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8. 7
정유나CD (제작2본부)
얼마 전 팀원들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을 가지고 있던 일본 이야기를 하며(우리에겐 지금도 없는) 아쉬운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과거의 우리가 세계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했다면 역사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생각과 칸 라이언즈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그 결과는 매우 다르다라는 이야기를 할 참이다. 너무 거국적인가?
칸의 위기인가, 나의 위기인가
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나도 다녀와서 “칸은 어땠어?”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선뜻 “좋았어”라고 답할 수 없었다. 그 해의 칸을 휩쓰는 히어로 캠페인이나 눈에 띄는 작품은 드물었고(올해부터 한 작품당 출품 카테고리의 수를 제한한 영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영광스러운 그랑프리를 발표하는 순간조차 객석에서 동의와 환호의 박수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칸 라이언즈는 이미 ‘Festival of Technology’라고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올 만큼 수년 동안 테크놀로지의 비중이 높아졌으나 새로운 기술의 제안 역시 쉽지 않아 보였다. 이것은 칸의 위기일까? 광고의 위기일까? 아니면 크리에이티브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위기일까?
주목할 만한 변화
칸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칸은 늘 크고 작은 변화로 업계의 니즈를 반영해 왔다. 올해는 특히 퍼블리시스 그룹의 보이콧으로 촉발된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퍼블리시스의 보이콧은 비싼 참관 비용과 출품 비용, 캠페인의 중복 수상으로 인한 상의 권위 하락 등 주최 측의 방만한 경영에 대한 광고업계의 불만이 반영된 상징적 사건이었다). 표면적으로 가장 큰 변화 세 가지는 첫째, 8일에서 5일로 축제 기간이 축소된 점, 둘째, PASS 가격 인하, 셋째, 카테고리의 축소 및 출품 횟수 제한이었다.
모든 것의 디지털화
그러나 표면적인 변화보다 칸 현장에서 내가 체감한 두 가지 주요한 변화가 있었다. 첫째, 완전한 디지털 광고 시장으로의 전환. 둘째는 브랜드, 곧 클라이언트 중심의 비즈니스라고 하겠다.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 IT기업과 디지털 매체가 산업을 이끌어 가는 상황에서 칸 라이언즈는 이번에 사이버 부문(Cyber Lions)을 폐지했다. 크리에이티브 랩의 김윤호 팀장님에게 “왜 사이버 부문을 폐지했을까요?”라고 물으니 “모든 게 디지털이니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즉 모든 카테고리의 디지털화라는 것. 이것은 앞으로 ‘Creativity’가 ‘Creativity+Data’로 평가받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칸 라이언즈는 퍼블리시스의 보이콧과 대형 광고 에이전시의 참관단 축소, 4분의 1이 줄어든 출품작으로 인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에이전시보다는 브랜드에서 답을 찾았다. 그 결과 세미나와 연사 등에 브랜드를 대거 초청했고, P & G의 마크 프리차드(Marc Pritchard), 삼성전자의 이영희, 우버의 보조마 세인트 존(Bozoma Saint John) 등 60명이 넘는 CMO가 무대에서 연설했으며, 이후 몇몇 기사에서 “칸 라이언즈가 브랜드 중심의 비즈니스 포럼 형태로 가고 있다”고 다뤄질 정도였다. 또한 브랜드 스스로의 활동도 활발해 올해 에이전시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출품해 수상한 작품이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칸 라이언즈가 브랜드 중심이 된다는 것은 곧 앞으로의 크리에이티비티가 얼마나 브랜드에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지에 따라 평가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Highlights from Cannes Lions 2018: Day 1 Ⓒ Cannes Lions
크리에이티브는 변한다
나는 이 두 가지, 완전한 디지털 광고 시장으로의 전환과 브랜드 중심의 비즈니스 변화가 칸 현장의 변화뿐 아닌 현재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Creativity+Data, 브랜드에 얼마나 이익이 됐는가 하는 관점에서 크리에이티비티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변화도 그렇다.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을 갖기 위해.
서두가 길었다. 본격적으로 수상작 이야기를 하기 앞서 나 스스로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 작품들이 왜 상을 받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관점으로 다양한 수상작을 선정했다.
Views are King, 2억 명이 공유한 인쇄 광고
KFC의 <FCK> _ PR 부문 골드
Ⓒ KFC
소셜 미디어상의 View와 Share의 수는 모든 카테고리, 모든 캠페인 결과의 디폴트 요소이나 인쇄 광고를 2억 명이 넘게 공유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PR 부문에서 2개의 골드를 수상한 KFC의 <FCK>의 캠페인. 물론 아이디어 자체도 위트가 넘치지만(영국에서 닭고기 부족 사태로 상당수의 매장 문을 닫은 KFC가 인쇄 광고를 통해 사과했다. KFC를 ‘FCK’로 표기한 것에 주목할 것) 인쇄 광고가 PR 부문에서 골드를 수상한 것은 드라마틱한 SNS상에서의 활약 덕분이다. 그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한 케이스 필름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는 점술가다
구글의 <Know What Your Data Knows> _ Creative Data 부문 골드
Ⓒ Google Cloud
데이터가 미래를 예언한다고? Creative Data 부문에서 골드를, Digital Craft 부문에서 실버를 수상한 구글의 <Know What Your Data Knows> 캠페인. 구글 클라우드는 AI 머신러닝 기술을 통해 NCAA의 80년간 경기 기록을 분석해 전반전 경기 동안 리얼타임으로 후반전 결과를 예측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미리 만들어 놓은 소스를 활용해 후반전 내용을 미리 알려 주는 ‘세계 최초 실시간 예언(?) 광고’를 만들었다.
젊은이를 잡으려면 모바일 소굴로
나이키의 <Nothing Beats a Londoner>_ Social & Influencer 부문 그랑프리
Ⓒ Nike
Social & Influencer 부문에서 그랑프리, Titanium 부문과 Film 부문에서 골드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나이키의 <Nothing Beats a Londoner> 캠페인. 나이키는 영국 런던의 젊은이들과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이야기를 모바일 중심의 캠페인 플랫폼에서 시작했다. 캠페인 순서를 살펴보면 ❶SNS상에 나이키 로고와 유사하게 디자인 된 ‘Londoner’의 약자인 ‘LDNR’이 프린트된 티셔트를 입은 인플루언서들을 노출시키고 궁금증을 야기시킨 후 ❷런던 키즈들의 실제 스토리를 그들의 언어로 만든 <Nothing Beats a Londoner> 메인 영상을 인물 에피소드별로 끊어 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먼저 론칭했다. ❸풀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는데 이게 또 빅히트. ❹캠페인을 주도하는 인플루언서들은 인스타그램 라이브에 도시 전역의 스포츠 경기 링크를 걸고 ‘Swipe up’ 기능을 이용해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❺캠페인을 위해 제작된 gif와 스티커를 인스타그램과 스냅챗에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Fanchise’, 고객 마인드를 사장님 마인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Design Lab Originals: The Fanchise Model>_ Creative eCommerce 부문 그랑프리
Ⓒ Microsoft
Creative eCommerce에서 그랑프리와 실버, Brand Experience & Activation 부문과 Direct 부문, Media 부문에서 골드와 실버, 브론즈를 골고루 수상한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Design Lab Originals: The Fanchise Model> 캠페인.
2016년 Xbox는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한 콘트롤러를 살 수 있는 디자인 랩을 론칭한다. 그러나 기본 사양보다 50% 더 비싼 디자인 랩의 컨트롤러 가격이 구매 장벽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전통적인 소비자와 판매자의 역할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소비자를 전문 디자이너로 대우하고, 디자인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해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본인이 디자인한 컨트롤러의 판매가 많아질수록 돌아오는 이익이 커지는 식이다. 한마디로 Xbox 디자인 랩의 모든 고객이 사장님이 된다는 것. 그리하여 ‘Fanchise’ 사장님들은 자발적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본인의 제품 판매와 홍보에 열을 올리게 되고, 매출은 350% 성장했다.
‘Lion’이 아니라 ‘Lioness’의 해
에씨티의 <Bloodnormal> _ Glass: The Lion for Change 그랑프리
Ⓒ Essity
칸 라이언즈의 트로피도 암사자로 바꿀 때가 왔다? 세계를 휩쓴 미투 운동의 여파로 칸 라이언즈 행사 시작 전부터 그 어느 때보다 여성과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리고 Glass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에씨티의 <Bloodnormal>캠페인.
이 캠페인은 특히 제목이 마음에 든다. 제목처럼 몸에서 나오는 피는 다 평범하고 정상적인데 왜 여성의 생리만 유독 부끄러운 것일까? 모든 피는 TV에 나올 수 있는데 왜 생리는 안 되는 것일까? 이러한 금기를 깨기 위해 여성용품 회사 에씨티는 최초로 생리혈이 나오는 TV 광고를 만든다. 여성의 피는 파란색이 아님에도 생리대의 흡수력을 테스트하는 장면을 보여줄 때마다 사용하던 파란색 용액 대신 진짜 생리혈로 테스트를 한 것.
그리고 더 많은 금기, 예를 들어 남자가 생리대를 사는 것, 생리통, 생리 중 섹스, 생리대를 당당히 빌리는 것 등의 소재를 TV 광고에 자연스럽게 노출시킴으로써 생리가 일상에서 매우 정상적이고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로 인식되도록 했다.
● 그 외
현장 반응 최고
모든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참석했던 시상식 현장에서 반응이 좋았던 수상작들이다. ‘광고인이 좋아하는 광고’라고 할 수 있겠다.
· Mars <Selfiestix> _ Mobile 부문 골드
· KFC <Hot & Spicy> _ Outdoor 부문 골드
· Bahay Tuluyan <Disgusting Stories> _ Film Craft 부문 골드
케이스 필름 순삭
순식간에 케이스 필름이 끝나 버렸다. 아이디어를 떠나 케이스필름 자체의 완성도가 높은 수상작을 소개하겠다.
· ESPNW <Inequality Balls> _ Design 부문 실버
· Galeries Lafayette <afayette Anticipations> _ Design 부문 실버
· Bradesco <next> _ Design 부문 실버
· Beck’s <Le Beck’s: The legendary beer can> _ Design 부문 실버
· Apple <Welcome to @Apple> _ Social & Influencer 부문 골드
· Lonely Whale <Tick Tock> _ Outdoor 부문 실버
· Ea Games <FIFA 18 More than a Game> _ Entertainment 부문 골드
보기는 참 쉬워 보인다
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 Lacoste <Save our species> _ Brand Experience & Activation 부문 골드
· NIKE <Nike Australian Marriage Equality Swoosh Vote> _ Outdoor 부문 골드
· Coca Cola <This coke is fanta> _ Media 부문 골드
· McDonald’s <The Flip> _ PR 부문 골드
어느 별에서 왔니?
우리랑 다른 뇌구조인 듯.
· Unilever <Gene Project 90″> _ Film 부문 골드
· Kasikorn Bank <Friendshit> _ Entertainment 부문 골드
이쯤에서 수상작 소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8개 카테고리의 모든 수상작을 다 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처음엔 실버까지는 보려고 노력했으나, 곧 시간과 체력의 한계에 부딪쳐 골드까지 보는 것으로 스스로 타협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아마 전체 출품작의 1%도 안될 것이다.
게다가 짧은 영어 실력으로 케이스 필름과 출품 보드를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이해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설명한 내용이 정확한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같은 이유로 참관기에 도움을 얻기 위해 검색했던 많은 영어 뉴스도 완벽히 이해는 못 했지만 참고했다. 그래서 고백하건데 지금까지의 글은 짧은 식견에 근거한 100%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모든 내용을 의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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