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7. 17:30

일반적으로 오프라인에 기반한 리테일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규모를 기준으로 쇼핑몰,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순이다. 그중 편의점을 제외한 나머지 매장들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이들의 위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오프라인 리테일의 붕괴는 해답이 없는 것일까? 리테일 패러다임의 변화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야기된 요인과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리테일 패러다임의 격변은 모바일 플랫폼 기반 쇼핑의 활성화와 이를 사용하는 수요층(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그리고 1인 가구의 증가라는 인구학적 변화에 기반한다. 즉, 디지털 디바이스 활용에 능숙한 1인 가구 밀레니얼 세대를 비롯해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접한 Z 세대가 이러한 거대한 변혁의 주체이자 동인이다. 따라서 이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분석없이 오프라인 공간의 격변을 논할 수는 없다.

이들의 소비 관련 라이프스타일을 보면 매우 상충하는, 그래서 언뜻 잘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존재한다. 이들의 소비 행태는 크게 4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가성비를 매우 따진다.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로서 이들은 자신들의 수입이 빠르게 증가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소비를 줄일 수 있느냐에 관심이 있다. 즉, 수입 극대화가 아니라 적정 수준의 지출 최소화가 이들의 전략이고, 이에 따라 가성비를 우선시하는 소비 행태를 보인다.

두 번째, 차별적 소비이다. 이들은 남들과 다르게 보이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차별적인 제품을 구매하든지 아니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혹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공간 체험을 시도한다. 2010년대 중반까지 허름한 한옥 밀집 지역이었던 익선동이 젊은 세대에게 차별적 체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힙플레이스로 성장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 힙플레이스가 된 익선동 골목 ⓒ Photo by Alejandro / flickr.com

 

세 번째, 과시형 소비이다. 인스타그램의 열풍으로 자신의 처지에 상관없이 뭔가를 비주얼로 타인에게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데, 이는 차별적 소비와 연결되기도 한다. 네 번째, 가치 지향적 소비이다. 친환경 혹은 사회 형평성 추구에 기여하는 제품 구매 시 부가적인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마리몬드와 같이 여성 인권을 표방하는 제품군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성향은 다른 소비 행태인 가성비 추구형, 과시형과 일면 충돌한다.

가성비가 좋은, 그리고 과시가 가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별적인 가치 지향적 소비 행태를 추구하는 커다란 소비군의 등장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제4차 산업경제라는 용어는 유럽에서 ‘플랫폼 경제’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과거, 경제 체계가 혁신적으로 변화했던 18세기에 나타났던 큰 특징 중 하나는 산업혁명이라는 격변이 곧 도시의 격변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의 출현은 과거에 보지 못했던 커다란 공장들이 도시 내부에 들어오면서 도시 인구의 폭증이라는 도시 혁명을 가져왔다.

현재의 플랫폼 경제 혁명은 이에 못지않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창출하고 있으며, 도시 자체가 플랫폼 기업들의 서비스로 돌아가는 ‘플랫폼 도시’로 그 성격이 변모 중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세대 자체가 플랫폼 역할을 하는 밀레니얼 및 Z세대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자체가 플랫폼으로 작동하면서 실시간 정보가 플랫폼 전체에 빠르게 전파되고 인식되고 행동에 이르게 한다면, 이는 단순히 특정 세대라는 인구학적 의미를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MZ플랫폼 세대 중 특이하게도 Z세대는 오프라인 소비를 좋아한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차별적 경험을 소비하고자 한다면, Born-to-Be 디지털 세대에게 오프라인 공간은 매우 차별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들의 오프라인 경험 소비는 지극히 당연하다.

이러한 역디지털화(Reverser Digital Transformation: 모바일과 온라인 기업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체험/경험 공간을 만드는 현상)는 향후 계속 진행될 미래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은 MZ세대가 요구하는 ①가성비가 좋으면서 ②차별적이고 ③과시적이면서도 ④가치 지향적인 장소여야 한다. 한마디로 매우 인스타그램 친화적 장소(Instagrammable Place)여야 하면서 공간의 성격이 자주 바뀌는 팝업적 특성을 띠어야 한다.


▲ 지난해 서울 가로수길에서 선보였던 삼성전자의 팝업스토어 ‘새로보다’  ⓒ 삼성전자

 


▲ 올해 초 29CM와 출판사 문학동네가 컬래버레이션한 팝업스토어 ⓒ post.29cm.co.kr

불과 10년 전에는 어느 누구도 대형 건물의 공용 공간, 예를 들어 로비 같은 곳에서 셀카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위워크의 공용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셀카를 찍는 시대이다. 다시 말해 MZ세대의 차별적이고 과시적인 소비 특성에 부합되게 설계됐다면, 오피스 공용 공간마저도 인스타그램 친화적 장소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오프라인 리테일의 붕괴로 인해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서도 스위트스팟 같은 팝업 리테일의 성장세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플랫폼 경제 하에서의 디지털 혁명, 플랫폼 세대의 출현, 역디지털화 현상, 그리고 새로운 성격을 띠는 오프라인 공간의 출현…. 많은 부분이 이해하기 힘들고 충돌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모든 것들이 강하게 연결돼 있는 초연결 복잡계 사회에 진입했다. 공간의 변신 또한 마찬가지다.

 

* 필자 김경민은 하버드대학교에서 도시계획 및 부동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 전공 교수를 맡고 있다. 저서로 『도시개발, 길을 잃다』, 『리씽킹 서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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