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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의 밤_안상헌 프로] ‘운’도 크리에이티브 중의 하나일까?

  안녕하세요? 저는 운(運) 이라고 합니다. 흔히 운수라고도 하는 데요. 이미 정해져 있어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기운을   말하죠. 보통 사람들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말끝마다 저의 이름을 대곤합니다.   ‘참 운도 좋아?’, ‘운이 좋아서…’, ‘운이 없어서…’, ‘운이 다해서…’.    크리에이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숫자나 과학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게 크리에이티브인지라 이왕이면 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시작할 땐 평범한 소재의 아이디어였지만 사회적으로 마침 그 소재가 이슈가 되어 뜨거나 경쟁사의 실기로 우리 광고가 더 돋보이는 경우, 시안 단계에선 뭔가 불안불안 했던 크리에이티브가 막상 제작해 보니 괜찮아져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 저의 존재감은 확실해집니다.  이럴 땐 카피와 아트 그 사이에 저 ‘운’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많습니다. 시안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지만 보고 단계에서 악재가 발생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열심히 준비했는데 내용과 별 상관없는 이유로 패배를 맛보는 경우, 크리에이티브 외적인 이유로 어카운트가 바뀌는 경우,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위에선 몰라주는 경우… 이럴 때 보통 제가 없다고 하거나 제가 따라와 주지 않는다고 하죠. 이쯤 되면 이런 말이 나오죠. ‘운도 실력이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 중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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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의 밤_안상헌 프로] 나만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

안녕하세요? 저는 ‘속도’라고 합니다. 저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년 시절 100미터 달리기에서 스포츠는 물론 자동차의 성능, 연애와 성공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세상사는 저를 기준으로 돌아가니까요. 광고 크리에이티브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저와  빨리 친해지는 사람이 각광받죠. 뭐든지 빨리 적응하고, 뽑아내고, 달려가는 그런 부류 말입니다. 그래서 저를 두고 희비가 엇갈립니다.   어떤 사람은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속도를 내 아이디어를 펼쳐 나가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밤을 꼬박 새워도 진도가 더디기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카피와 섬네일이 술술 나오는 데 반해 어떤 사람은 변비 걸린 듯 뭐하나 나오려면 한참 걸리기도 하죠. 어떤 사람은 총알처럼 빠르게 승진하고 어떤 사람은 가는 세월이 더디기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팀장이 돼 팀원들이 나를 못 쫓아온다고 답답해하고  어떤 이는 팀장님만 너무 앞서 간다고 푸념을 합니다.    따지고 보면 광고라는 게 원래 나 자신보다 남의 속도에 맞추는 게 숙명이라서일까요? 언제부턴가 자신만의 속도를 잊은 채 남에게  맞추려고 하는 게 상식처럼 됐습니다. 그래서 가끔 숨이 벅찰 때가 있기 마련이죠. 오늘도 숨 가쁘게 달리고 계신 여러분께 저 ‘속도’가  아주 굼뜨고 느릿느릿한 이야기 하나 권해 드릴게요.    라는 책입니다. 저자인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는 어느 날 갑자기 바이러스성  희귀병으로 온몸이 마비돼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지내게 되는데요. 그녀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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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의 밤_안상헌 프로] 귀를 기울이면 아이(耳)디어

      안녕하세요? 저는 ‘귀’입니다. 소리를 분별하는 중요한 기관이죠. 그중에서도 ‘크리에이터의 귀’로 살아가는 저는 다른 귀들과 조금  다릅니다. 일반 사무직으로 살아가는 제 친구 귀들과 비교해 본다면 크리에이터의 귀란 훨씬 터프하고 까다로운 직업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 귀가 닳도록 남의 이야기나 아이디어를 듣는 것이고요. 그것도 아주 오래 많이요…. 녹음할 땐 작곡가나  음반 프로듀서처럼 성우의 목소리 톤과 미세한 감정, 배경 음악의 울림까지 가려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귀들이 다 잠든  오밤중에도 졸린 귀를 비비며 후반 작업 관련 전화를 받을 때도 많고요. 광고란 게 여러 사람이 모여 하는 일이다 보니 싫은 소리도 많이 들어야 하고 또 여러 이야기 중의 옥석을 걸러 낼 줄 알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다른 귀들보다 피곤하게 살아가는 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보람 있는 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람들의 좋은 아이디어나 성우들의 좋은 목소리, 좋은 음악을 많이 듣고 산다는 건데요.  제가 아마 세상에서 행복한 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이러한 행복을 잘 누리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 귀들이  있어요. 제가 볼 땐 분명히 청력에는 이상이 없는데 회의 중에 남의 아이디어는 절대 들으려고 하지 않는 ‘회의 중 난청 증상’이 그것이죠.   이런 귀를 가지신 분들의 특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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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의 밤_안상헌 프로] 의자로 태어나 광고회사에서 살아가기란

    안녕하세요? 저는 ‘의자’입니다.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저 ‘의자’ 하나씩은 가지고 계실 겁니다. 특히 광고 회사, 특히 제작팀에   있는 저 ‘의자’는 다양한 기능을 합니다. 우선 어느 직종보다 엉덩이에 땀이 나도록 지속되는 심야·철야 회의 기능이 있고요. 회의 시간이   다가올 때 앉기만 하면 급행으로 아이디어가 나오는 급아이데이션 기능도 있고요.     피곤할 땐 침대 기능도 하고, 때론 심기가 불편할 땐 발로 차도 별 저항 없는 화풀이 기능도 하고, 광고 촬영이 많은 날엔 혼자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지키미 기능도 합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리뷰 자리에서 알맹이 없는 회의를 묵묵히 지켜보는 ‘의견 없이 자리 채우기(?)’  라는 특별한 기능도 가끔 하곤 합니다. 무게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저 위에 분명 사람이 앉아 있는데 영혼이 없는 그런 거 말이에요.      저만큼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고통과 희열을 아는 존재도 아마 없을 겁니다. 광고회사 의자 삼 년 이상이면 반크리에이터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죠. 늦은 밤 까지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는 저까지 덩달아 두 어깨와 네 다리가 묵직해지니까요. 알고 보면 저의 역사는 참으로 거룩해서 원래 앉기 위한 가구라기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고대 이집트 왕좌에서 시작되었답니다. 그때는 거의 왕만이 저 위에   앉을 수 있었고 일반 백성은 저 없이 앉아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 때 광고회사가 있었다면 팀장님들만 저 위에 앉고 나머지 스태프들은   앉아서 회의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처럼 의자가 대중화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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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의 밤_안상헌 프로] 설국열차에서 제작 칸은 어디일까?

    안녕하세요? 저는 ‘설국열차’라고 합니다.   영어 이름은 ‘스노우 피어서(Snow Piercer)’이고 원래는 만화로 태어났다가 영화가 제작돼 많은 분들이  극장으로 저를 보러 와주셨습니다. 원래 저의 설정이 철학적이어서 그런지 저를 두고 인류의 역사, 계급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등 여러 가지 철학적 해석이 많은데요.    오늘은 제가 광고 크리에이터 분들을 태웠다고 생각하고 색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직 저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스포일러까진 아니니 걱정 마시고요. 저에 대해 이미 알려진 바는 이렇습니다.    기상 이변으로 가혹한 빙하기를 맞은 지구, 생존자들을 태우고 얼어 죽지 않기 위해 17년째 쉼 없이 달리는 기차 한 대가 바로 접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 칸으로 엄격히 나눠져 있습니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생활하는 할렘 같은 맨 뒤쪽의 꼬리 칸,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곳이 앞쪽 칸이죠.     그러던 어느 날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가 폭동을 일으켜 저의 맨 앞쪽에 있는 엔진을 장악해 꼬리 칸을 해방시키고자   맨 앞쪽 엔진 칸을 향해 문을 하나하나 열어 가며 싸워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엔진은 신격화될 만큼 생존에 필요한 절대 존재인데요.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제일기획의 모토가 ‘아이디어 엔지니어링(Idea Engineering)’이었고  현재는 ‘아이디어로 세상을 움직이다(Ideas that Mov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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