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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의자’입니다. 직장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저 ‘의자’ 하나씩은 가지고 계실 겁니다. 특히 광고 회사, 특히 제작팀에  
있는 저 ‘의자’는 다양한 기능을 합니다. 우선 어느 직종보다 엉덩이에 땀이 나도록 지속되는 심야·철야 회의 기능이 있고요. 회의 시간이  
다가올 때 앉기만 하면 급행으로 아이디어가 나오는 급아이데이션 기능도 있고요.  
 
피곤할 땐 침대 기능도 하고, 때론 심기가 불편할 땐 발로 차도 별 저항 없는 화풀이 기능도 하고, 광고 촬영이 많은 날엔 혼자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지키미 기능도 합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리뷰 자리에서 알맹이 없는 회의를 묵묵히 지켜보는 ‘의견 없이 자리 채우기(?)’ 
라는 특별한 기능도 가끔 하곤 합니다. 무게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저 위에 분명 사람이 앉아 있는데 영혼이 없는 그런 거 말이에요.   
 
저만큼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고통과 희열을 아는 존재도 아마 없을 겁니다. 광고회사 의자 삼 년 이상이면 반크리에이터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죠. 늦은 밤 까지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는 저까지 덩달아 두 어깨와 네 다리가 묵직해지니까요. 알고 보면 저의 역사는 참으로 거룩해서 원래 앉기 위한 가구라기보다는 권위의 상징으로 고대 이집트 왕좌에서 시작되었답니다. 그때는 거의 왕만이 저 위에  
앉을 수 있었고 일반 백성은 저 없이 앉아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그 때 광고회사가 있었다면 팀장님들만 저 위에 앉고 나머지 스태프들은  
앉아서 회의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처럼 의자가 대중화된 것은 18세기 이후라고들 하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회사의 사원과 임원이 쓰는 제가 완전히 다르죠?  
영어로 ‘체어맨(Chairman)’이라는 단어만 보더라도 제가 얼마나 특별한 자리인지 아실 겁니다. 저의 존재는 단순하게 앉아서 회의하는 걸 넘어서는지도 모르겠군요. 예전 인기 드라마 에서 미스 김이 저에 대해 이런 명언을 남기기도 했으니까요. 
“내 의자를 잃는 것보다 더 괴로운 건 동료들을 잃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란 저에게 연연할 수밖에 없는 건가 봐요. 따지고 보면  
직장 생활이란 게 저를 지키고 더 좋은 저를 가지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무소유’로 대변되는 현자 법정 스님이 생전에 좋아하셨다는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에세이 을 보면 그의 오두막에는  
의자가 딱 세 개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두 개는 우정을 위한 것이며, 세 개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  
 
지금 팀 자리에, 회의실에 저 ‘의자’가 몇 개나 있으신가요? 무엇을 위한 의자인가요? 영혼 없이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가구로 절 보신다면 
전 꽤나 서운해할 겁니다. 완연한 가을입니다. 저 위에 앉아서 혼자 사색에 빠지기도, 아니면 도란도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은  
계절입니다. 먼지 한번 툭툭 털어 주위 누군가에게 저 의자 하나 내주시면 어떨까요? 전략 회의도 말고 섬네일 회의도 말고, 인생에 관한  
회의 한번 하면서요. 그게 바로 제가 의자로 태어나 광고회사에서 살아가는 맛입니다. 
 
 
sanghun.ahn@samsung.com "메일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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