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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 집착이 아름다운 이유

       나는 지난해 사내 행사로 진행됐던 ‘사일런트(Silent) 콘서트’ 포스터를 참 좋아한다. 관객들이 무선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콘서트라 타이틀이 ‘사일런트 콘서트’. 나는 이 독특한 콘서트를 알리는 포스터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가 ‘사일런트’라는 콘셉트에 주목했다. 그래서 보일 듯 말 듯 오선지를 그려 넣고는 살짝 바니시(광택) 작업만 추가했다. 이 포스터는 멀리서 보면 그냥 빈 종이처럼 보인다.   나는 과제가 주어지면 통상적으로 나와 있는 답안은 일단 제쳐 놓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설령 결국은 일반적 방법으로 ‘유턴’하게 될지라도 쉬운 방법을 향해 ‘직진’하지는 않는다. 유니크한 솔루션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풀어내려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만의 ‘유레카’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커머셜 아트는 클라이언트라는 방정식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마치고 미국에서 첫 직장을 얻었을 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내부에서는 다들 멋진 디자인이라고 좋아했지만, 정작 클라이언트가 시큰둥했던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디자이너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망각하고, 자신의 디자인에 도취됐기 때문이다. 커머셜 아트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는데 그걸 담아내지 못하는 디자인은 의미가 없다.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디자인이면 뭐 하는가, 상대방이 찾는 대답이 아닌 것을. 그런데도 고집을 부린다면 그건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다. 스타일에 함몰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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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 엄마가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늦은 나이까지 일에 푹 파묻혀 사는 여성에 대한 시각은 대개 이렇다. ‘아마 저 사람은 결혼을 안 했을 것이고, 했다 하더라도 아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일을 할 수가 있나.’  현실적으로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끝없는 갈등과 질문을 던지는 스무고개다. 그런데 내가 일찍 결혼해 두 아이를 둔 엄마라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20년 동안 어떻게 지치지 않고 광고업계에서 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첫 번째는 멀티태스킹이다. 밤늦게 퇴근해도 아이의 학교 준비물은 챙겨줘야 하고,  점심시간에 잠깐 자모회에 갔다가 돌아와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게 워킹맘의 일상이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아마 머릿속이 콩나물시루가 될지도 모른다. 이 일도, 저 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낙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호환되는 스위치가 많아서, 스위치를 이쪽저쪽 끄고 켜는 일이 가능하다. 어떤 일에 집중했다가도 그 일이 끝나면 빨리 스위치를 끄고, 다른 스위치를 작동시켜 또 다른 일에 집중한다는 얘기다. 때로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런 멀티태스킹 능력이야말로 내가 회사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때로는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오기도 한다. 예컨대 아이가 열이 펄펄 끓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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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 카사노바의 비밀

       18세기 이탈리아의 문학가 조반니 카사노바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재치와 교양을 겸비한 그는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다.  일설에 의하면 카사노바는 매일 수십 개의 굴을 먹으며 정력을 보충했다고 한다.  서양에서 ‘사랑의 묘약’으로 통했던 굴은 은유적 의미를 띤 채 정물화나 풍속화에도 곧잘 등장한다.  그런데 카사노바가 정력적이었던 게 오로지 굴 때문이었을까. 혹시 삶에 대한 긍정 정서가 그를 정력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킨 건 아닐까.    나는 본디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쩌다 보니 주변에  ‘에너제틱’한 사람으로 비춰지게 됐다. 혹여 그 ‘어쩌다 보니’의 속내를 궁금해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어쩌다 보니’의 정체를 개봉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은 대동소이한 제품과 브랜드 사이에서 우리 클라이언트의 제품과 브랜드의 특징을  차별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잘하는 비결 역시 차별화에 있다. 예를 들어 어려운 프로젝트를 앞두고 상사가 두 명의 부하 직원을 불렀다고 치자.  한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힘들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다른 한 사람은 “어렵지만, 잘만 하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직원도 결국 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누구를 사랑하겠는가.  모두가 힘들다고 할 때 한번 시도해 보는 태도야말로 내가 무리 속에서 차별화되는 포인트다.  시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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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_지현탁 프로] 지금 반짝하지 말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을 내게 던져보면, 내 대답은 이렇다. 나는 ‘재미’로 산다.   돌이켜보니 20년 넘게 내가 AE로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재미였던 것 같다. 광고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AE는 매우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속성을 지녔다. 그러한 속성이 내 적성과도 잘 맞았고, 그래서 내게 일은 재미와 동의이음어였다. 또한 클라이언트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며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전까지 관심도, 지식도 없던 분야를 공부하며  내 세계가 확장돼 가는 희열을 맛보는 것. 이건 꽤 괜찮은 경험이다. 하긴 필로소피(Philosophy)란 말의 어원도 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나도 필로소피한 인간의 범주에 드는 걸까.    광고일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보람 때문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던 나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며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 맥락에서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게 몇 가지 있다. 예를 들어 K2와 카스, 갤럭시 같은 작업이 그렇다. K2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아웃도어 브랜드를 메이저 브랜드로 부상시키며 시장까지 넓혔던 프로젝트이다. 배우 이민호와 2NE1 산다라 박이 모델로 나왔던 카스 후레쉬는 젊은 층에 어필하며 당시 2위였던 브랜드를 1위로 끌어올렸다.   2006년 TV 전파를 탔던 삼성에버랜드 패션의 갤럭시 광고는 내게 조금 더 각별하다.  이 광고는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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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_양영옥 프로] 요조숙녀보다 팜므파탈이 되라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던 나는 광고의 ‘광’ 자(字)도 모르면서 제일기획에 무턱대고 입사했다.  그림 그리기만을 좋아했던 터라 당대의 핫 트렌드는 말할 것도 없고, 광고의 일반 상식조차 모르는 게 많아 입사 첫 일 년은 암흑 속에서  산 것 같다.  각종 광고제 입상자는 물론 광고회사를 들어오기 위해 몇 년을 준비한 준비한 동료들에 비하면 무슨 용기로 이 치열한 광고계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그럼 난 무엇으로 이 힘든 싸움터에서 아직까지 크리에이터로 살아남아 있을까?  아마도 오랜 시간 서서히 내 몸에서 발달되어 온 ‘더듬이’ 때문인 것 같다. 남들은 그것을 ‘촉’이라고 하는데 난 촉보다는 오감으로  느끼는 더듬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컨대 광고주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이 프로젝트는 이렇게 하면 되겠어’ 하는 느낌이  섬광처럼 지나치는데, 그런 프로젝트는 대부분 성공적으로 진행된다.    물론 때로는 더듬이가 일동 차렷 상태에 빠져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나는 대체로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 모드로 진입한다.  그러다 우연히 본 사진이나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로 의외로 잘 풀리는 경우도 많다.  별다른 감이 오지 않을 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후배들이 있다. 그러나 보자기도 너무 꽉 묶으면 풀리지 않는 법.  머리를 싸매면 싸맬수록 늪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그럴 때는 생각을 잠시 책상 속에 넣어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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