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3. 10:00

소비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주장하는 미닝아웃(Meaning Out). 과거에 비해 미닝아웃이 활성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미닝아웃 트렌드는 어떤 양태로 나타나고 있을까?

 

대의명분부터 개인적 취향까지

집단의 영속과 단결을 위해 집단 나름대로 규칙과 질서를 정하는 것은 대부분의 동물 무리에서 당연한 일이다. 집단이 안전해야 구성원 개인의 생존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인간들이 모여 이룬 사회는 집단 영속에 유리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문화나 규범, 에티켓, 관습, 또는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체계화하고 세대를 이어 전승한다.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개인의 의견이나 행동은 부정적 평가를 받거나 심지어 처벌 받는다. 이때 주류 집단 규범을 강조하는 정도와 소수 개인의 서로 다른 규범을 허락 또는 수용하는 정도는 문화마다 다르다.

우리 사회는 소수의 의견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편이다. 집단주의적 색채가 강하며, 개인이 그가 속한 집단 공통의 의견이나 규범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데 서툴다. 심지어 일상적 대화에서 ‘다르다’와 ‘틀리다’가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주류 규범과 다른 개인의 의견은 종종 바람직하지 않거나 잘못된, ‘틀린’ 의견으로 평가되고 그런 의견을 가진 개인은 집단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엔 적극적으로 개인의 신념과 의견을 드러내는 행위가 증가하고 있다. 이를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커밍아웃에 빗대 ‘미닝아웃’이라고 부른다. 미닝아웃의 가장 대표적 행태는 SNS를 하면서 관심사에 해시태그를 붙이거나 자신이 동의하는 사회적, 정치적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환경보호나 동물복지, 취약계층 지원, 채식 실천처럼 누구에게나 명분이 확실한 신념을 노출했으나 차츰 사회적 이슈가 되거나 개별화된 신념까지 아웃하는 것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미투 운동이나 브래지어 벗기 같은 젠더 이슈, 특정 정치인이나 연예인, 스포츠 선수에 대한 지지와 응원부터 좋아하는 장소를 홍보하거나 특정 굿즈에 대한 선호와 취향을 표현하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스럽게

오늘날 소비 행위에 나타나는 미닝아웃 트렌드는 나를 표현하는 미묘하고 간접적인 과거의 방식이 아주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예컨대 과거에는 자신이 ‘세련된’ 상류층이라는 이미지를 보여 주기 위해 심플한 블랙 샤넬 드레스를 입거나 모피 사용 반대를 위해 인조 모피를 선택하는 식이었다.

현재의 표현 방식은 보다 과감하고 직접적이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의견을 표현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원하는 슬로건을 크게 레터링한 티셔츠를 입거나 가방을 들고 다니고, 관련 장식품이나 배지(Badge) 등을 구매한다.

미닝아웃의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옷이나 가방, 신발, 모자나 장식품에 글을 새기는 것은 기본이고 한 발 더 나아가 상징적인 로고나 굿즈를 개발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 형태로 글이나 그림을 새기기도 한다.

신념의 표현 방식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머스럽다. 정형화된 권위에 저항하는 의미로 대상을 희화화하기도 하고, 명품 브랜드의 글자나 로고를 비틀어 짝퉁임을 노골적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미닝아웃은 어떤 이들에게는 사회 운동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놀이다. 후미진 지하철 주변 도로변의 그래피티처럼 미닝아웃의 창의적 표현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나 디자인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flickr.com by AH McKay

다름에 대한 수용

자기를 내세우는 미닝아웃 트렌드의 확산은 한편으로 ‘다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경제 발전과 소득 증가로 인해 집단 의존성이 감소하고, 글로벌 이동과 교역의 증가에 따라 다르고 낯선 것에 대한 포용 역량이 커진 결과다. 또한 SNS나 블로그처럼 개인 단위로도 의견과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가 다양해지고, 자아 의식이 강하고 나홀로 신기술과 디지털을 즐기는 데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성장한 것도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를 표현하고 싶다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표현도 존중해 줘야 한다. 서로 다른 혐오 슬로건이 새겨진 노란 티셔츠와 빨간 티셔츠 집단이 강남역에서 부딪치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

재작년 미국 대선 직전 미국에 갔을 때 월마트 주차장에 나란히 서 있던 세 대의 자동차가 생각난다.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와 ‘백인의 목숨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 too)’라고 각각 쓰인 작은 현수막이 자동차 트렁크 부분에 제각기 붙어 있었는데, 또 다른 표어를 부착한 세 번째 차가 와서 정차했다. ‘모든 목숨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 세 명의 운전사는 서로 눈인사를 건네고 월마트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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