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7. 11
인터뷰이 궁경민 CD(Brand Experience 본부 BE제작2그룹)
지난 9월, 베를린에서 IFA 2017이 열렸다. 글로벌 브랜드의 각축장인 이 무대에서 삼성전자의 더 프레임 TV는 첨단 디지털 아트를 방불케 하는 가상 갤러리로 관람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IFA 2017 기간 동안 진행된 <The Frame 갤러리>는 TV라는 일상적 매개체를 예술적 오브제로 바꾸는 경험을 선사했고, <The Frame to Go>는 실효성 높은 웹 기반 AR 체험 솔루션을 제공했다. 이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Brand Experience 본부의 궁경민 CD를 만나 봤다.
IFA 2017에서 진행했던 <The Frame 갤러리>는 어떤 프로젝트인가?
집 안의 중심 공간에 자리를 떡 차지하고 있는 게 TV다. 특히 요즘은 대형 TV를 선호하는 추세인데, 그렇다 보니 실내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기도 어렵거니와 꺼져 있는 시간이 많아 효용성이 떨어진다. 더 프레임 TV는 꺼져 있는 동안 그림 액자 역할을 함으로써 생활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신개념 TV다.
<The Frame 갤러리>는 더 프레임 TV의 이러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했다. 더 프레임 TV에는 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대여해 감상할 수 있는 아트 스토어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을 평범한 메시지로 건조하게 전달하면 어느 누구도 이 TV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은 물론 구매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강한 임팩트를 주는 게 제일기획의 과제였다.
▲ IFA 2017에서 선보인 프로젝트 영상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갤러리가 우리 집 거실이 될 수는 없다. 반면에 우리 집 거실이 갤러리로 바뀔 수는 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 IFA 2017을 준비했다. 앞서 말한 <The Frame 갤러리>는 더 프레임 TV 19대를 활용해 전시 공간을 가상 갤러리로 꾸몄고,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실제 갤러리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정신적 고양을 맛보도록 했다. 전시 공간 바로 옆 부스에서는 <The Frame to Go>를 동시에 진행했다.
전시됐던 명화들을 엽서 형태의 마커로 제작해 관람객이 스마트폰으로 마커를 찍으면, 현재 위치한 공간과 더 프레임 TV가 어울리는지 AR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갤러리에서 아무리 큰 감동을 느꼈다 해도 그것이 지속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얘기는 다시 말해서 관람객이 더 프레임 TV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해도 자신의 사적인 일상과는 별개로 인식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신의 집 거실에서 마커를 스캔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더 프레임 TV가 우리 집에 맞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고, 구매로 바로 이어질 수도 있다. <The Frame 갤러리>가 감성적 방식으로 더 프레임 TV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The Frame to Go>는 재미와 효용성을 통해 내 일상 공간에서 더 프레임 TV에 대한 감동을 재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어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캠페인을 진두지휘하는 AE 입장에서는 <The Frame 갤러리>의 파트너인 스페인의 프라도 국립미술관, 영국 런던의 사치갤러리, 독일의 사진 전문 갤러리 루마스와 조율하는 과정은 마치 톱 여배우들 여러 명과 함께 작업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기술적 문제까지 관련된 스텝들 모두가 풀어나가야 할 저마다의 난제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한국, 스페인, 영국, 독일 4개국에서 다른 언어, 다른 전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시간대에 한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관객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그림 한 점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더 프레임 TV의 첨단 기술력이 감성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기준으로 많은 것이 빈틈 없이 아귀가 맞아야 했다. 예컨대 각 뮤지엄들의 컬렉션 중에서 무엇을 선별해 전시할 것인지, 순서는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관람 동선에서 어떤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말을 걸 것인지 등 쏘아지는 빛줄기 한 자락도 의미 없이 틀어지는 것이 없었다. 모든 계획은 치밀하고, 실행은 단단해야만 했다.
이렇게 두 달 동안 숨가쁘게 준비한 IFA 2017은 몇 발자국 걸어가면 바리케이드가 막아서 있고, 그걸 걷어내고 다시 앞으로 나가면 더 큰 바리케이드가 가로막고 있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어려움을 긍정적 자산으로 치환할 수 있는 컨버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위기는 우리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자극제가 되고, 목표점을 돌파했을 때는 성취감을 주며, 그 경험치가 쌓여 실력이 된다고 믿는다.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노하우가 있다면?
우리 팀한테 떨어지는 과제는 명확한 게 없다. 우리는 막연함으로부터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가며 실체를 알아내는 격이다. ‘행간’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그러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자면 만약 클라이언트가 “빨간색은 원하지 않으니 배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치자. 그럼 빨간색을 안 쓰면 된다. 하지만 그게 과연 정답일까? 빨간색이 브랜드 이미지와 배치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경쟁사를 떠올리게 해서 그런 건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있다면 프로젝트의 본질에 좀 더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급적이면 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서 현장의 뉘앙스를 이해하려고 한다. 단서가 하나씩 모아질수록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하나 더 부연하자면, 우리 팀은 당면 과제에 대한 해법 외에 항상 ‘플러스 알파’를 추가로 준비한다. 아까 얘기했던 <The Frame to Go> 역시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퍼포먼스가 동반된다면 <The Frame 갤러리>의 의미와 효과가 더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는 우리 예상대로였다. 그동안 우리가 제안했던 플러스 알파는 대체로 타율이 좋은 편이었는데, 성사 여부를 떠나서 그런 노력이 클라이언트에게 커다란 신뢰를 준다.
브랜드 경험의 핵심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이른바 ‘ATL’이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메시지를 설명하고 주장하는 데 반해 ‘BE(Brand Experience)’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소비자가 그 메시지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 요컨대 우리 팀이 하는 일은 체험을 통한 ‘증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증명이 제대로 완수되려면 소비자가 그 경험 속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고로 브랜드 경험의 핵심은 소비자가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증명하는 데 있는 것 같다.
CD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준다면?
CD의 역할은 이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콘텐츠 디렉터(Contents Director)’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난해 갤럭시 S7 예술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우리 팀은 클라이언트에게 ATL, 바이럴, OOH 등 원소스 멀티유스가 가능한 통합적 콘텐츠를 선제안했다. 소비자 눈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브랜드 경험이 더욱 중요해지는 현 시점에서 이런 제안과 시도는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크리에이터들의 성취 동기를 높여 준다.
제작물의 크리에이티브를 수동적으로 진행하는 것에서 나아가 보다 큰 시각으로 콘텐츠를 주도할 수 있어야 CD로서 자기만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앞으로도 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니라 콘텐츠 디렉터로서 소비자에게 어떤 식으로 말을 걸지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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