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7. 9
글 문장호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 교수)
해외에서는 몇 년 전부터 정착되기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이제 시작 단계인 브랜드 저널리즘. 최근에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달하는 방법론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 성공 사례를 통해 소비자에게 다가서기 위한 브랜드 저널리즘의 필요충분 조건을 짚어 본다.
브랜드 저널리즘, 그 시작과 전개
브랜드 저널리즘은 2004년 당시 맥도널드의 CMO였던 래리 라이트(Larry Light)가 슬럼프에서 되살려 낸 자사의 마케팅 활동을 소개하면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래리 라이트는 브랜드 저널리즘을 ‘브랜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방식’으로 정의하고, 이 과정에서 브랜드를 하나의 잡지나 신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뉴욕타임스와 허핑턴포스트의 차이가 뚜렷하듯이, 하나의 잡지와 신문에는 전체로서의 고유한 캐릭터와 방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지면 안에 정치, 문화, 스포츠, 라이프 섹션이 있는 것처럼 하나의 신문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주제가 다뤄진다. 우리가 신문이나 잡지를 읽을 때 모든 기사를 읽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록 하나의 브랜드를 선택한 소비자들이지만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그 브랜드의 면면은 모두 다르기 마련이다.
이처럼 하나의 브랜드를 선택한 다양한 소비자의 관심사와 니즈에 대응하기 위해 브랜드에 관한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스토리를 생산함과 동시에 이 다양한 콘텐츠를 유기적으로 한데 모아 통일성 있는 전체로서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브랜드 저널리즘의 지향점이다. 이를 위해 브랜드는 마치 하나의 잡지나 신문을 만드는 저널리스트와 같은 거시적 접근 방식과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으며, 방법론적으로 한 브랜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채집하기 위해서 저널리스트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방식을 차용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13년 전 라이트가 주장한 브랜드 저널리즘의 골자이다.
덧붙여 그는 광고와 브랜드 포지셔닝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 마케팅 활동은 한계에 도달했으며 맥도널드, 코카콜라, GE, 삼성과 같이 모두가 알고 있는 메가브랜드일수록 다양한 마켓과 세그먼트의 소비자 니즈에 대응하기 위한 다면적 커뮤니케이션을 브랜드 저널리즘을 도입해 수행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실제로 그의 제안 후 몇 년이 지난 2011년을 전후로 콘텐츠 중심의 마케팅 비전을 내세운 코카콜라, 레드불,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브랜드 저널리즘을 도입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며 브랜드 저널리즘이라는 개념이 부상하게 된다.
이후 브랜드 저널리즘은 ‘브랜드가 언론적 접근 방식을 사용해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모델’로 구체화되며 그 방법론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는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 기업 내에는 전직 기자들로 구성된 ‘브랜드 뉴스룸’ 조직이 생겨났고, 이들 인하우스 저널리스트들이 제작한 브랜디드 콘텐츠는 기업의 온드 미디어(Owned Media) 채널은 물론 소비자들의 자발적 공유, 나아가 레거시 미디어, 소셜미디어, 포털사이트 등이 앞다퉈 선보인 네이티브 광고 상품을 통해 더 널리, 그리고 더 빨리 배포되는 활로를 찾게 된다.
브랜드 저널리즘의 두 유형: 코카콜라 vs. 레드불
브랜드 저널리즘을 선도해 온 대표적 브랜드로 코카콜라와 레드불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미 많이 소개된 사례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유사한 제품군을 생산하는 이 두 브랜드는 흥미롭게도 지난 몇 년간 서로 다른 유형의 브랜드 저널리즘을 추구했고, 나름의 독자적 형식을 구축해 왔다.
먼저 코카콜라의 코카콜라 저니 웹사이트(cocacolacompany.com)는 래리 라이트가 제안한 브랜드 저널리즘의 교과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웹사이트는 마치 코카콜라에 관한 뉴스를 생산하는 하나의 잡지사 웹사이트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코카콜라 저니’라는 웹사이트명 아래 특집, 경영, 브랜드, 다양성, 음식, 역사, 혁신, 직무, 스포츠, 지속 가능성 등으로 나눠진 각 섹션 내 기사 형식의 콘텐츠들은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으로’ 코카콜라라는 거대한 브랜드의 세계를 속속들이 파고든다. 빈민가에서 성장한 한 흑인 청년이 애틀랜타에 위치한 코카콜라의 보틀링 회사에 취직해 운전기사에서 매니저로 성장하는 과정을 ‘취재’한 기사처럼 ‘이런 것까지 다루나?’라고 생각되는 코카콜라에 관한 스토리들을 하나둘 읽다 보면 어느새 코카콜라형 브랜드 저널리즘의 우직함이 느껴진다.
▲코카콜라에 대한 모든 뉴스를 독자와 공유하는 코카콜라 저니. Ⓒcocacolacompany.com
코카콜라가 자사 브랜드를 둘러싼 이야기들로 미디어를 구축했다면, 레드불은 자사 브랜드가 아닌 스포츠와 문화를 주제로 한 라이프스타일 미디어를 구축해 왔다. 레드불의 웹사이트는 독보적이다. 이 웹사이트에서 레드불 에너지 드링크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할 정도로 기업 웹사이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소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자리를 레드불의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스포츠와 문화에 관한 기사들이 대신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레드불 웹사이트를 에너지 드링크 브랜드의 소비자가 아닌 독자가 찾아오는 하나의 온전한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미디어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레드불은 우연히 음료수를 판매하게 된 미디어 기업’이라는 소개가 과장이 아님은 전통적 언론사들조차 익스트림 스포츠나 스턴트 관련 기사를 쓰기 위해서 레드불에 콘텐츠 비용을 지불하는 데서 단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레드불은 타깃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파악하고 선택해 누구보다 심도 있게 일관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해 왔고, 축적해 왔다. 특히 브랜드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면서도 전통적 언론사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익스트림 스포츠와 스턴트 등 틈새 주제를 공략해 콘텐츠 리더십을 선점한 점은 레드불형 브랜드 저널리즘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동인이다.
더욱 인상적인 점은 각국의 레드불 웹사이트에서 목격할 수 있는 브랜디드 콘텐츠의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이다. 한국의 경우 레드불 태권도 발차기 대회(Redbull Kick It), 김자인 선수의 스포츠클라이밍 월드컵 우승 소식, 평창올림픽을 겨냥한 동계스포츠 종목 콘텐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다양한 한국의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들에 관한 뉴스와 비디오 등 레드불 코리아는 이미 국내 어떤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사로 가득한 독보적 미디어로 진화했다(헝가리에서 열린 ‘세계 방 탈출 월드 챔피언십’에 한국 대표팀이 출전했다는 소식을 어디서 접하겠는가). 그리고 이는 세계 각국의 레드불 웹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거의 모든 콘텐츠는 해당 시장과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현지화돼 생산된다. 또 콘텐츠 내 사진과 비디오에 등장하는 레드불 후원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 등을 통해 브랜드 로고가 노출되지만, 레드불의 콘텐츠에는 집요할 정도로 레드불 제품에 관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는다.
▲타깃 소비자의 니즈 콘텐츠를 일관성 있게 전달하는 레드불. Ⓒredbull.com
브랜드 저널리즘을 통한 브랜디드 콘텐츠의 진화
이렇게 브랜드 저널리즘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 두 브랜드의 브랜드 저널리즘은 방향성의 차이일 뿐 그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코카콜라는 자사 브랜드에 관해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미디어를, 레드불은 독보적인 익스트림스포츠 라이프스타일 미디어를 지향한다.
그리고 이미 몇몇 국내 기업들도 브랜드 저널리즘 형식에 적극적인데 이 중 삼성전자 뉴스룸이 대표적이다.
▲한국 기업의 대표 사례인 삼성전자 뉴스룸
향후 브랜드 저널리즘 도입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이 앞선 사례들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점은 이 사례들이 브랜드 저널리즘을 관철해 나가는 자세와 태도이다. 브랜드 저널리즘에 기반을 두고 제작한 콘텐츠들은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타성 바이럴 콘텐츠와 그 결이 다르다.
브랜드 저널리즘에 기반을 둔 콘텐츠 제작의 성공을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끈기 있게 브랜드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 주는 우직함이 필요하고, 브랜드의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또한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위한 경영진의 아낌없는 지원과 기다림도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들이 축적될 때 소비자들은 브랜디드 콘텐츠의 진정성을 느끼게 되고 브랜드는 비로소 스스로 찾아오는 온전한 미디어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 ‘긴급 속보’나 ‘단독’ 등 언론에서 사용하는 뉴스 형태를 차용해 소비자의 이목을 끄는 전략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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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뉴욕에서 인터뷰를 했던 뉴욕타임스 네이티브 광고 에이전시 티 브랜드 스튜디오(T Brand Studio)의 부사장 아담 애스턴(Adam Aston)은 “단순하고 세련되지 않은 브랜디드 콘텐츠에서는 브랜드가 스토리의 전부가 되지만, 훌륭한 브랜디드 콘텐츠에서 브랜드는 스토리의 일부분에 머문다. 좋은 콘텐츠에서는 브랜드가 소재를 제공하고, 브랜드를 둘러싼 스토리에서 캐릭터와 내러티브가 등장한다. 브랜드 저널리즘은 이 매력적인 브랜디드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효과적인 접근 방식이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브랜드 저널리즘의 도입은 브랜디드 콘텐츠의 진화를 주도할 것이며 브랜드가 하나의 미디어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되리라고 본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한국형 브랜드 저널리즘이 기존의 사례들을 훌쩍 뛰어넘는 사례를 만들어 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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