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7. 10:00

디지털 플랫폼의 기반이 강화되고 그 범위도 넓어지면서 점차 핀테크(Fintech), 마테크(Martech), 푸드테크(Foodtech), 애그리테크(Agritech) 등 기존 사업 영역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만남을 의미하는 신조어들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패션테크(Fashiontech) 역시 하나의 산업군으로 인정받아, ‘패션캐피탈파트너스’나 ’뉴욕패션테크랩’을 비롯해 패션테크 스타트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펀드나 액셀러레이터가 등장하고 패션테크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도 다수 개최되는 중이다.

 

맞춤화와 개인화에 직면한 패션테크 스타트업

패션테크를 지향하는 회사는 두 가지 과제에 직면한다. 기술의 힘을 빌려 과거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도제 방식을 따르는 생산 라인을 개선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품의 특성상 시장 최전방에 서서 소비자와 마주하며 작금의 유행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메지(Mezi), 오퍼레이터(Operator)를 비롯한 쇼핑 챗봇 스타트업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는 현상과 아마존이나 넷플릭스가 대변하는 맞춤형 커머스의 인기를 볼 때 지금 소비자가 어떤 쇼핑 경험을 누리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다.

소비자는 다수 대중을 상대로 한 상품보다 특정 그룹을 타깃팅하는 상품을 선호하며, 개인에게 가장 알맞은 물건을 골라 소비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누리고자 한다. 따라서 패션테크 스타트업들도 소비자에게 보다 맞춤화 및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재편하고 있다.

 

만족스러운 쇼핑 경험을 위한 인공지능

소비자가 좋아하지 않는 옷, 구매하지 않을 듯한 스타일의 옷을 구경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나쁜 쇼핑 경험’을 얻게 내버려두는 대신, 패션테크 회사들은 그에게 제일 잘 어울릴 법한 옷을 간편하고도 만족스럽게 구매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소비자 개인의 브랜드에 대한 선호, 좋아하는 스타일, 체형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하고 최적의 상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시간과 불편을 절감하는 동시에 판매 수익도 제고하기를 기대하는데, 일례로 2012년 설립된 남성복 커머스 스타트업 스레드(Thread)를 들 수 있다.

▲ ‘무료 온라인 스타일리스트’를 지향하는 스타트업 스레드 Ⓒthread.com

스레드는 ‘온라인 스타일링 서비스’를 지향하며, 여태껏 시간 및 비용의 제약 때문에 특정한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었던 오프라인 스타일링 서비스의 한계를 뛰어넘어 누구든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릴 법한 옷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고객의 선호를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한 후(“좋아하는 패션 브랜드는?”, “주말에 입고 싶은 스타일은?”, “슬림핏과 부츠컷 중 어느 스타일을 선호하는가?” 등) 고객과 스타일리스트를 매칭해 준다.

고객은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에게 조언을 구하고 상품을 추천받는데, 약 25만 명 이상의 회원이 스레드 서비스를 이용 중임에도 스타일리스트는 고작 10명 남짓이다. 그러나 스레드는 AI를 활용, 스타일리스트의 공수를 줄이고 추천에 대한 정확도도 제고한다. 즉 스타일리스트가 최초로 고객에게 전달하는 상품 목록에 대해 돌아오는 피드백을 지렛대로 삼아, 고객의 기호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보다 고도화된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클라크룸(the Cloakroom)도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 서비스를 제공하며 시장에서 자리 잡은 스타트업으로, 두 회사 모두 온라인 쇼핑에 어려움을 느끼는 남성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 이런 서비스를 활용해 소비자는 쇼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면서 자신에게 잘 맞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AR 기술로 가상 피팅 경험 제공

한편 온라인에서 의류를 구매할 때 겪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소비자가 직접 착용해 본 후 자신의 몸에 맞는지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인데,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 나아가 자신의 체형에 가장 잘 맞는 옷을 살 수 있도록 많은 스타트업이 인공지능과 AR 기술을 활용 중이다. 라쿠텐이 핏미(Fits.me) 사(社)를 인수한 후 가상 피팅 분야가 크게 주목받아 왔는데, 영국의 패션테크 스타트업 미테일(Metail)도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해 가상 피팅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 미테일의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한 가상 피팅 솔루션 ©metail.com

미테일은 의류를 디지털 이미지로 변환한 후, 소비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옷을 가상으로 착용해 볼 수 있게 한다. 미테일에 의하면 고객들이 만족하고 납득할 만한 피팅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이 필요하다. 단지 실제의 옷을 촬영해 디지털로 옮겨 놓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고객의 체형을 파악하고 옷이 어떤 식으로 흘러내릴지, 어디에 주름이 잡힐지 등 옷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해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미테일은 이러한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처리 기술을 인정받아 현재까지 약 2백만 유로의 투자를 받았다.

▲ 미테일의 가상 피팅 애플리케이션 ⒸMetail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직판형 플랫폼

나에게 보다 잘 어울리는, 나를 위해 맞춤형으로 제공된 상품을 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이 자신의 선호를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패션테크 스타트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에 그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한’ 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소비자와 공급자의 거리를 좁히는 온디맨드형 구조는 패션 산업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일간지 「보스턴글로브」에 의해 2014년 최고의 신진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여온 19th 어멘드먼트(19th Amendment)는 대형 브랜드에 소속되지 않은 디자이너들과 소비자 개개인을 연결시키며, 디자이너에게는 판로를 열어 주고 소비자에게는 개인화된 상품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 준다. 소비자가 특정한 상품에 대해 구매 의사 및 수정 의견을 제시하는데, 주문 가능한 기간은 19일로 한정돼 있다. 디자이너는 해당 수량만큼만 제품을 생산하면 되기 때문에 재고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이처럼 디자이너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 스타트업으로 신진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블링크도 있다.

▲ 개인 소비자와 디자이너를 연결시키는 19th 어멘드먼트 ©nineteenthamendment.com

 

3D 프린팅, 패션테크의 도전이자 가능성

직판형 플랫폼이 생산자와 소비자 간 불투명성을 걷어냈다면, 3D 프린팅을 활용한 패션 비즈니스는 온디맨드 서비스의 극단으로서 소비자가 자신의 수요를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나아가 생산 과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 즉 말 그대로 ‘나만을 위한 상품’을 제작해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3D 프린팅 기술은 IT 전문기관 가트너나 MIT 등에 의해 미래 산업 구조를 바꿀 혁신 기술로 여러 번 꼽힌 바 있다.

3D 프린터 기기와 원료가 저렴해지고 사용 방법도 쉬워지면서, 여러 분야에서 3D 프린팅을 접목하며 이른바 ‘메이커’가 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수요에 응답하는 중이다. 특히 패션 산업에서 인공지능과 3D 프린팅을 결합할 경우, 디자이너들이 수개월에 걸쳐 작업하는 오트쿠튀르(Haute-couture) 수준의 정교하고 복잡한 산출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패션 산업은 3D 프린팅 기술을 새로운 도전 과제로 바라보고 있다.

▲ 니탄의 의류 제작 과정 ⒸDezeen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니탄(Knyttan)은 이미 네타포르테와 파페치 등 대형 패션 리테일러들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이목을 끌었다. 기존의 니트 의류 생산 과정을 단순화하기 위해 3D 프린팅 기술을 차용했다. 결과적으로 평균 90일의 기존 제작 기간을 90시간 남짓으로 줄이는 동시에, 50장 수준의 최소 생산 단위 역시 줄여 단지 한 장이라도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의 의류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서스데이파이니스트(Thursday Finest) 역시 온디맨드 또는 D.I.Y 형태의 서비스를 지향한다. 개인이 필요로 하는 니트 제품을 ‘몇 분 안에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는’ 3D 니트 프린팅 솔루션을 제공 중인데, 오프라인 현장에서 고객이 직접 개인화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메이시즈 백화점과 제휴하고 뉴욕 소호에 팝업스토어를 론칭하기도 했다.

▲ 원하는 형태로 니트 제품을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서스데이파이니스트 ©thursdayfinest.com

고객은 서스데이파이니스트의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소재와 컬러, 모양을 선택해 ‘오직 자신만의’ 양말, 넥타이, 모자, 스카프 등을 주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의 디자이너 대닛 펠렉(Danit Peleg)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누구나 집에서 당장 제작해 입을 수 있는 옷(Ready-to-wear Collection)’을 선보였다. 유연한 재질을 선택해 마치 레이스처럼 보이는 옷을 만들었는데, 그가 런웨이용 작품을 인쇄하는 데는 각각 약 400시간 정도가 걸렸지만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은 훨씬 더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아무 가방 없이 여행을 떠나 호텔 룸에서 자신의 옷을 인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닛 펠렉의 목표인데, 이는 모든 3D 프린팅 패션테크 회사들의 목표이기도 할 것이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으로 ‘나만을 위한’ 상품 제공

이처럼 인공지능과 데이터 분석, AR, 3D 프린팅 기술 등을 활용해 많은 스타트업이 고객 개개인의 만족을 제고하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노력 중이다.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불리는 한정 생산 제품의 인기라든지, 많은 온라인 커머스 쇼핑몰에서 이전 구매 기록 및 타 사용자의 선호 등을 변수로 활용해 제품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현상은 사람들이 보다 더 자기 취향과 기호를 반영한 소비 경험을 누리고 싶어함을 뚜렷이 보여 준다.

패션과 디지털 테크놀로지, 즉 예술과 기술이라는 ‘양극단에 위치한 두 산업’은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상관 관계를 맺어 가며, 고객이 맞춤화되고 개인화된 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3D 프린팅 주얼리 시장이 2020년까지 약 11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앞으로도 패션테크 스타트업의 약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지 개인의 소비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트렌드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정체돼 있던 패션 산업이 새로운 동력을 찾는 데에도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형태의 패션테크 스타트업이 등장해 개개인의 취향에 힘을 실을지 두고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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