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05. 10:00

B급 문화는 소위 비주류 문화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파격적이며 단순하고 자극적인 것이 특징이다. 메가 트렌드의 실종과 함께 사회 전반에 B급 문화가 빠르게 확산 중인 가운데 광고 마케팅 업계에서도 B급 문화 코드를 활용한 캠페인이 줄지어 등장하고 있다. B급 문화 코드인 ‘아재개그’로 화제를 모은 버거킹의 <통새우와퍼> 캠페인과 함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비주류 문화의 대중화’라는 역설에 대해 톺아보자.

엄숙주의의 파괴, 우리는 그것을 ‘사이다’라 부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초선 당시부터 탁월한 캠페인 전략으로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PR․마케팅 측면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온라인 세대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낸 캠페인 구성, 소셜미디어의 활용 등 오바마 캠프의 활동은 한동안 성공적 온라인 마케팅의 모범 사례로 빠지지 않고 등장할 만큼 파격적이고 강력했다. 재선을 거쳐 이제 퇴임을 앞두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의 행보는 연일 화제를 모으며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가장 회자됐던 이벤트 중 하나는 2015년 백악관 출입 기자단 연례 만찬회 연설에서 선보인 ‘분노 통역사(Anger Translator)’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는 지키지만 다소 의례적인 연설을 이어가는 오바마의 도플갱어로 등장한 코미디언 키건 마이클 키는 연설 사이 사이 기자와 언론을 향한 대통령의 속마음을 거침 없이 쏟아낸다. ‘분노 통역사’의 수위를 넘나드는 독설은 만찬 참석자 및 시청자들에게 통쾌함과 큰 웃음을 안겨주며 백악관 연례 만찬회 연설 중 역대급 퍼포먼스로 평가받았다.

▲ 오바마 대통령과 분노 통역사 영상 ⓒThe Daily Conversation

버즈 피드와 함께 진행한 건강보험 가입 독려 캠페인인 <오바마 케어(Obama Care)> 영상, 부통령과 함께 출연해 대통령 퇴임 후를 고민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담아낸 <소파 사령관(Couch Commander)> 영상은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며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일부 지지자들은 ‘Four More Years’라는 구호와 함께 오바마의 삼선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펼쳤다고 하니 그의 높은 인기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캐릭터는 권위주의와 엄숙주의에서 벗어난 파격과 유머로 정의된다. 재임 기간 내내 보여준 친근하고 인간적인 매력과 에둘러 말하지 않는 특유의 촌철살인식 화법, 그리고 그 위에 더해진 B급 유머 감각은 속이 뻥 뚫리는 짜릿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마디로 지난 8년간 오바마 대통령은 ‘사이다’ 같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꾸준히 쌓아왔고, 미국인들로 하여금 ‘오바마’라는 브랜드에 이토록 열광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취향을 비웃지마라, 취향의 반격

권위주의의 붕괴와 그에 대한 열광은 비단 미국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슬아슬한 섹시 코드와 풍자로 여덟 번째 시즌을 맡고 있는 <SNL코리아>,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을 표방하는 인터넷 언론사 <ㅍㅍㅅㅅ>의 성장, ‘아프리카 TV’의 지상파 TV 버전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성공 및 MCN 산업의 대두 등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비주류 문화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속된 말로 대중화되기엔 ‘저급하다’는 취급을 받았던 다양한 콘텐츠와 코드들이 속속 대중문화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여기엔 무엇보다 역시 소셜미디어 및 1인 미디어 플랫폼의 활성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뉴미디어 시절 이전, 개별적으로 ‘남몰래 즐겨오던’ 서브컬처(Subculture)로서 존재했던 다양한 취향과 장르가 소셜미디어 시대의 개막과 함께 본격적으로 공유되고 양성화되며 기존의 메인 스트림(이라 여겨지던 정형화된 문화의 흐름)을 완전히 뒤엎어 놓은 것이다. 때문에 동시대의 마케터들에게 “요즘 애들은 뭘 좋아하니?” 만큼 무의미한 질문은 없다. 애초에 ‘요즘 애들’이란 또래 그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취향을 공유하는 수천, 수만 개의 소그룹이 산발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B급 문화의 부상이 곧 ‘취향의 반격’으로 정의될 수 있는 이유이다.

 

참을 수 없이 즐거운 B급 문화의 가벼움

한국에서 이러한 B급 문화가 광고 마케팅 캠페인에 적용되고 있는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SPA 브랜드 에잇세컨즈는 지난 7월 배달앱 ‘배달의 민족’과 컬래버레이션을 발표하고, ‘배달의 민족’이 그간 마케팅 활동을 통해 보여온 B급 문화 코드를 녹여낸 상품을 출시하며 20~30대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보일락말락’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앞트임 스커트, ‘연예인’ 마스크, ‘아킬레스건’ 양말 등 일상 속 소소한 재미와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아이템을 내놓으며 감성적 트렌디함을 어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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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에잇세컨즈의 아이템들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 버거킹은 상반기 ‘통새우와퍼’를 출시하며 최근 가장 유행중인 B급 유머 코드인 ‘아재개그’를 차용한 광고 크리에이티브로 이목을 끌었다. TV 광고 콘티 구성은 단순하다. 운전석 뒤편에 앉아 있던 모델이 무엇인가 발견한 듯 “세우라고!”라는 대사를 반복하고 자동차는 급정거한다. 멈춰선 자동차 앞으로 지나가는 것은 새우 네 마리였다. 모델의 다급한 외침은 자동차를 세우라는 것처럼 들렸지만, 실은 신제품의 주재료인 새우를 강조하기 위한 언어유희였던 것이다. “통새우 맛보새우”라는 감칠맛 나는 내레이션으로 TV 광고는 마무리된다.

이 영상은 <TVCF> 사이트에서 높은 평점을 기록하며 지난 8월 ‘명예의 전당’에 등재됐다. 한국방송의 <개그콘서트> 중 ‘1:1’ 코너(8월 28일 방송분)에서는 광고 속 대사를 패러디한 개그로 <통새우와퍼> 캠페인의 파급력을 방증하기도 했다.

TV 광고뿐만 아니라 매장 포스터 크리에이티브에도 ‘아재개그’ 감성은 그대로 적용됐다. ‘통새우 맛보새우’를 슬로건으로 한 오리지널 제품 포스터 외에도 절찬 판매로 인한 일시 판매 중지 포스터 2종이 추가로 제작됐는데, 기존의 고지 포스터들과 구분되는 유머러스한 코드로 버거킹만의 위트감을 전달했다.

▲ 통새우와퍼 TV 광고

▲ 통새우와퍼 포스터

 

B급문화, 일시적 유행보다는 인사이트다

비슷한 시기, 유사한 형태의 아재개그 또는 언어유희를 활용한 캠페인들이 다수 있었음에도 버거킹의 <통새우와퍼>가 유독 큰 관심을 받았던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일관성이다. 버거킹 캠페인의 경우 당장의 유행에 따라 ‘아개개그’를 활용했다기보다는 이전부터 유지해오던 크리에이티브 코드를 좀 더 발전시킨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버거킹은 매 캠페인마다 ‘꽉 들어찼어, 콰트로치즈와퍼’, ‘치폴레, 맛볼래?’, ‘이 맛에 통 못자, 통모짜와퍼’, ‘하나 할래, 할라피뇨’ 등 제품명을 활용한 언어유희를 선보여 왔다. 이렇듯 브랜드의 기본 커뮤니케이션 방향성을 유지하며, 아재개그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결합시킴으로써 소비자들로부터 더욱 큰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재개그뿐 아니라 새롭게 각광 받는 B급 문화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외적인 형식을 따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코드들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인 의미와 향유자들의 정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사이트의 발견일 것이다. B급 문화가 표방하는 탈권위의 궁극적인 지향점 역시 결국은 소통,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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