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3. 10:00

 

잠시 그를 기억하다

“너는 경험해 봤니?”

도대체 뭘? 누군가 대뜸 이렇게 물으면 참 뜬금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질문 속 그 경험이 어떤 ‘장르’를 말하는지 헤아려 볼 것이다. 사실 <Are You Experienced?>는 지미 핸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의 데뷔 앨범 제목이다. 지미 핸드릭스가 결성한 3인조 밴드 지미 핸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이 앨범으로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미국의 한 신문사는 이 밴드가 장차 미래를 흔들 것이라 평했다.

지미 핸드릭스가 미래를 뒤흔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대를 흔든 건 틀림없다. 공연 도중 기타를 마구 휘두르는가 하면 심지어 이빨로 기타줄을 물어뜯으며 연주를 했으니 왜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밴드 이름이 하필 ‘익스피리언스’일까. 혹시 ‘이런 연주는 처음 들을 거다’ 식의 음악적 자신감의 발로에서 비롯된 작명? 아니면 일찍이 그가 겪었던 모든 경험이 결국 음악적 자양분으로 수렴되기 때문에? 뭐 해석은 구구할 수 있겠다. 하나 분명한 건 반세기가 더 지난 지금 들어도 그의 연주는 여전히 매혹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위대한’ 경험은 시대를 초월한다.

 

잠시 그 책을 떠올리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1970년대 중반 『소유냐 존재냐』를 발표했다. 프롬이 말하는 ‘소유’는 돈, 명예, 신분, 지식 등 과거에서부터 축적해 온 자산을 말한다. 반면에 ‘존재’는 충만한 삶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한 ‘소유’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걸쳐 있다. 집 한 칸 장만하기 위해, 또는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허리띠를 악착같이 졸라매며 아껴쓰고 저축하는 삶을 보라. 몸은 현재에 있지만 목표는 미래에 있다.

엄마들이 늘 얘기하는 게 바로 이거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언제 돈을 모으냐. 참아야 하느니라!” 하지만 ‘존재’는 바로 지금, 여기에 목표가 있다. 남과 다른 나만의 오리지널리티, 자유로움, 비판적 이성 등은 ‘존재’를 뒷받침하는 요소들이다.

옛날 어른들은 경험이 재산이라며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해 봐야 생각이 익어가는 가운데 지혜가 생기고, 연륜이 깊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롬이 말한 ‘존재’는 ‘경험’으로 치환해도 무방할 것 같다. ‘소유’는 ‘더 많이’를 추구하지만, ‘존재’는 ‘더 깊이’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잠시 저울질해 보다

조지프 파인과 제임스 길모어는 『체험의 경제학』이란 책에서 “상품과 서비스 자체만으로는 더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며 ‘체험경제’ 이론을 주창했다. 요컨대 소비자에게 어떤 체험(경험)을 제공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확실히 요즘 사람들은 제품 자체보다 경험에 더 무게중심을 두며, 소유보다는 경험에 더 투자한다. 상품을 구매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지 먼저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소비 시장에서 경험은 모든 경제 활동의 핵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가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자아실현의 욕구에 해당되는 소비를 원한다’는 매슬로의 ‘욕구 5단계’에도 부합한다.

그런데 경험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때로는 피곤해진다. “거기가 참 좋대. 한번 가봐야겠다”와 “난 왜 몰랐지? 당장 가야겠어”는 동일한 ‘결심’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느끼는 ‘존재감’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경험은 부자연스럽다. 경험이 ‘수집’ 취미가 된다는 건, ‘더 깊이’를 추구하는 존재적 양식에서 ‘더 많이’를 추구하는 소유적 양식으로 변질된다는 얘기다.

뭐든 과유불급(過猶不及), 중도의 미학이 중요하다. 지미 핸드릭스만 해도 그렇다. ‘약물 경험’을 지나치게 한 탓에 채 서른이 되기도 전에 요절하지 않았던가. 지배당하는 경험이 아니라 지배하는 경험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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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reativeAds says: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시대를 거듭할수록 진화해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과거에는 구매가 단순히 물리적인 실체를 구매하는 느낌을 주었다면, 오늘날에는 무형의 감성, 경험등을 구매한다는 의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구매'라는 인식변화가 소비자들의 소비성향까지 변화시키면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심장을 더 두꺼운 강철로 덮어가고 있는듯한 느낌입니다 ㅎ 광고인을 꿈꾸는 저에게 '더 피나는 노력을 하라'는 교훈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 ㅎ 감사합니다!

    1. 제일기획 says:

      @CreativeAds 님, 정성스런 댓글과 제일기획 매거진에 대한 관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의미있는 내용의 매거진으로 예비 크리에이터 CreativeAds 님과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