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5. 17:00

최근 서점가에서 수개 월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책들을 보면 어떤 경향이 포착된다. 그중에서도 수백 개의 공감 리뷰가 달려 있어 다른 베스트셀러들과도 확연히 차별화되는 책들이 다루는 주제는 바로 나다움, 즉 자기 긍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정의하기 이전부터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여러 ‘관계’로 묶여 있다. 더욱이 SNS는 시공을 뛰어넘어 타자와의 관계망을 무한대로 확장시킨다. 일면식도 없는 뉴요커와 친구가 되고, 그의 일상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있다고 믿는다.
‘인별그램(Instagram)’이나 ‘얼굴책(Facebook)’ 팔로워 수가 스팩 중 하나가 된 세상이다. 하지만 정량적 관점이 아닌 정성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인연의 끈이 행복을 담보해 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SNS를 통해 ‘타자’와의 관계 형성에 시간을 소비하는 동시에 ‘나’에 집중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에세이집 『타인은 나를 모른다』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관계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나’를 타인이 내 방식대로 이해해 줄 거란 헛된 희망을 가져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굳이 책으로 읽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평범한 진리를 곧잘 잊고,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연인이라 해도 결국 타자는 나와 같지 않기 때문에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자신의 속도로 살아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다면 나답게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인 김수현의 책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미래의 거창한 행복을 위해 당장의 일상을 양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사회 심리학적 주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 이 에세이는 ‘나답게 살기’의 실천 편처럼 읽힌다. 자신만의 문제라고 착각하지 말 것, 모든 이에게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을 것, 세상의 정답에 굴복하지 않을 것 등 ‘나답게 살기 위한 to do list’를 제시한다. 한 온라인 서점에는 “힐링이 되는 것 같다”, “읽고 또 읽었다”, “완전 사이다” 등의 리뷰가 수백 개 올라와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운 책이다.
평이한 아포리즘처럼 읽히기도 하는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블로거들이 수백 개의 독후감을 남기고, 연이어 댓글이 달리는 이유는 ‘격한 공감’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억지 미소를 지어야 하는 상황들…. 관계의 고단함 속에서 정작 나는 뒷전이 되고 심지어 자존감이 증발되는 상황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는 ‘나’가 소외되는 상황에 처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적정 심리학’이라는 패러다임을 통해 힐링 메시지를 건넨다. 집 안에 상비약을 갖추고 살 듯 ‘누구나 한 권쯤 가지고 있어야 할 상비 치유서’로 평가되는 이 책 또한 수백 개의 공감 리뷰가 달려 있다.
한때는 “그렇게 하면 실패한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같은 메시지를 소리 높여 외치는 자기계발서가 서점가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렇게 남들을 뒤쫓아 가고 흉내 내는 삶이 얼마나 피곤하고 소모적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과 내가 느끼는 행복이 같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대의명분(大義名分)만 진정한 가치일까? 이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이 내 행복을 위한 명분이 되는 시대, 소의명분(小義名分) 시대가 찾아왔다. 그래서 이제 소비자들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자기 긍정성 지수를 높이고,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당당히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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