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02. 16:00

그동안 ‘페이크(Fake)’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쓰였다. 이 말에는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거짓, 가짜, 모조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최근 얼마 전부터 진짜와 가짜에 대한 소비자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짜에 설득당하는 이유는 뭘까?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짜보다 더 선호되는 가짜의 등장

‘페이크’라는 말이 물건 앞에 붙으면 가짜 명품, 가짜 시계, 가짜 참기름 같은 짝퉁 또는 위조품이 된다. 분식 회계나 주가 조작에도 이 말이 쓰이고, 스포츠에서도 상대를 속이거나 기록을 부풀릴 때 이 단어를 붙인다. 미디어와 정치권에선 가짜 뉴스(Fake News)가 전 세계적 문제다. 그런데 페이크의 의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클래시 페이크(Classy Fake) 때문이다. 패션을 비롯해 의식주 전반과 사회, 문화, 산업, 기술 전반에서 중요한 흐름으로 부각된 것이 바로 가짜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다.

지난 2013년 미국의 니만 마커스 백화점(Neiman Marcus)에서 진짜 모피를 가짜 모피라고 속여서 팔다가 걸려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가짜를 진짜로 속여서 파는 건 많이 들어봤지만, 그 반대는 처음 들었을 거다. 진짜 모피가 더 비싸고 좋은데 왜 굳이 그걸 가짜라고 속여야 했을까? 동물 보호와 모피 반대 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모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소비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스텔라 매카트니,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같은 세계적 유명 디자이너들을 필두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도 모피를 안 쓰겠다는 선언에 동참했고, 영국의 셀프리지 백화점에서도 모피 제품은 더 이상 팔지 않는다. 심지어 이젠 가짜 모피를 소재로 한 명품 브랜드 제품이 오히려 고가로 팔려나간다. 이제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매력적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패션에서만 나타나는 흐름이 아니다. 미국에선 식물성 재료로 만든 가짜 고기와 가짜 달걀이 잘 팔린다. 가짜라고 하니 부정적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식물로 고기 맛을 내는 것이고 오히려 동물성 재료가 가진 나쁜 요소가 함유돼 있지 않다 보니 안전하다. 이런 가짜 고기 산업에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적 거물들이 투자하고 있기도 하고, 미국과 영국에선 식물성 고기 시장이 급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Fur Free Fur’ 라인. 인조 모피는 최근 비건 퍼(Vegan fur), 펀 퍼(Fun fur), 에코 퍼(Eco fur) 등으로도 불린다. 인조 모피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엿볼 수 있다. ⒸStella McCartney

진짜가 만든 공식적 가짜!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베트멍은 한국에서 ‘오피셜 페이크’라는 타이틀로 제품을 판 적이 있다. 오피셜 페이크, 말 그대로 ‘공식 가짜’다. 한국에서 베트멍 짝퉁이 유행하자, 한국의 짝퉁을 재해석해 공식 가짜라면서 팔았던 것이다. 진짜가 가짜를 흉내 내 판 셈인데, 그렇다면 이 제품들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사실 베트멍은 DHL 택배기사들이 입는 노란 티셔츠를 패션쇼 무대의 모델에게 입히고, 이 옷을 브랜드화해 330달러에 팔았던 회사다. 택배기사의 유니폼이 진짜이고, 그걸 그대로 베낀 게 가짜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냐 가짜냐, 누가 원조냐의 의미는 무의미해졌다.

사실 현대 미술에선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기성품에 의미와 개념을 부여해 새로운 예술적 창조를 하는 작업들이 보편적이기도 한데, 패션계도 이제 그걸 받아들였다. 발렌시아가에서 이케아의 1,000원짜리 쇼핑백 형태를 모방해 비싼 가방으로 판 것을 비롯해, 명품 브랜드도 이런 흐름을 자꾸 받아들이고 있다.

▲발렌시아가가 2017 봄∙여름 남성 컬렉션으로 출시한 캐리 쇼퍼백(Carry Shopper Bag)과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장바구니 프락타(FRAKTA). Ⓒbalenciaga.com, ikea.com

하이패션의 대명사인 명품들이 스트리트 패션과 결합하며 하이 스트리트 패션(High street fashion)을 만드는 일도 이젠 낯설지 않다. 대표적인 게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컬래버레이션이다. 사실 과거에 슈프림은 루이비통의 모노그램을 무단으로 썼다가 표절로 소송까지 당한 전력이 있다. 루이비통은 과거에 자신을 베낀 짝퉁을 만든 회사에게 같이 일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이렇게 두 개 브랜드가 합작해 만든 제품은 명품일까 길거리 패션일까?

 

가짜가 가진 새로움에 주목하는 소비자

페이크슈머(Fakesumer, Fake+Consumer)를 짝퉁에 열광하는 소비자라 오해하면 안 된다. 여기서 가짜는 진짜의 합리적 대체물이자 가치있는 가짜다. 가짜 모피나 가짜 달걀 구매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그 불만을 해소시킨 가짜들이 가치 있게 생각되는 것이다.

짝퉁 소비의 욕망은 지극히 가식적이고 과시적이다. 남을 속이기 이전에 자신의 욕망조차도 속이려 든다. 짝퉁 소비는 태생적으로 진품에 대한 불법적 베끼기이자 사기다. 이런 가짜는 나쁜 가짜다. 하지만 가짜가 진짜를 능가할 새로운 매력적 대체물이 되기 시작하면 가짜의 의미가 달라진다. 우선 자신이 소비한 가짜가 진짜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진품을 그대로 베끼기만 한 짝퉁 가방을 든 사람은 진품 가방을 든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위축되고 부끄러워질 수 있다. 이때 진짜와 가짜의 관계는 수직적이다. 진짜가 우월적 지위를 가진 상황이다.

하지만 진품을 패러디하거나 키치하게 재해석한 건 다르다. 분명 진짜가 아닌 가짜지만, 진짜인 척 보이려 애쓰지 않는다. 당당히 가짜인 척한다. 이런 상황에선 진짜와 가짜의 관계가 수평적이다. 가령 VR 고글을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로 롤러코스터를 탄다고 해서 진짜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 앞에서 부끄러울 이유는 없다. 서로 다른 경험적 선택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진짜를 소비할 때의 불편과 번거로움을 걷어낸 것이 아주 멋진 가짜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다. 그리고 진짜가 가졌던 익숙함보다 가짜가 주는 새로움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페이크슈머 3단계

1단계: 키치와 패러디를 통해 가짜가 주는 재미를 받아들이는 단계.

2단계: 진짜를 소비하는 것이 가진 사회적, 환경적 문제 때문에 매력적 대체재로서 가짜를 받아들이는 단계.

3단계: 진짜와 가짜에 대한 기준 자체를 지워버리는 단계. 누가 먼저냐가 중요하지 않고, 누가 더 매력적이고 혁신적이냐를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전방위로 확산되는 클래시 페이크 트렌드

우리 일상에서도 가짜의 위상이 변했다. SNS를 할 때도 사람들은 실제보다 좀 더 멋지게 연출한 사진을 의도적으로 올린다. 때론 진짜 현실보다 우리가 만들어 낸 가짜 현실이 우리를 위로하고 행복감을 줄 수도 있다. 최근 홈퍼니싱 열풍으로 인테리어에 관심이 커지면서, 집에 진짜 식물 대신 식물을 프린트한 액자를 걸어두거나, 진짜 뺨치듯 잘 만든 가짜 식물을 두는 이들도 늘었다. 조화를 너무 잘 만들어 생화 판매가 줄어든다는 얘기까지도 있다.

 

▲<라보엠>과 <리골레토>의 한 장면. 메가박스에서는 스크린을 통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를 현장에서 보듯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megabox.co.kr

디지털이 아날로그 흉내를 내는 가짜 아날로그도 속속 등장해서 지지를 받는다. 사실 IT 분야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가장 극명하게 무너뜨린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이라 불리는 기술들도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인 척 우릴 속일 수 있다. 가상현실로 전 세계를 여행하고,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구경하고, 먼 나라의 공연 실황도 실시간으로 눈앞에 있듯 볼 수 있다. 분명 가짜지만 진짜 같다.

진짜와 가짜의 선악 구도는 이제 유효하지 않고, 우위를 따지는 상하 구도에서도 벗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크슈머가 당당한 소비의 흐름으로 부각될 수 있는 것이다. 진짜를 베낀 모방이 아니라, 진짜를 매력적으로 대체할 새로운 크리에이티비티가 만들어지는 상품과 경험에 한해서만 페이크슈머라 할 수 있다. 아주 멋진 가짜가 관성에 젖은 낡은 진짜, 구태의연하고 멋없는 진짜를 위협하는 시대다. 이제 기업과 브랜드는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되돌아보고, 이를 위협하는 가짜들의 가치에 대항하는 새로움을 또 다시 창출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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