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2. 16:00

올해 초 상무로 승진하면서 제작 3본부장을 맡게 된 이예훈 프로를 만났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해 온 베테랑 광고인으로서 그녀는 어떤 각오와 포부를 새겼을까. 아울러 광고인으로서 평소 소신과 변화하는 업계 현황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제 광고는 저를 닮아서 따뜻한 공감에
거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임원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소감과 각오가 궁금합니다.

그간 제가 해 온 일은 매우 심플했습니다. 제작물에 집중하면서 클라이어트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그리고 미디어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 등이 주된 고민이었으니까요. 이제 본부장이란 타이틀을 달았으니 좀 더 큰 차원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제겐 익숙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긴 합니다. 고심 끝에 얻은 답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나답게 하면 되지’란 겁니다.

 

선수가 감독이 되면 플레이가 마음에 안 들 때 그라운드로 뛰어들고 싶지 않을까요?

마침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본부 다른 팀에서 준비한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를 듣는데, 제가 충분히 스터디가 안된 상태에서 왈가왈부하는 게 도움이 될지, 혹여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이 되더군요. 물론 그동안 축적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어드바이스를 준다면 그것이 더 좋은 성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다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확하다면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얻는 게 있을 겁니다. 그래서 가급적 터치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선은 제 도움을 요청할 때만 조언하려고 합니다. 구체적 방법과 수위는 제가 차차 습득해 나가야겠죠.

 

어느 칼럼에서 ‘공감의 능력’을 강조하신 글을 읽었습니다. 공감을 탐색하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가끔 광고를 보다가 슬며시 웃곤 하는데, 그걸 제작한 CD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엿보여서요. 어느 날 문득 보니, 제 광고 역시 저를 닮아서 화려하거나 감각적인 대신 따뜻한 공감에 거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더라고요. 흔히 광고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광고가 정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딘가에서 “독자는 독서를 통해 저자의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란 구절을 읽은 적이 있어요. 광고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광고의 메시지가 소비자의 생각과 일치하거나 일상을 반영할 때 그 힘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어요. 한 클라이언트가 ‘소비자 만족지수 1위’를 감사하는 신문 광고를 할 때 선배 한 분이 “누가 주신 상인가를 생각합니다”란 카피를 가져 오셨더군요. 저는 그 카피가 참 좋았어요. 그게 광고 제작의 기본 마인드겠죠? 누가 보는 광고인가, 누가 쓸 제품인가를 거듭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면 공감이 안되는 광고가 나올 수 없죠. 반면에 상황 논리에만 빠진다면 공감과 거리가 먼 광고가 나올 겁니다.

 

최근 작업한 캠페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정관장 에브리타임의 <일포하라>가 현재로선 가장 인상에 남고, 또 제가 좋아하는 저희 팀 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은 아이데이션을 할 때 얘깃거리가 넘쳐요. 직장생활 스트레스 중 가장 큰 게 인간 관계잖아요.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소재죠. 팀원들이 흥이 나서 이야기할 때면 저도 재미있어 하다가 ‘스토리에 등장하는 몹쓸 상사가 혹시 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불현듯 들죠. 아무튼 이렇게 즐겁게 작업한 결과물을 가져가면 클라이언트도 “내 얘기네, 네 얘기네” 하면서 공감하더군요.

 

▲정관장 에브리타임 바이럴 영상 ‘보고서’ 편

▲정관장 에브리타임 TV광고 ‘숟가락’ 편

광고인의 입장에서 ‘스킵’을 뛰어넘을 획기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스킵은 기본적으로 각오해야 해요. 저희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단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한 거죠. 그보다 요즘 저의 고민은 다른 쪽에 가 있어요. 지금까지 광고 에이전시들은 브랜딩에 대한 고민, 타깃 인사이트 등 무게감 있고 장기적인 빅아이디어 중심으로 고민해 왔어요. 그런데 디지털 환경에서는 미시적이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와 스피드가 관건이죠. 하루 이틀 안에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이 빠르게 진행되고, 피드백도 빠른 세상이 된 겁니다.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니, 저희도 바뀌어야 합니다.

올해 초 저희 과제 중 하나가 ‘기초 체력 높이기’인데, 기초 체력이란 게 자부심일 수도 있고 개성일 수도 있겠죠. 여기에 환경적으로는 디지털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없던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이제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소비자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바로 접을 줄도 알아야 해요. 기술의 발전으로 앞으로 광고가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경험의 총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듭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미시적이면서도
다양한 아이디어와 스피드가 관건이죠.”

스파이크 아시아 심사위원을 하셨는데, 해외 광고와 우리 광고를 비교한다면요?

광고란 게 그 나라의 문화를 투영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태국 광고에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많아요. 그런데 같은 유머라도 북유럽은 블랙코미디 느낌이라 문화적 코드를 모르면 전혀 웃을 수가 없죠. 반면에 태국 광고는 누구나 보면 그냥 웃을 수 있죠. 이에 비해 미국 광고는 다소 이성적이며, 텍스트가 많아요.

한국 광고는 상당히 독특한 면이 있어요. 전반적으로 고급스러운 퀄리티를 지향하는데, 그래서 중국이나 동남아 쪽에서는 한국의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고, 편집이나 후반 작업도 한국에서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또한 장단점이 있긴 한데, 한국 광고는 아직까지 ‘빅모델’ 의존도가 높아요. 하지만 전 세계가 디지털 생태계 속에서 혼융되는 지금은 그런 구분과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광고인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길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란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 일이 진정 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들어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또 들어와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담하지 말고,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워라밸’을 참 잘하는데,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것도 분명 맞긴 하지만 일도 즐길 줄 알아야 해요. 그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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