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8. 9
최호섭(IT경제 칼럼니스트)
무르익은 O2O 환경과 IT기술의 급속한 발달 덕분에 계속 진화 중인 온 디맨드 서비스는 더욱 내밀하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선보이는 단계까지 왔다. 그래서 생긴 신조어가 ‘나를 위한 온 디맨드’라는 의미의 ‘온 미맨드’. 음식 배달, 큐레이션, 온라인 가상 비서 등 1인 맞춤형 서비스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온 디맨드의 현재를 짚어본다.
‘틈새 시장’에서 ‘시장’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독립을 꿈꾸는 20~30대들은 상대적으로 소비에 적극적이다. 적극적이라는 말은 많은 돈을 지출한다는 의미보다도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행에 민감하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서 최신의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 가깝다.
가전 시장은 오랫동안 이 흐름에 가장 예민하게 움직여 왔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세탁기나 냉장고 등 생활 필수 가전의 수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 소비의 형태가 과거에는 1인용이라고 하면 저가 제품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크기가 작을 뿐 소형화, 고급화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싼 것을 찾는 시장이 아니라는 얘기다.
1인 가구의 흐름은 곧 거주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움직임으로 연결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서비스와 제품 개발, 그리고 유통과 판매의 형태까지 변화하고 있다. 잠시 거쳐가는 ‘독립’이 아니라 ‘1인 가구’라는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틈새 시장’에서 ‘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젊은 1인 가구가 추구하는 방향은 상당 부분 여유로움에 있다. 혼자 살지만 꼭 해야 하는 번거로운 집안일이나 사람들과 맞부딪치는 일을 해소할 수 있는 서비스들과 잘 맞아 떨어지는 이유다. 자연스럽게 가족 역할을 대신하는 서비스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집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 돼야 하기 때문에 비어 있는 시간에 세탁이나 청소를 맡기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여전히 서먹하지만, 기술이 이 오랜 걱정을 날려 버렸다.
집 주인이 없어도 집 안까지 물건을 배달하고, 청소업체가 청소까지 할 수 있는 아마존 키 서비스.
Ⓒ Amazon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온 디맨드’ 서비스
O2O로 대변되는 ‘온 디맨드’ 서비스는 지난 몇 년 동안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활발하게 일어났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글로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과 전화를 통해, 또 마주 보고 얘기하면서 일어나는 감정 소비나 어색함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자극했고,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도 대면 서비스를 줄이면서도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사라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O2O는 자연스럽게 세계적 흐름으로 번졌다.
이 비대면 서비스의 발전은 개인화되는 사회 분위기와 1인 가구의 증가를 통해 새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혼자 사는 집, 혼자 먹는 밥뿐 아니라 음식을 주문할 때도 사람과 직접 얘기하지 않는다. 쇼핑을 할 때도 점원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고, 음식을 주문할 때도 눈치 볼 필요 없이 메뉴판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있다. “단무지 좀 더 보내 주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해야 했던 것들이 주문 페이지 아래 추가 사항에 한 줄 더 써 넣는 것으로 해결된다. 이는 곧 삶의 질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이런 분위기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되면서 비대면 서비스는 급격하게 발전했다. 이제 음식 배달은 앱이 맡고, 미용실 예약이나 자동차 수리도 O2O 서비스를 통해 시간을 맞춘다. 상품을 직접 손에 쥐어 준다는 것에서 시작한 택배도 이제 직접 만나서 건네 받지 않는다. 이제는 문 앞에 덩그러니 던져두고 문자 메시지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는 일이 일상화됐다. 아예 사물함처럼 안전하게 물건을 보관하는 무인 택배함은 이제 흔한 시설이 됐다.
전국 각 지역에 설치된 G마켓의 무인 택배함 ‘스마일 박스’.
Ⓒ G마켓
심지어 아마존은 아예 집 열쇠를 택배 기사에게 건네줘 빈집에 택배 상자를 놓고 가는 서비스와 도어락 제품을 시험하고 있고, 폭스바겐은 집 앞에 세워둔 자동차 트렁크 안에 택배를 담아둘 수 있도록 1회용 원격 키의 콘셉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가사를 대신해 주는 서비스들도 큰 인기다. 혼자 살기는 하지만 집안일은 역시 번거롭다. 그래서 가사 도우미 서비스들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집을 말끔히 청소해 주는 데 5만 원 정도면 된다. 집을 비워도 된다. 사진으로 청소 상황을 보여 주고, 리뷰가 선택의 가장 중요한 가늠자가 된다.
이 온 디맨드 서비스는 이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연결에 의미를 두던 단계를 넘어 더욱 개인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온 미맨드(on demand에 ‘me’를 합성해 만든 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서비스의 추세가 더욱 더 개인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누적 앱 다운로드 수가 120만 건을 돌파한 홈스토리생활의 ‘대리주부’.
Ⓒ 대리주부
소비자마다 다른 경험을 제공하라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이 음성 비서 서비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하는 이유는 단순히 말을 할 수 있는 인공 지능 서비스의 개발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용자의 의사를 먼저 읽어들이는 서비스가 곧 온 디맨드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마음을 읽는 방법은 바로 데이터에 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 사이의 관계가 다져지는 것 역시 오랜 데이터로 다져진 경험 때문이다. 기업들이 스마트폰, PC, 가전, 자동차 등을 통해 모이는 일상의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는 바로 그 ‘경험’을 쌓기 위해서다.
물론 기업들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이유에는 관심사를 읽어 더 나은 제품을 추천하고 맞춤형 광고를 보여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최근의 흐름은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기기와 서비스를 아예 개인에게 맞춰 버리는 것이다. 똑같이 생긴 기기를 쓰더라도 이용자마다 다른 경험을 만들어 주고,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도 서로 다른 검색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다.
최근의 음성 인식 서비스는 아예 목소리를 구분해서 여러 사람이 이야기해도 내 목소리에만 반응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구글은 지난 5월 개발자 컨퍼런스 구글I/O를 통해 개인화된 온 디맨드 서비스의 절정을 보여 줬다. 이용자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들고 “11시부터 1시 사이에 미용실을 예약해 줘”라고 말하자 음성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가 늘 가던 미용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사람처럼 예약을 잡는다. 11시에 예약이 안 된다고 하면 캘린더 속 일정을 따져서 다음 일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시간으로 직접 조율한다. 그때까지 상대방은 기계와 통화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구글 듀플렉스’라고 이름 붙은 이 서비스는 데모 한 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에는 사람과 기계가 너무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는 것이 주목받았는데, 기술적으로 뜯어 보면 개인화된 인공 지능 서비스가 이용자의 다양한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마음을 읽어 최적의 서비스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의 목소리로 미장원이나 식당을 예약할 수 있는 구글 듀플렉스.
Ⓒ Google Developers
올 가을에 나올 애플의 스마트폰 운영 체제 iOS12 역시 반복되는 위치 정보, 시간, 이용 서비스 등을 분석해서 습관적으로 하는 일들을 단순화해 주는 기능을 넣었고, 스마트폰을 켤 때마다 지금 필요할 것 같은 기능들을 보여 준다. 이미 온 디맨드 서비스들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분석과 개인화가 더해진다면 더 고도의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개인화와 인간성 문제는 산업화의 오랜 숙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세계적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100년 전의 인간 관계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없다. 더 쉽고 편하고 안전하게 대면 서비스를 개선하는 흐름을 부정할 이유도 없다. 모든 서비스는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는 서비스를 선택한다. 지금 그 중심에는 1인 가구, 그리고 개인화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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