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l Magazine 2019. 6
편집실
암말과 수탕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종간 잡종 노새는 최고의 짐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번식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장르간 결합으로 생산된 크로스오버 콘텐츠는 무한 번식하며 경쟁력을 얻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국내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들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련된 결합 방식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BTS는 대놓고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거나 시쳇말로 ‘국뽕’을 시전하지 않는다. 대신 BTS는 그들의 히트곡 뮤직비디오에서 보이듯 세련된 비주얼로 한국적 매력을 발산한다. 컬러풀한 장식 술로 치장한 북청사자를 등장시키거나 “지화자”, “얼쑤 좋다” 같은 국악의 추임새를 EDM의 리듬 속에 절묘하게 녹여 낸다. 또한 여느 아이돌들과 그 격이 다르다는 안무에서도 한국 춤의 요소를 과하지 않게 가미한다.
▲ BTS의 <IDOL> 뮤직비디오
BTS와 달리 아예 국악을 베이스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성과를 올리는 그룹도 있다. 정규 1집 앨범 <차연(差延)>으로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크로스오버상을 수상한 그룹 ‘잠비나이’가 그들이다. 피리, 태평소, 거문고, 해금에 드럼과 기타를 섞어 연주하는 이들의 독창적 음악 세계를 두고 해외에서는 ‘포스트메탈’, ‘포스트록’이라 명명하며 환호한다.
▲ 잠비나이 1집 <차연>에 실린 6번째 트랙 ‘소멸의 시간’
예를 들어 잠비나이 1집에 실린 ‘구원의 손길(Hand of Redemption)’을 들어 보면, 그들의 음악을 ‘국악의 세계화’나 ‘국악 한류’ 같은 수식어로 가두는 일이 가당치 않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차라리 헤비메탈이나 하드코어라고 부른다면 모를까.
이 곡에 등장하는 해금이 펼치는 무아지경의 애드리브는 국악에 친숙하든 아니든 그야말로 신세계다. 그러니까 잠비나이의 음악은 국악기도 다룰 줄 아는 당대 젊은이들의 정서를 담은 것일 뿐이다. 바로 그런 보편성 때문에 잠비나이는 몇 년째 엄청난 횟수의 해외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그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세계적 춤 경연대회를 휩쓸고, 2017년 TV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 출연, 대중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댄스팀 ‘저스트 절크(Just Jerk)’ 역시 잠비나이와 함께 한국 크로스오버 콘텐츠를 선도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저스트 절크는 마치 “한국적 군무(群舞)란 이런 것”이라고 외치듯 무대를 장악하며, 전 세계 젊은이들의 눈을 홀리게 만든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실력을 검증받은 팝핀과 로킹에 정적이었다가 순간 격동하는 한국 춤의 이색적 매력을 더하는 순간, 객석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관건은 이색적 시도 아닌 완성도
직접 작곡을 하면서 피리, 생황, 양금을 연주하는 뮤지션 박지하는 얼마 전 솔로 2집 <필로스(Philos)>를 발표한 떠오르는 스타다. 하지만 신예라고 하기엔 해외에서의 인지도가 꽤나 높다. 그 이유는 그가 클래식이나 국악이 아닌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하고 있어서다. 화려한 기교나 수식이 극도로 절제돼 있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작품을 선보이는 박지하는 해외에서 ‘국악인’으로 소개되지 않고 ‘뮤지션’으로 호명된다. 바로 여기에 한국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들의 인기 비결이 숨어 있다.
수년 전부터 전통 공예 장인들과 협업을 시도해 온 가구 디자이너 소동호는 “그 자체가 이슈이고 매력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형식이 아니라 결과물의 완성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크로스오버, 장르간 협업, 컬래버레이션은 실험의 단계를 지나 숙성의 단계로 넘어왔다. 장르나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동시대를 사는 이들과 공통된 감성을 공유하며,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해 온 크로스오버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소비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브랜드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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