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1. 14:00

요즘 광고 시장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이 “이제 전통 미디어보다 디지털 미디어가 우위를 점하게 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우리는 ‘달의 뒷면’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토대로, 전통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의 관계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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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대세론’은 상식인가?

최근 국내 광고 시장의 흐름을 보면 하나의 ‘상식’이 통용되고 있다. 다수의 통계 수치가 전통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광고비 추이는 답보 상태임을, 모바일 등 뉴미디어를 토대로 한 광고비 추이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속적인 저성장이 관측되는 상황에서 ‘TV로 대표되는 전통 미디어는 황혼기를, 모바일을 필두로 한 디지털 미디어는 여명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요즘 광고 시장을 바라보는 ‘상식’이다.

국내 시장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은 2016년 전 세계 광고 시장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됐다고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첫째, 젊은 층의 광고 이용자들이 예상보다 다소 빨리 TV에서 멀어진다. 둘째, 이에 반해 모바일 광고의 급성장에 힘입어 디지털 광고 시장은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셋째, 2017년에는 인터넷이 TV를 제치고 세계 최대 광고 미디어로 부상할 것이다. 이런 시장 현황과 예측을 보면, 이른바 ‘디지털 대세론’이 힘을 얻기에 충분하다. 현장에서도 클라이언트들이 전통 미디어보다 디지털 미디어를 선호하는 경향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을 철석같이 믿어도 되는 것일까?

다시 월스트리트저널의 전망을 보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통 미디어의 퇴조 원인으로 ‘젊은 층의 때 이른 TV 이탈’을 꼽았다. TV가 웹과 앱에 그들의 시선을 뺏긴 건 맞다. 그렇다면 소비 능력이 큰 노년층의 증가는 외면해도 좋은 현상일까? 특히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의 경우에 말이다. 이 문제를 지엽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의문 제기는 어떤가? 전통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를 라이벌로 보는 시각에는 문제가 없는 걸까? FC 바르셀로나와 LA 다저스를 라이벌이라고 부를 수 없듯, 전통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가 라이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관심 없는 디지털 브랜드

분명한 사실은 전통 미디어가 주춤하는 사이 디지털 미디어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일기획의 총광고비 분석에 의하면, 지난해 디지털 광고 시장이 모바일 광고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2014년 대비 10.9% 성장하며 사상 처음 3조 원을 돌파했다. PC 광고 시장은 2014년 대비 7.8% 감소한 1조 7216억 원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보였지만, 모바일 광고 시장은 2014년 대비 52.6% 증가한 1조 2802억 원을 기록하며 디지털 광고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렇다고 이런 수치를 근거 삼아 “전통 미디어의 광고비 감소가 전통 미디어의 광고 효과 감소를 의미한다”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광고비 감소와 광고 효과 감소가 정비례 관계라면 다음과 같은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로이터, 맥루머스 등 외신들이 광고 분석 업체인 iSpot.tv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의하면, 애플은 2015년 애플워치를 출시하면서 3월 한 달 동안에만 TV 광고비로 3800만 달러(416억 원)를 지출했다. 이는 아이폰 6와 아이폰 6 플러스의 5개월 치 TV 광고비와 맞먹는 금액이다. 애플워치는 아이폰과 달리 충성도 높은 고객 기반이 약하다. 따라서 애플은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TV 광고비를 지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애플은 전통 미디어에 승부수를 걸고 있다. 비단 애플만이 아니다.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이 오히려 TV 광고를 메인으로 하고 있다는 역설은 다른 쪽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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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쩐의 전쟁’이라 불리는 슈퍼볼은 전 세계적인 시청률에 힘입어 해마다 TV 광고비가 증가하고 있다. 2014년에는 30초당 광고비가 400만 달러, 2015년에는 450만 달러, 올해에는 500만 달러(약 60억 원)를 기록했다. ⓒen.wikipedia.org

 

게임 업체들은 왜 TV 광고를 고집하는가

‘2015 지상파 TV 업종별 광고비 순위’를 보면, 모바일 게임(1위)·이동통신(2위)·휴대폰(3위)·통신망 제품 종합(5위) 등 디지털 기반 기업들이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반 업종의 기업들이 전통 미디어를 고집하는 건 왜일까? 어쩌면 그 해답은 핀란드 모바일 게임 업체 슈퍼셀의 CEO 일카파나넨의 “우리가 TV 광고를 하는 이유는 TV가 더 많은 오디언스에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효율적 미디어이기 때문”이라는 말 속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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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미디어의 답보와 디지털 미디어의 상승세가 시기적으로 겹치는 건 맞지만, 그런 현상은 라이벌인 두 미디어의 승부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두 미디어는 라이벌이 될 수 없는, 서로 다른 ‘속성’과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기업은 물고기(소비자)를 잡기 위해 두 개의 그물을 던질 수 있다. 그물코는 크지만 넓게 칠 수 있는 그물(전통 미디어)과 촘촘한 그물코로 작게 처지는 그물(디지털 미디어) 말이다. 따라서 어떤 물고기를 잡을 것이냐에 따른 선택이 있을 뿐 무용지물인 그물은 없다.

미디어의 속성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가 있다. 코바코가 지난 5월 발표한 ‘매체별 광고에 대한 소비자 인식 및 시청 후 행동 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이번 조사는 온라인 패널 소비자의 미디어별 광고 인식과 광고 수용 후 변화를 파악했다. 조사 결과, 73.1%의 소비자가 만약 클라이언트가 돼 광고 집행 미디어를 선택한다면 “지상파 TV를 고르겠다”고 응답하는 등 소비자의 지상파 TV에 대한 우호적 태도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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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광고 인식 측면에서도 지상파 TV 광고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가 타 미디어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광고 신뢰성 77.3%, 시장 주도 브랜드 이미지 부여 70.5%. 모바일은 같은 지표에서 각각 25.8%, 18.7%), 광고 수용 후 변화 면에서도 지상파 TV가 다른 미디어보다 소비자의 변화를 뚜렷하게 이끌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지상파 TV 제품·서비스 인지 유발도 68.4%, 모바일은 30.2%). 또한 미디어별 광고 수용 후 변화 측면에서도 지상파의 변화 견인력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상파 미디어의 광고를 본 후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인지도와 정보 숙지도, 호감 유발도가 각각 68.4%, 59.9%, 57.2%로 조사됐는데, 이는 동일 항목에 대한 모바일의 응답률이 30.2%, 28.6%, 21.2%임을 고려하면 비교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식에 맞는 그릇을 준비해야

소비자 인식 조사를 통해 아직까지 소비자는 전통 미디어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인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제 결론을 내야 한다. 미디어 플랫폼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콘텐츠가 관건이라는 사실과 콘텐츠의 성격에 걸맞은 플랫폼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나영석 사단의 <신서유기 1>은 네이버 TV 캐스트(웹)를 통해서만 제공됐고, 시즌 2는 웹과 동시에 tvN을 통해서도 방송됐다. 웹에서만 공개된 시즌 1도 성공적이었지만, 시즌 2 역시 중국 동영상 플랫폼에서 6월 3일 기준 동영상 누적 재생수가 2억 1156만 건을 기록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즉, 콘텐츠의 힘은 미디어의 종류나 성격을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이용하는 멀티태스킹 그룹과 이용하지 않는 비멀티태스킹 그룹을 비교해 본 결과, 멀티태스킹 그룹이 TV 광고에 대한 인지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또한 TV 광고 시청 후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았다. 제품이나 기업에 대한 정보 탐색과 제품 구매 의향 역시 차이가 있었다(<지상파 방송의 광고 미디어 가치 분석 연구>, 박원기, 2015, 코바코). 이러한 결과는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적인 젊은 층이 TV 광고를 시청했을 때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SNS 공유를 위해 ‘본방 사수’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미디어가 따로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각 미디어의 장점에 부응할 수 있는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결합’의 묘를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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