼야 한다는 미션이었다. ‘로맨틱 타워 트리(이하 RTT)’라 명명된 26m 초대형 트리의 바닥 공사가 시작될 즈음, RTT를 주인공으로 한 로맨틱 일루미네이션의 이슈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개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시작됐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시행착오
고민의 출발은 ‘하던 대로 해서는 안 되겠다’였다. 말하자면 입이 아프고 듣자면 귀를 닫고 싶은 얘기지만, 새롭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타깃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고 그런 낯선 경험을 확산시키자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자주 보고 참고하는 해외 사례, 성공 캠페인들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막막하고 어렵지만 일단 시작을 하니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트리 내부에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대형 다이아몬드를 전시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가족이나 연인들의 모습을 3D프린팅을 하고 이를 트리 장식물인 오나먼트로 만들어서 RTT에 걸어둬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RTT 내부에서 프라이빗한 콘서트를 열어볼까란 생각도 해봤고, 급기야는 이 26m짜리 대형구조물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매직쇼를 연출하고 생중계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안됐다.
이 모든 아이디어는 예산 안에서 실행 가능한지 타당성 여부도 검토를 마친 상황이었고, 특히 매직쇼는 국내 유명 마술사가 관심을 가지면서 카메라 속임수가 아닌 진짜 사라지는 마술을 국내 최초로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까지 보였다(그 방법은 끝내 영업 비밀이란 이유로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의 제안과 선별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그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었다. 우리가 고심해서 제안한 아이디어들은 분명 새롭게 보였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과연 원하는 성과와 효율을 얻을 수 있는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우연 아닌 인연, 응답하라 시리즈
다시 한 번 우리의 목표와 브랜드를 돌아보는 상황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사내가 있었다.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묘한 매력의 배우, <응답하라 1988>의 정환 역(役) 류준열이었다. 극중에서 류준열은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츤데레’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대중에게는 낯선 배우이지만 온라인상에는 ‘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의 줄임말인 ‘어남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청자들의 관심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 로맨틱 일루미네이션 캠페인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대표 배우들을 광고 모델로 선정, 계보를 만들었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뜰 것 같다’는 감을 받았고, <응답하라 1988> 방영 2주차 만에 류준열의 버즈량이 <그녀는 예뻤다>로 대세가 된 박서준을 넘어선 것을 Cheil SMA를 통해 확인했다. 게다가 로맨틱 일루미네이션의 초대 광고 모델이 <응답하라 1994>의 정우였고, 그 다음 해인 2014년 광고 모델 역시 응사 시리즈의 칠봉이, 유연석이었기 때문에 로맨틱 일루미네이션과 응답하라 시리즈의 계보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앞선 캠페인에서 만들어놓은 겨울 데이트의 대표 코스라는 로맨틱 일루미네이션의 자산을 이어받으며 캠페인의 연속성을 살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고, 류준열 캐릭터를 활용하면서 RTT를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로 보여줄 수 있는 바이럴 영상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었다. 제안부터 촬영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연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에버랜드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던 드라마와 배우였던 것이다.
5초를 이기는 법, 그리고 끝까지 보게 하는 법
아이데이션 과정도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고, 클라이언트 또한 신뢰를 줬다. 남은 일은 우리가 이 캠페인을 어떻게 짜임새 있게 만드느냐의 과정이었다. 언제인가부터 바이럴 영상의 성공 여부는 영상 초반에 주목도를 높이고 끝까지 볼 수 있게 만드는 요소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지루한 영상을 잠시라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작년 칸 국제광고제 필름 부문 그랑프리를 탄 GEICO의 ‘Unskippable’ 영상이 이런 트렌드와 유튜브라는 매체 특성을 활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드라마의 등장인물 소개 기법을 차용한 바이럴 영상의 첫 장면
하지만 우리가 준비하는 바이럴 영상의 특성상 시간이 긴 시나리오는 불가피했다. 또한 류준열의 ‘츤츤한’ 프러포즈를 줄거리로 영상을 만든다면 그의 팬들은 어떻게라도 찾아서 보겠지만, 그의 매력을 아직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을 위해 약간의 장치를 만들어봤다. 첫 번째는 드라마의 등장인물 소개 기법을 차용해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초반을 버틸 수 있게 했다. 우리 타깃들은 대세 류준열의 새로운 드라마가 나오는지 혹은 혜리가 아닌 다른 여자 배우를 의아해하면서 스킵 버튼을 보류했다.
▲ 광고업계에서 처음 시도된 공약 이벤트는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초반 시선을 잡아두는 데 성공했다면 끝에는 깜짝 영상을 준비했다. 페이스북 영상 조회수가 200만 뷰를 넘기게 되면 류준열이 에버랜드로 직접 찾아와 영상을 응원해준 팬들과 만나겠다는 이른바 공약 이벤트였다. 영상 말미에 스토리상의 류준열이 아닌 모델 류준열로서 직접, 그리고 담백하게 공약을 하는 히든 트랙 같은 형식이었다. 보통 영화에서는 관객수로, 드라마에서는 시청률로 공약 이벤트를 걸어왔는데 광고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바이럴 영상이 만들어지고 에버랜드 페이스북에 업로드되자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업로드 후 이틀 만에 45만 뷰라는 놀라운 확산 속도를 보여줬고, 매체 광고비를 쓰기도 전이었으니 성공 캠페인에서 항상 언급되는 ‘자발적 확산’이 시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약 이벤트를 발견한 타깃들은 류준열과 만나기 위해 본인이 에버랜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 류준열과 만나고 싶은 이유를 달기 시작했다. 마치 장문의 자기소개서를 보는 듯한 댓글들이 셀 수 없이 달리기 시작했고, 당첨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을 동원해 덧글, 좋아요를 올리거나 업로드 이후로 매일 댓글을 다는 성실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댓글로 이벤트에 참여한 당첨자를 추첨하기에도 힘든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줬고, 내용면에서도 기존 이벤트 참여도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었다. 댓글 수가 이렇게 많았던 영상은 어떤 브랜드를 막론하고 전무한 것으로 생각된다. 몇 해 전부터 바이럴 영상의 성공 여부를 조회수라는 양적인 수치로만 판단했지만, 이번 영상은 조회수뿐만 아니라 댓글이라는 질적인 측면의 성과도 함께 가져왔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앞으로는 바이럴 영상에 대한 평가를 단순 조회수가 아닌 정성을 보여주는 측면을 포함한 다각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효율은 효율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작된다
아이디어 제안에서 촬영, 그리고 업로드 후 좋은 반응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2~3주 남짓한 시일이 걸렸고 이는 제일기획과 에버랜드, 모델, 그리고 협업을 한 빈폴까지 마치 한 팀처럼 유기적인 팀워크를 기반으로 확신이 섰을 때 망설이지 않는 제안과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매체 환경과 광고 시장 속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마케팅적 접근과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지만, 이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한 가지 명확해진 사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의사결정 과정은 빠르고 간결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뛰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라 하지 않았던가.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그 속에서 우리의 역할은 다양한 대안 중 가장 확실한 대안을 가지고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이 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번 캠페인에서는 클라이언트와 모델, 그리고 이종 브랜드와의 결합까지 이끌어내는 성과도 있었다.
▲ (좌)류준열을 모델로 기용해 진행한 빈폴의 화보 촬영, (우)모델이 어떤 옷을 입을지에 대해서도 빈폴과 공유했다.
빈폴이 레트로 기획 상품을 만들고 류준열을 모델로 기용해서 PPL 및 화보 촬영을 진행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협업을 제안했고, 빈폴도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같은 시기에 같은 모델을 활용하면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캠페인의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은 시기였지만 서로 간 의사를 확인하는 데까지 단 하루면 충분했다. 모델의 착장 의상과 제작물도 공유하면서 시너지를 일으켰다.
이번 캠페인의 구체적인 예산을 언급하기는 어려우나 그 안에서 이종 브랜드와의 협업, 대(大)자 같은 소(小) 모델비로 빅모델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캠페인의 양적 성과와 함께 별도의 예산을 쓰지 않고도 현실적인 이벤트를 만들어내면서 질적 성과까지 알찬 구성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 업계의 화두에 자주 오르는 ‘새로움’에 대한 갈증도 오히려 브랜드의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과 바이럴 영상이라는 이제는 고전이 돼버린 툴을 답습한다고 해서 새롭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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