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렵고 소비 심리가 위축될수록 따뜻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웜 마케팅이 주목받기 마련이다.
이 시대 소비자가 원하는 따뜻한 공감이란 과연 무엇인지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살펴본다.
따뜻함이 주목받는 이유
유난히 추운 올 겨울의 베스트 상품은 다름 아닌 ‘패딩’이다.
알래스카 바람도 막아줄 것 같은 두터운 패딩 점퍼류의 인기가 매서운 추위와
함께 고공행진 중이다. 어디 몸뿐이랴. 사람들의 마음도 차갑기는 매한가지다.
연일 널뛰는 유가와 환율에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심리 때문일까.
최근 시장에선 사람들의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서늘한 이성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기보다는 따뜻한 감성을 건드리는 이른바
‘웜(Warm) 마케팅’이 바로 그것이다. 권위 있어 보이는 전문가가 정장 양복을 빼입고
“현명하게 투자하라”고 설득하는 쿨(Cool) 커뮤니케이션은 세련되지만 거리감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반면 웜 마케팅은 훨씬 더 친밀하다.
나와 비슷한 일반인 모델이 건네는 “힘드시죠”란 말 한마디에 왠지 코끝이 찡해지는 것과 같다.
“한국을 보면 전 국민이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 상태인 것 같다.”
몇 년 전 에서 한국을 묘사한 표현이다. 그렇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학생,
직장인, 주부 할 것 없이 모두 상시적 불안과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은 매년 반복되는 입시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창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할 대학생들은 완벽한 스펙을 갖추고도 번번이 취업 문턱에서
낙방하기 일쑤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직장인 우울증은 이미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우리의 인생은 점점 더 고달파진다.
‘평범함’이라는 특별한 가치
나날이 진보하는 기술도 사람을 외롭게 하긴 마찬가지다. 미래학자 리처드 A. 스웬슨은
“문명의 진보란 본래 사람들의 여유를 앗아가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여유 시간을 만들어 줄 것처럼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생겨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수많은 선택을 강요받고 따라잡기 어려워 보이는 변화의 속도에 힘겨워한다.
세탁기가 발명된 후 빨래라는 가사 노동에서부터 해방됐지만,
늘어난 시간은 또 다른 노동으로 채워져 결국 삶에 여유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사람과 사람을 손쉽게 연결해 주는 IT 기술도 한편으론 사람들의 관계를 얕고 피상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직접 얼굴을 보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대신 SNS로 깜찍한 이모티콘을 보내면 그만이다.
이러한 팍팍함 속에서 사람들이 찾아 나서는 것은 결국 ‘일상 속의 따뜻함’이다.
평범함이라는 그 흔했던 가치가 이제는 손에 쥐기조차 힘든 특별한 가치임을
이제야 많은 사람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모여, 따뜻한 마케팅이 시작되고 있다. 급진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보다 차갑고 냉철한 이성적 이미지가 선호되던 예전과 달리,
불안과 위기가 만연한 침체기에는 따뜻하고 감성적인 이미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성적 설득 대신 감성적 소구가 힘을 갖는 시기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일상의 온기를 찾아 나선 사람들
이제 사람들의 일상은, 그동안 우리가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하다고 여겼던 것들로 다시금 채워지기 시작한다.
값비싼 자동차, 고가의 명품 가방을 갖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이젠 작고 소박한 일상을 열망한다.
내 손으로 직접 소박한 밥상을 차려 가족과 함께 나누는 일상적 행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이 됐다.
▲ 소박한 가치를 찾는 움직임이 우리 생활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flickr.com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개설하는 강좌의 종류만 봐도 그렇다. 요즘 백화점들은 킨포크와 관련한 강좌를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리고, 직접 가꿔서 먹을 수 있는 ‘베란다 채소밭 가꾸기’ 강좌를 마련하는가
하면,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는 ‘가족과 함께 만드는 추억’, 집밥을 주제로 한
‘건강한 집밥 만들기’ 등의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음식 명인과 함께 식재료 산지를 직접 찾아가
설명을 듣고 건강한 밥상을 체험할 수 있는 강좌도 신설되고 있다.
일상을 돌아보고 평범함에서 가치를 찾는 움직임이 우리 생활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따뜻한 감성이 주도하는 라이프스타일
일상의 따뜻함을 다루는 감성 잡지도 등장했다. 나 가 대표적이다.
감성 잡지의 대표주자 킨포크는 한국어판이 정식 출간되기 전부터 원서의 반응이 뜨거워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가지고 있던 잡지다. 킨포크는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한 남자의 블로그로 시작돼, 이후 작가·화가·농부·사진작가 등 40여 명이 모여 만든 작은 모임의
이름이다. 이들은 텃밭에서 재배한 식재료로 친환경 요리를 만들어 그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조리법을 공유하며 느긋한 삶을 지향한다.
▲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한 남자의 블로그에서 시작해
이제는 ‘킨포크 스타일’이라는신조어까지 생기게 한 잡지 . ⓒkinfol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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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힐링 라이프를 표방하는 잡지 .
소박한 삶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고 있다. ⓒa-round.kr
이들의 이야기를 엮은 잡지 킨포크는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제는 잡지 이름을 넘어 느긋한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대명사가 됐다.
평범함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갈망은 대중문화에도 나타난다. 특히 온라인에서 연재하는 웹툰에는
유독 일상적인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주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웹툰 에 등장하는 부부의 모습에는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도,
웹툰 특유의 과장과 유머 코드도 없다. 부부 사이에 흔히 발생하는 시니컬한 말씨름, 잦은 투닥거림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보는 이들에게 ‘우리는 이만큼 행복하다’고 오버하거나
혹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훈계하지 않고, 그저 ‘우리는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다’며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 평범한 부부의 일상을 통해 큰 공감을 이끌어 낸 웹툰 .
ⓒkyobobook.co.kr
이러한 변화는 기업이 소비자를 설득하는 광고 커뮤니케이션에도 반영된다.
지난 12월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선정한 베스트 광고는 다름 아닌 동서식품의 ‘핫초코 미떼(부녀 편)’였다.
겨울밤 소파에 누워 졸면서도 딸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 “다녀왔습니다”를 외치며
집에 들어오는 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발견한다.
▲ 지난해 말 한국광고총연합회가 베스트 광고로 선정한
동서식품의 ‘핫초코 미떼(부녀 편)’ 캠페인. ⓒ동서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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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로하는 웜 마케팅**
잃어버린 평범함을 되찾기 위해 삶의 진정한 가치를 탐색하려는 사람들.
조금 느리더라도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족과 자아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일상을 재정비할 것이다. 이들에게 럭셔리한 삶이란, 곧 가장 평범한 삶이다.
소비자들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기업만이
과잉 공급에 ‘지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얄팍한 상술이 아닌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다가가는 웜 마케팅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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