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7. 10
글 편집실
첫인상은 순식간에 결정된다
첫인상은 ‘기회’와 연결된다. 대학 시절 미팅을 떠올려 보라. 소개팅도 마찬가지다. 난생 처음 보는 남녀가 마주 앉아 슬슬 눈치를 살피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호구 조사부터 시작해, 하지도 않는 취미 활동을 캐묻고 있지도 않은 장래 계획을 물어본다.
상대방을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10분, 길면 1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 다 알겠다는 듯 결론 짓는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군! 이때 ‘이런’이 긍정적이면 진심으로 다음 약속을 잡고, 부정적이면 형식적으로 약속을 잡는다. 후자의 경우 바람 맞거나 맞힐 확률은 100%다.
그런데 사실 이 만남이 ‘애프터’로 이어지느냐 아니냐는 잠깐 나눴던 대화의 퀄리티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신입사원 면접 시험도 아닌 터에 내 질문에 얼마나 열정적으로 답변했는가가 뭐 중요하겠나. 애프터를 가능케 하는 요인은 전적으로 첫인상이다. 생김새, 옷차림, 음색, 제스처를 비롯해 스펙 또한 첫인상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대화 내용, 즉 상대방의 화법이나 말 속에서 드러나는 생각도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많은 요소를 분석하고 정리한 다음 첫인상을 느끼지 않는다. 상대방이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푹 기대고 앉아 고개를 쳐든 채 계속 말한다 치자. 다리를 왼쪽으로 꼬았는지 오른쪽으로 꼬았는지, 왼팔이 위로 올라갔는지 오른팔이 위로 올라갔는지, 고개를 든 각도가 몇 도인지 따질 필요도 없다. 어떤 성향을 지닌 사람인지 단박에 감이 온다. 첫인상은 이렇게 직감에 의해 순식간에 일어난다.
직감에서 직관으로
“그 선배 첫인상은 별로 안 좋았는데 알고 보니 진국이더라.”
“그 선배 첫인상은 엄청 좋았는데 겪어 보니까 진상이야.”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물론 이런 말도 듣게 된다.
“그 선배 성격 시원시원하니 참 좋아. 첫인상 그대로야.”
첫인상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살면서 형성된 선입견이나 지극히 개인적 취향이 첫인상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상학자도 아닌데 외면만 보고 어떻게 그 사람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나이가 들면 첫인상의 적중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어느 날 남자 친구, 또는 여자 친구를 부모님에게 소개한다. 친구를 보고 난 후 부모님은 이렇게 말한다.
“그 애는 안 돼. 척 보면 알아.”
첫인상이 안 좋다는 얘긴데, 부모님은 어찌 그리 확신하실까. 인생에는 많은 변수가 있다. 살다 보면 숱한 사람을 만나고 이런저런 일을 겪는다. 그렇게 경험과 사유의 깊이가 쌓이면 직감도 성숙해진다. 삶의 데이터가 풍부해질수록 느낌뿐인 ‘직감’은 통찰력 있는 ‘직관’으로 변모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잘’ 꿰어야 보배
불교에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다. 돈오돈수는 단박에 깨쳐서 더는 수행할 게 없다는 의미고, 돈오점수는 점진적 수행을 거쳐 깨달음에 이른 후에도 계속 수행해야 그 깨달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때 마케터들은 탁월한 직감을 활용해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그러다가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직관을 활용했다. 이제는 데이터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렇다고 직감이나 직관이 무용지물이 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로부터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크리에이티비티를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직감이나 직관의 힘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구슬을 꿰기만 한다고 보배가 되지는 않는다. 잘, 아름답게, 효율적으로 꿰야 보배가 될 수 있다.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소비자의 행동 속에 숨은 동인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이것을 성과로 연결시키려면 직감과 직관을 아우르는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하다.
데이터는 돈오돈수가 아니라 돈오점수로 접근해야 한다.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정답이 아니며,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소비자의 마음이 오늘과 내일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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