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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조성흠 

창고가 패션쇼 무대가 되고, 옥상이 영화관이 되며, 지하 주차장이 갤러리로 바뀌는 등 
공간에 새로운 콘텐츠를 담아내 핫플레이스로 변신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기존 공간이 갖고 있던 한계를 넘어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이끌어낸 사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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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가 매력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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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금, 시멘트, 밀가루, 얼음…. 
이것들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생산 후 즉각 소비가 어려워 ‘저장’이 필요한 품목들이다. 
이것들엔 ‘창고’가 필수품이다. 인류가 정주 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삶과 공존한 
창고는 다양한 진화를 겪었다. 건설과 설비 기술의 발달로 창고는 급변하기 시작했는데, 
조립식으로, 또 집 안으로 창고를 끌어들이면서 창고 본연의 모습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또한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창고는 해체돼 버렸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창고들은 ‘레트로(Retro)’에 근거해 기지개를 활짝 켜고 있다. 물건을 보관하던 
‘창고(倉庫)’ 기능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창조하는 ‘창고(創庫)’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 (좌)겉으로는 평범한 창고 건물이지만 전시회, 패션쇼 행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성수동 대림창고 ⓒ장상길
(우)청바지 워싱 공장을 디자인협동조합으로 변신시킨 보부상회 ⓒ장상길
창고가 어떤 이유로 의미를 다시 갖게 된 것일까? 
아마도 첫 번째 이유는 기둥이 없고 천장고가 높은 공간적 특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고가 가진 고유 형태, 즉 메가-스트럭처(Mega-structure)의 공간 구조가 
자유와 상상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감각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빈 창고는 뭐든지 채울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래서 창고는 사람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게 하는 
도전 의식의 촉발체로 기능한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대림창고’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젊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전시회를 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패션디자이너 알렉산더 왕과 글로벌 SPA 브랜드 H&M의 콜라보레이션 파티도 열린 적이 있으며, 
앱솔루트를 비롯해 버버리, 포드 등 해외 기업들도 대림창고에서 행사를 연 바 있다. 
대림창고 덕분에 공장 지대인 성수동에 젊은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니, 
‘창고 하나가 지역을 바꿀 수도 있다’라는 말이 증명된 것 같다.

이처럼 창고가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를 꼽으라면 
‘텍스츄어(Texture)’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오래된 창고들은 거의 모두 투박함과 소박함이라는 이미지를 가진다. 
벽돌, 목재, 석재, 양철 등으로 이뤄진 창고의 표면은 매우 거칠다. 
하지만 그 표면에 세월의 흔적이 덮여서 뭔지 모를 ‘따뜻함’이 흐른다. 
이것이 바로 창고의 최고 매력이다. 


 
▲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창고를 셀프 스토리지로 대여해 주는 서비스도 늘고 있다. 
ⓒprojectamplify.com

창고 고유의 기능이 현대에 맞게 각색된 사례도 있다.
생활공간이 협소한 일본에서는 빈 창고를 개인들에게 대여해 주는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가 각광받고 있다. 사용자들은 상점을 드나들듯 
자신이 대여한 창고 공간을 빠르고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어둡고 칙칙한 창고의 기존 이미지를 탈피해 화사한 인테리어를 도입하기도 한다. 
셀프 스토리지 서비스는 비단 일본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널리 확산 중이다.

시대 가치가 이끌어 낸 공간의 변화

최근 공간의 변신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장되고 있다. 
언젠가부터 재생, 재활용, 르네상스, 리사이클, 융합 등 시대 이념들이 
도시 곳곳의 공간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공간의 변신은 대략 예닐곱 가지의 유형으로 나뉜다. 물론 경우의 수는 훨씬 많다. 
가장 흥미로운 변신은 공간과 공간의 ‘사이 공간’과 건물과 외부 공간이 만나는 ‘전이 공간’이다. 
그 공간들은 50㎝ 정도로 좁을 수도 있고, 수 미터 이상의 제법 너른 공간일 수도 있다. 
도시에서 그런 공간들은 건물이나 특별한 구조체(교량, 옹벽 등)의 틈새들이다. 
혹 땅에서 분리된 입체의 공간일 수도 있다.


 
▲ 영국의 Hottub Cinema는 건물 옥상에 설치한 스파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펼쳤다. hottubcinema.com

이러한 성격을 가진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은 기존 것과 쓰임새가 다른 
‘제3의 공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단순 통과나 격리 등 허드레 목적으로 사용되던 곳을 트렌디한 신기능으로 
채울 수 있으니, 또 옛것과 새것이 혼합돼 표출하는 매력이 있으니 선호되는 것이다. 
벽돌과 콘크리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식되고 색이 변하면서 남기는 따뜻한 흔적들이 
차가운 재질의 유리나 알루미늄 등과 만나 뿜어내는 매력은 참으로 묘하다. 
어머니의 음식에서 느끼는 독특한 감칠맛 정도라 할까.

요즘, ‘B’가 유행이고 또 대세다. 
B자로 시작하는 모임이나 집단, 가게와 회사들이 늘고 있다. 
아마 A가 되면 부담스럽고 C나 D는 뒤처진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럴 게다. 
그렇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 주연이 아닌 조연이 더 빛을 발할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도시의 공간들도 그런 경향을 띠는 것이다. 
공간 스스로의 변신으로, 또 공간들 틈새에 만들어지는 제3의 공간들은 
화려한 상업이나 거창한 문화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자기만족이 
변신의 타깃이다. 그만큼 현대인의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고, 
삶 속 공간에 대한 시선 또한 풍요로워지고 있다.
스크랜턴트리뷴 기자였던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떠오른다.
그녀는 1960~70년대 미국 개발주의에 반대했다. 50여 년 전 그녀가
예견했던 생각들이 이제 우리의 현실이 돼가고 있다. 그녀의 글 속에
담긴 지역문화, 오래된 건물, 사람, 도시 감성, 보행, 장소성, 근린,
골목길 등의 키워드들은 비록 주류 개념은 아닐지라도 작은 것에 더
관심을 두는 현대인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 공간을
다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이는 시대 가치의 변화를 뜻한다.

취리히 웨스트의 변신

몇 달 전, ‘취리히 웨스트(Zurich-West)’를 방문했다. 
이곳은 1980년대까지 취리히의 경제를 책임졌던 핵심 산업 지대다.
그러나 이후 지가 상승으로 공장들이 외곽으로 이전하며 슬럼으로 변했고,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독특한 양상으로 지금 재생 중인 곳이다. 
취리히는 100여 년 역사를 가진 뢰벤브로이 맥주 양조장을 버리지 않았다. 
이곳에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인 ‘쿤스트할레 취리히’, 
민간 미술관인 ‘미그로스 현대미술관’과 ‘하우저 앤드 위스’ 등 총 8개의 
갤러리를 입주시켜 ‘뢰벤브로이 예술단지’로 리모델링했다. 
리마트강을 오가던 증기선을 제작했던 폐조선소 ‘시프바우(Schifbau)’에는 
레스토랑, 공연장과 재즈클럽이 들어섰다.
제철회사의 주물공장을 개조한 ‘풀스5’, 크레인과 용광로 사이에 자리
잡은 쇼핑몰과 전시장, 그리고 공장 상부 3개 층에 들어선 주택들의
결합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 (좌) 맥주 양조장을 현대미술관으로 변신시킨 쿤스트할레 취리히 ⓒstadt-zuerich.ch
(우) 폐기된 컨테이너를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프라이탁 본사 ⓒfreitag.ch

‘비아둑트(Viadukt)’라 불리는 폐선된 철로 교각 아래에는 재활용과
친환경을 키워드로 하는 각종 가게들과 쉼터가 줄지어 서 있고, 
화물 트럭의 덮개용 폐비닐과 자전거 바퀴의 폐고무 등을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Freitag)은 이제 세계적인 업사이클링의 
상징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17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만든 
프라이탁 본사는 취리히 웨스트의 특별한 랜드마크가 됐다.

이곳은 스위스의 장인정신과 시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융합시킨
창조성과 실용성이 뒤범벅된 실험의 현장이다. 
공장 지대의 우중충함 속에서도 뭔가가 꿈틀대는 느낌, 첨단 IT 산업 지역이 
아닌데도 넘쳐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 과연 무엇일까. 또 왜일까. 
그것은 아마 원(原) 공간에 대한 존중과 이에 근거한 새로운 변신을 
추구하는 취리히의 독특한 재생 방법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들 흔히 얘기한다. 
오래된 공간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는 것은 높아진 우리의 경제 지수와 관계가 있다고. 
1인당 GDP 3만 달러가 바로 코앞이다. 물론 허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높이가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경제 지수의 변화에 따라 그 눈높이는 더욱 높아질 것이고, 
이에 상응하는 기존 공간들의 변신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 공간을 다시 보려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늘어감에 따라 
투박한 공간에 숨겨진 그곳만의 섬세함이 도시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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